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호] 예체능 전공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17-03-19     방정은 기자

  대한민국에서 예술, 특히 클래식 계통의 예술을 한다고 말하면 꼭 나오는 질문이 있다. “집 좀 사시나 봐요?” 이런 질문에 못 산다 할 수도 없고 나는 늘 애매하게 웃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매년 뉴스에서는 고액레슨과 뒷돈이 오가는 입시현장을 폭로하고, 신문에선 음악하는 사람은 한 달에 몇 백씩 쓴다더라 하는 기사가 실린다.
  이 뿐만 아니다. 군기 잡은 문화부터 개성 강한 예술전공생들끼리의 뒷이야기 등 비전공자들이 바라보는 전공자들의 세계는 ‘별세계’다. 기자도 음악교육과이고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접하며 많은 전공자들을 만났지만 전공자들이 정말 집 좀 살고 개성 강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나조차도 편견을 먼저 가지고 그들을 접했고 직접 겪었기 보다는 ‘그랬다더라’는 식의 자극적인 이야기만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물어봤다. 4살 때부터 음악을 시작해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 피아노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유현성(연세대·11)씨. 그는 ‘클래식 전공자’이기 때문에 받는 오해 및 모든 일들에 대해 미리 대답을 준비한 긋이 담담히 쏟아냈다.

 

  우리도 똑같다
  멋모르고 음악을 시작할 땐 연주자 아니면 교육자만이 음악전공자의 진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길은 많다. 예로 들면 피아노를 하다가 작곡이나 지휘자로 가기도 하고 음악평론가나 음악잡지사 같은 곳에 취직할 수도 있다. 또한 음악치료사같이 심리치료 쪽에서도 진공자로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역시 음악을 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꿈은 연주자일 것이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뗀 그의 입에선 다소 암울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요즘 세계적으로 한국 학생이나 20·30대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성공하긴 힘들다. 일단 한국 내 클래식 시장이 너무 좁고, 외국에서도 아직까진 한국이란 작은 나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 활동한다 해도 향수병 때문에 고생할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이 약하다거나 하는 이유로 연주자로서의 길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교육자의 길을 가는 게 좋지 않나 싶다”
  그래, 밥 벌어 먹고 살만한(?) 세계적인 연주자가 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불현 듯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꾸준한 연습을 필요로 하는 전공생들에겐 큰 족쇄가 아닐까 싶어진다. 남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심스레 물어봤다. “맞다. 큰 문제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내 생각에 예술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의지와 노력 그리고 집중력이다. 그게 있다면 어떤 환경이 주어진다 해도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갔다 와서다” 노력을 강조하던 그가 돌연 한숨 쉬듯 내뱉은 말들은 현실적이다. “남자든 여자든, 심지어 유학 갔다 온 선생님들조차도 진로에 있어서 굉장히 힘들어한다. 예로 들어 피아노 강사 한 명 뽑는다고 일 년에 한 번 공지가 나면 거기에 120명 정도가 몰린다. 또 강사가 되도 4대 보험도 안된다.” “남자의 경우는 결혼도 해야 하니까 고민을 많이 한다.” “게다가 해외에서 각광받는 어린 영재들도 많은데 그런 영재들이 한국에 돌아오면 아무래도 채용을 할 때 국내파보다는 플러스 요인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자기계발하고 나태해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또다시 노력을 강조했다.
  화려한 무대 뒤에는 치열한 경쟁과 끝없는 정진이 있다. 그리고 그 뒤엔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문제 등 밥 벌어 먹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현실이 존재한다.

 

