[479호/사무사] 가라앉은 진실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

2023-04-17     편집장

초등학생 때의 일이었다. 학교에서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TV에서는 일제히 바다 속으로 잠겨 가고 있는 배의 모습을 보도하는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느 채널을 틀어도 왼쪽 상단에는 사망자와 실종자, 구조자의 수가 떠 있었고,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들은 줄줄이 결방되었다. 어렸던 그때의 나는 무슨 일인지도 잘 알지 못한 채 처음 느껴 보는 복잡한 감정에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 참사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을 무렵부터 나는 4월 16일이 되면 교복 마이에 노란색 리본 배지를 달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나는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세월호 참사는 3주기를 맞았다. 그날 내가 다니던 학교 앞 분식점 사장님은 내 교복에 달려 있는 배지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거 유행 지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그런 걸 달고 다녀?” 그때 이 말을 듣고 느꼈던 충격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날 만큼 생생하다.

그로부터 또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세월호 참사 9주기가 되었다. 애석하게도 세상에는 그때의 그 분식점 사장님 같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2014년 4월, 돌아오지 못한 304명의 희생을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그만 좀 우려먹어라’라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꽤나 흔하다. 몇 해 전부터는 사람들 사이에서 ‘세월호 피로감’이라는 말도 돌고 있다. 이 피로감이라는 말은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외면하고 싶은 주제로 만들어 버렸다. 아마 그들이 피로감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를 덧나게 할 것임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세월호에 대한 피로감이 국민들 개개인에 많이 들어가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식을 잃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식을 가슴에 묻지만, 영원히 그것은 지워지지 않거든요.” 당시 단원고 2학년 8반 故 이호진 군의 아버지 이용기 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세월호가 국민의 마음속에서 멀어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전했다. 사람들은 분명히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이 무색할 만큼 우리의 기억 속에서 세월호가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가라앉은 진실은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가 활동을 종료했던 작년 6월 10일, 세월호 유가족 최순화 씨는 “사참위 조사가 종결됐지만 앞으로도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을 이어가겠다”라고 밝혔다. 사참위가 3년 6개월의 조사 끝에 내린 결론이 ‘조사 활동의 한계로 인해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함’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 후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져 가는 지금까지도 세월호 유가족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아픔을 마음에 품은 채 끝나지 않은 진상규명을 이어 가고 있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남긴 모든 것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세월호는 하나의 안타까운 단순 사고로 남아서는 안 된다. 밝혀지지 않은 참사의 원인과 책임이 규명될 때까지, 그리고 우리사회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안전한 사회가 될 때까지 우리는 함께 기억하고 함께 아파해야 한다.

가라앉은 진실은 바다 밖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저 바다 어딘가에 진실이 가라앉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가 있을 뿐이고, 바다 깊은 곳에서 그  진실을 끌어올리려고 힘쓰는 이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