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호/교수의 서재] 시계 밖의 시간을 찾아서

2022-11-13     한고은 기자
미술교육과 박진희 교수 (사진/ 한고은 기자)

 

현대 사회에서 시계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그만큼 시계는 우리에게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는 지금 몇 시지? 그때까지 이 일을 끝내야 하는데와 같은 생각을 하며 시간에 쫓겨 바삐 움직인다. 시계가 등장하면서 우리는 시계의 숫자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시계가 등장하기 이전에 인류는 어떻게 살았을까? 어쩌면 시간은 시계가 담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최근 내가 시간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면, 시계의 숫자에 너무 집착해서 살고 있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 봐 주길 바란다. 지금부터 미술교육과 박진희 교수와 시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주도적인 삶을 사는 방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교수님께서 학창 시절 감명 깊게 읽으셨던 책은 무엇이며, 어떤 책인가요?

제이 그리피스의 <시계 밖의 시간>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쓴 작가는 대단한 철학자도 아닌 그저 책을 쓰는 작가예요. <시계 밖의 시간>은 시간을 주제로 다룬 책이에요. 사실 시간이라는 것은 인류사에서도 워낙 오래된 주제이고 굉장히 무거운 철학부터 과학, 정말 모든 분야와 얽혀 있는 것인데, 이 책은 시간을 문화적인 관점에서 가볍게 풀어냈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의 제목이 시계 위의 시간이 아니라 시계 밖의 시간인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시간의 본질이라는 것은 시계의 숫자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어떤 흐름 같은 것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에요. 시계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했으며, 다양한 문화에서 시간의 개념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에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계가 만들어지고 나서부터 시간의 흐름을 전 세계가 다 통일해 버렸어요. 현대 사람들은 시간을 숫자로 다 분절해 놓고 초 단위로 세면서 생활을 하고 있어요. 시계는 인간의 편리를 위해서 만든 기계인데 오히려 현대인들은 시계에 종속되어서 살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책은 시계 안의 숫자를 따라다니면서 지내기보다는 시간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주도적으로 시간을 이끌어 가자는 이야기를 해요.

 

그 책이 교수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저는 미술대학교에서 조소과를 나오다 보니까 작업이라는 걸 하잖아요. 우리가 어떤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무엇을 그리거나 만드는 것을 먼저 떠올려요. 현대미술에서는 재료적인 부분보다는 작가의 생각을 어떤 매체를 통해서 시각적으로 표현하는지가 중요해요. 하지만 제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누가 누가 잘 그리나가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미술대학교에 들어와서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겠다고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업의 주제를 정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해요. 저도 주제를 정하기 굉장히 어려워했고, 방황하던 시기에 이 책을 읽고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저는 이 책이 우리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이면을 여러 가지 방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준 게 굉장히 좋았어요.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시각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해 줘서 작가 활동을 하며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리고 처음 읽었을 때가 정확하지는 않은데 아마 대학원 석사 과정 초기나 대학교 4학년 그쯤인 것 같아요. 그 후 박사 과정 때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어요. 그런데 첫 번째보다 두 번째 봤을 때 더 집중해서 책을 읽었어요. 다른 책 같은 경우에는 궁금한 점이 생기면 논문 같은 데 참고문헌으로 쓰기 위해서 다시 찾아 읽을 때가 있는 것 같은데 이 책은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책의 저자도 이 책은 추상적인 학술서가 결코 아니다라고 이야기해요. 그런데도 제 마음 한편에는 시간에 관심을 갖게 해 준 첫 번째 책이라는 생각이 굉장히 강한 책이에요.

 

이 책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무엇인가요?

모든 것이 시간으로 기록된다. 심지어 냉장고 안도 그러하다. 우유팩에는 유통기한 322혹은 더 자세하게 ‘32209:52’이라고 쓰여 있다. 그러니까 953분이 되면 그 우유는 갑자기 뭉글뭉글 응어리가 지면서 요구르트로 변할 것이다. , 나와 함께 가자. 우유팩의 시간 따위는 잊어버리고 젖소시간을 느끼러 가자. 도시의 시간을 뒤로하고 이 세상 곳곳에 무궁무진하게 살아 숨쉬는 시간을 만나러 가자.

