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6호/컬처노트] 다니엘 뷔랑, 공간과 정밀함을 고려하는 예술가

신예주(중국어교육·21) 학우

2023-02-13     한국교원대신문

지난 129일까지 대구미술관에서 다니엘 뷔랑전이 열렸다. 다니엘 뷔랑은 프랑스 출신의 현대미술 거장으로, 장소와 어우러지는 공공 미술을 특히 강조하는 예술가다. 이번 전시는 국내 국공립미술관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다니엘 뷔랑의 개인전이었다.

 

강렬한 원색 사이 숨은 정성

'어린아이의 놀이처럼', 사진 / 신예주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던 작품은 다니엘 뷔랑의 어린아이의 놀이처럼이다. 1층부터 천장까지 탁 트여 있는 대구미술관에 들어선 원기둥, 직육면체, 정육면체, 삼각뿔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이 도형들은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큰 성을 연상시키는 모양으로 쌓아 올려졌다. 반은 흑백으로, 반은 강렬한 원색으로 칠해진 대구미술관 안 작은 성은 익숙하지만 새로운 느낌을 준다. 마치 우리가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나무 블록 같다. 하지만 그의 작품과 어린 아이가 막 쌓아 둔 성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바로 흑백으로 쌓아 올린 반과 원색으로 쌓아 올린 반이 정확하게 대칭이라는 점이다정밀함은 다니엘 뷔랑의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특징이다. 그의 작품을 이루는 대칭성, 각도, 선의 두께 등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다.

'8 Pink Stripes', 사진 / 신예주

다니엘 뷔랑의 상징 중 하나인 줄무늬를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도 그의 이런 성향이 드러난다. ‘8 Pink Stripes’에서는 카드 하나 정도 굵기의 균일한 굵기의 선이 반복되어 그려져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균일하지 않은 하얀 선이 등장한다. 하지만 두 걸음 물러서서 보면 그의 설계에 감탄하게 된다. 작품 사이 공간과 하얀 선을 함께 보면, 언뜻 이상해 보였던 흰 선의 굵기도 결국 동일함을 인식할 수 있다. 작품과 작품 사이를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림자의 방향과 크기마저 계산한다.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미

다니엘 뷔랑 작품의 엄밀함은 작품이 설치되는 공간을 고려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결과다.그는 늘 자신의 작품이 전시 공간과 얼마나 어떻게 어우러질지를 깊이 고민한 후에 작품을 만든다. 공간과 가장 잘 어우러질 수 있는 형태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장소의 시각적 특성을 생각한다. 그렇기에 다니엘 뷔랑의 작품을 볼 때면 미술관에 갇혀 있다기보다는 살아 있는 작품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천장까지 탁 트인 대구미술관의 공간과 어린아이의 놀이처럼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고,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전시 공간 구성과 다르게 작품을 배치한 그의 발상은 인상적이다.

다니엘 뷔랑은 설치 미술 전시가 끝나면 거의 모든 작품을 파괴한다. 공들인 작품을 파괴하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이유 또한 다니엘 뷔랑의 철학과 관련이 있다. 작품이 설치될 공간을 중시하며 작업하는 만큼 이 작품이 이 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 위치한다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는 작품을 남겨 두는 대신 작품이 있던 장소와 작품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함께 담아 기록한다.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작업물을 담은 6시간 30분 분량의 영상인 시간을 넘어, 시선을 닿는 끝에도 함께 전시되었다. 다니엘 뷔랑의 작품을 담은 영상과 사진은 www.danielburen.com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