  이해 받고 싶은, 슬픈 사실
  예술인은, 특히 음악 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많다. 그 역시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민한 성격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음악인이 예민하지 않으면 음악을 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소리를 듣는 작업이고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또 연주자가 무대 위에서 완전히 몰입된 연주를 보여주지 않으면 관객이 실망하기 때문에 연주자는 늘 연습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혼자와의 고민 속에서 많은 갈등을 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옆에서 누군가 뭐라고 하면 조그만 일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고가 되려면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는 사실은 사람을 이기적으로 만든다. 가끔 뒤돌아서면 후회한다는 그의 말이 ‘참 외롭게도’ 들린다.
  음악이야기만 너무 한 것 같아 우스갯소리로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땐 무용과를 ‘단(단순)무(무식)지(지X)’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웃으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무식하단 거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무용과 뿐 아니라 체육과 애들도 마찬가지인데, 훈련이 너무 고되다 보니 일단 몸이 지친다. 사람이 피곤하면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지 않나. 악기 하는 사람들도 서너 시간만 연습해도 피곤한데, 무용과는 단체 연습이라 빠질 수도 없고 얼마나 피곤하겠나. 그런 걸 감안하면 일반인들이 무용과나 체육과를 좀 더 이해 해줘야 한다.”
  꽤 진지하게 얘기하는 그의 모습에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당장 우리학교 체육교육과 학우들이 수업시간에 자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무용이든 연습 후엔 정신만 피곤한 게 아니라 몸도 노곤하기 마련이다. 그런 특수성을 일반인들은 얼마나 이해할까.
  신경질적이고 이기적이고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예체능생들의 모습들은 오해라기보다 사실이지만 슬픈 사실이다.

 

  예체능생은 돈이 많다?
  늘 예체능생에겐 돈 많은 집 자녀라는 수식어가 붙고 그 뒤엔 입시비리나 고액레슨이 따라온다. 개인적으로 가장 억울한 부분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예체능만큼 ‘빈부격차’가 심한 분야가 있나 싶다. 나의 경험으로는, 일반인이 아는 ‘고액과외 고액레슨’도 물론 존재하지만 그보단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그 역시 그런 오해를 받았지만 사실은 다르다고 한다. “지금 저희 교수님의 경우 50대 후반이신데 당시 유학을 가서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하셨다. 또 어떤 분은 독일로 유학을 가려는데 비행기표가 없어서 입양아를 데리고 타는 조건으로 비행기를 타고 유학가시기도 했다. 교수님 세대조차도 그렇게 하셨다. 근데 IMF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니 그런 시선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닌데다가 요즘은 예전에 비해 예체능 전공의 가난한 학생을 위한 장학금 제도도 많다. 야마하 같은 기업에서도 주고 학교나 교육청에서도 준다.”
  어려운 형편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 많은 예술인이 있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의 모델이 된 함신익 지휘자도 그렇고 최근 많은 이슈를 모은 양학선 선수도 그렇다.
  꼭 정상에 서서 각광받진 못해도 자신의 꿈을 위해 현실 속에서 나름대로 노력하는 예체능 전공생이 많다.

 

  딱딱하게 말하지마. 네가 날 딱딱하게 만들었잖아
  사회 곳곳에서 군대식 군기잡기가 문제가 되지만 음악계에서 군기를 잡든다는 건 의아해할 법 하다.
  개성 넘치는 후배들을 기선제압하기 위한다는 말은 얄팍한 핑계다. 선배와 후배사이도 문제지만 교수와 제자 사이도 외국보다 딱딱하고 권위적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뒷돈’이나 ‘군기 문화’가 정착됐다. 가장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전례이기 때문에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다. 유현성 씨는 이에 대해 “자유로운 분위기를 직접 느껴봐야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겪기 힘드니까 계속 전례로 남는 것 같다. 전례이다 보니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하기 어렵다”고 입장을 취했다.
  선배들과 현 우리들이 당연하게 겪어온 모든 것들은 누군가가 보기엔 너무도 부당하지만 마냥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힘든 부분이다. 그로 인한 유대와 결속이라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유대는 공포와 권력에서 온 딱딱한 것이다. 정이 넘친다지만 딱딱한 관계. 우리는 왜 서로를 딱딱하게 만드는가.

 

  화성에서 온 전공생 금성에서 온 비전공생
  애초 서양예술을 동양에서 한다는 건 얇은 역사와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현재 대한민국엔 좁은 시장과 대중의 오해 속에서 설 자리를 잃은 전공생들이 많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까지 “조금만 더 예술전공생들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교원대생에게 할 말이 없냐고 묻자, “딱딱한 음악회가 아니라 해설이 있는 음악회나 청소년 음악회 같은 곳에서 제대로 된 음악을 접해보면 좀 더 이해가 잘 된다고 말하는 그는 조금 지쳐보였다.
  우리는 늘 자신의 상황을 이해받고자 한다. 또 자신이 소속한 분야에 대해 사람즐이 조금 더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비전공생에겐 예술전공생들이 화성에서 온 것 같이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자기 영역에서 화성인이고 금성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