이 구절이 가장 인상 깊었던 이유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저도 숫자에 집착 하면서 그 시간이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이 행동하던 것들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시간을 꼭 그렇게 바라봐야 하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시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보여 주는데, 교수님께서는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신가요?

진짜 어려운 질문이네요. 보통 시간과 공간을 같이 묶어서 생각을 하잖아요. 그래서 약 100여 년 정도 전에 시간과 개념이 시공간이라는 개념으로 통합이 됐죠. 공간이라는 것은 우리의 의지대로 옮겨 다닐 수가 있어요. 걸어서, 뛰어서 그리고 차를 타고 말이죠. 하지만 시간이라는 건 절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서 그저 그 안의 질서에 따라서 살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 후회라는 걸 해요. 저도 시간을 되돌려서 다시 어느 시절로 돌아가 어떻게 하고 싶다라는 생각들을 예전에는 많이 했어요. 굉장히 허무맹랑한 생각일 수 있지만, 작가는 시간이라는 게 미래를 향해서가 아니라 거꾸로 흐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이유는 사람이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시간이 흘러간다는 거죠. 어떤 논리나 주장은 아니고 그저 작가의 상상력이죠. 사람들이 후회를 더 많이 해서 시간을 거슬러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시간은 거꾸로 갈 수도 있을 텐데, 사람들은 미래를 내다보고 희망을 가지기 때문에 시간이 한 방향으로 밖에 흘러갈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도 예전에는 과거에 대한 후회 같은 것들이 많아서 언제 시절로 돌아갔으면 뭘 어떻게 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없어졌어요. 영화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주제처럼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어떤 행동을 달리했을 때 미래가 완전히 바뀌어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만약에 과거로 돌아가 다른 행동을 했을 때 지금 내 아이를 다시는 만날 수 없잖아요. 뭔가가 바뀌었을 테니까 말이죠. 그런 생각도 들면서 시간이 흐르는 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도 했어요. 우리 인간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것들이 다 시간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살며 거스를 수 없지만 그래도 시간에 꼭 끌려다닐 필요도 없죠. 그래서 시간표에 쫓겨 다니면서 시계에 종속되는 삶이 아니라,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그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후회를 하고 있는 우리학교 구성원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요?

아까 했던 이야기랑 비슷한 것 같아요. 정말 과거로 돌아가서 무언가를 바꾸거나 그때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거는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고 과거가 바뀌었을 때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나고 또 거기에 대해서 후회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냥 순응하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후회하기보다는 그 시간 시간마다 최선을 다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절대 후회 안 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요.

 

시간에 종속되지 않고 주도적으로 시간을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뚜렷하면 주도적으로 자기 시간을 사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아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시간이 얼마가 걸리건 상관없고 피로를 느끼지도 않고 너무 재밌잖아요? 그런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학생들도 많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인생의 목표나 추구하는 바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는 게 시간을 주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우리학교 구성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전하고 싶었던 말은 아까 얘기했던 후회와 관련된 내용인 것 같아요. 굉장히 허무맹랑한 상상이지만 모든 사람이 다 후회를 하고 있으면 정말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후회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감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른 교수님들이나 어른들에게 인생의 황금기가 언제였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대학교 1, 2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대학에 입학을 하기도 했고 젊은 나이라 그때는 정말 모든 면에서 풍성하고 에너지가 충만한 때인 너무 좋은 시기인 것 같아요. 만약에 굉장히 안 좋은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추억이 되고 이런 모든 것들이 쌓여서 다 미래에 밑거름이 될 수 있어요. 후회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간이 돌아가지는 않죠. 그래서 언제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정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찾아서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