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5호/교육현장 엿보기] 자유의 경계

경기도 양평군 원덕초등학교 교사 차재현

2022-11-28     한국교원대신문

선생님이 저희에게 더 화를 내 주었으면 좋겠어요.”

위 말은 5학년 담임을 하던 시절, 반 학생 한 명에게 실제로 들은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대학교를 막 졸업한 후에 청주에 한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를 6개월 동안 했었다. 당시 5학년 담임을 맡게 되어 걱정 반 설렘 반으로 학교를 다녔다.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교사를 양성하는 학교에 들어가 드디어 교사로서의 첫 근무,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신규의 열정과 패기, 꿈이 가득했다. 내가 되고 싶었던 교사상은 명확했다. 친구같이 친근한 교사, 공정한 교사, 그리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교실을 만드는 교사. 특히 마지막 키워드가 유난히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나는 아이들에게 납득시킬 수 없는 규칙은 만들지 않기로 하였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교실 앞문으로 지나지 말라는 규칙. 다른 선생님들이 학생들이 앞문으로 다니지 말라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물론 지금도, 굳이 아이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통제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아이들과 규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날,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교실 앞문으로 지나면 돼, 안 돼?” / “안 돼요.” / “? 이유 아는 사람?” / “...”

나는 내가 마치 대단한 교사라도 된 듯 상기되어 말했다.

모르지? 없지? 그러니까 교실 앞문으로 다녀도 돼.”

아이들의 표정에서 보이는 당황스러움, 그리고 올해 선생님은 뭔가 다르구나! 하는 안도감(짐작하건대)에 나는 만족했다.

아이들에게 사과하는 것도 전혀 서슴지 않았다. 많은 선배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자주 사과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였지만, 나의 지도 미흡으로 아이들이 불만을 가지거나 아이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사과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사과하는 선생님을 보고 당황했지만 그러다가도 선생님의 사과를 수용하고 오히려 나와 사이가 더 돈독해졌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아이들은 스스로의 자유에 적응해 가며 나 또한 아이들에게 과하지 않은 자유를 더 주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자유에는 충분히 익숙해 가지만, 그와 반대로 다른 친구의 자유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자신의 자유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다른 사람의 자유를 뺏어 가는 일이 생기고 있었다. 여러 활동을 한 수업에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자유를 존중해 주면 다른 친구들의 참여 자유를 조금씩 빼앗게 되고, 한 아이에게 특정한 자유를 주게 되면 그 외 모두는 공정함을 따지며 모두 그만큼의 자유를 얻고자 하였다. 그 결과, 아이들은 다른 친구의 자유에 불만을 품으면서 자신의 자유를 얻고자 하는, 소위 말하는 이기적인태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나 자신에게도 존중해야 할 자유와 존중하지 않아야 하는 자유의 그 애매한 선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느끼는 불만에 대해 선생님에게 얘기해도 그게 고쳐야 할 잘못은 아니잖아?’라는 선생님의 애매한 태도가 계속되니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놀이 수업을 진행하며 한 아이의 실력이 다른 아이들에 비하여 너무 뛰어나고 다른 아이들의 참여 기회까지 독차지하게 되니 본의 아니게 다른 아이들이 방해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불공평하다며 따졌지만, 그렇다고 그 아이를 놀이 실력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제재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생각하여 별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결국 압도적인 차이로 놀이 실력이 뛰어난 아이가 승리했지만 하루 종일 반에서는 불화의 기운이 흘러넘쳤다.

결국 아이들의 다툼으로 이어져 아이들에게 지도한다며 분위기를 잡고 소리를 치던 날, 평소 반에서 활발하게 활동에 참여하던 아이가 손을 들고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저희에게 더 화를 내 주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하고 싶은 대로 안 해도 괜찮으니 혼 좀 더 내 주면 좋겠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을 들어 다른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생각하냐고 물었다. 모두가 끄덕거리지는 않았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이 자신들도 똑같이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확실치 않은 경계를 가진 자유를 제공하니 오히려 아이들이 더 혼란스러워 했다.

6개월이 지나 기간제 계약이 마무리 되고 2학기부터는 새로운 선생님이 아이들을 다시 맡게 되었다. 그래도 교사라는 이름을 들고 맡은 첫 아이들이기에 자주 생각이 나고 보고 싶었다. 아이들을 다시 보고 싶어 학교에 찾아가도 되냐고 동학년 선생님께 물어보니 동학년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말하기를, 올해는 학교에 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아이들과 연락을 자주 하지 말라고도 하였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이들이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나니 적응을 도저히 하지 못해 담임 교사와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깊게 자리 잡았다고 하였다.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이 나와 함께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이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 함께 다시 원래대로 금지되었고, 그렇기에 다른 선생님들께 당연하게 금기시되었던 것들에 아이들이 압박을 느끼고 선생님의 지도에 엇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창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을 힘들게 다루는 과정에서 나를 다시 만나면 더 부정적인 영향이 일어날 것이라고도 하였다. 특히 유별난 아이들은 학교 전체에서 문제아로 유명해졌고, 자연스레 나 또한 학생 지도를 못하는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첫 제자들은 마음속의 못이 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화를 내지 말아야지,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어야지, 아이들에게 공정한 선생님이 되어야지, 아이들의 자유를 존중해 주는 선생님이 되어야지.’와 같은 다짐들은 구체적인 방안 없이는 너무나도 무력하고, 유해한 독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저 맹목적으로 이상으로만 그리며 행동하는 것은 너무나 안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야기를 너무 두서없이 써 내려 갔지만, 다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그리고 있을 여러분에게 말해 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해 보고 싶었던 게 있으면 마음껏 해 봐요. 신규니까 그래도 돼.”라는 말을 싫어한다. 나에게는, 신규 교사에게는 첫 해가 앞으로 수십 년이 있을 경험들의 시작이기에 시행착오를 거쳐도 되는 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해의 아이들에게는 그저 시행착오로서 테스트되는 시간들이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물론 교사로서의 수행들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 시행착오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는 아이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는 것을 나의 실패를 통해 느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