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호/사설] 정보와 판단
자연 현상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속적으로 일어나지만, 이러한 자연 현상에 대한 기록 혹은 관측은 물리적 한계로 인해 불연속적일 수밖에 없다. 지진과 같이 비주기적이고 실시간 관측이 힘든 자연재해들의 경우, 제한적인 관측값들로부터 해당 현상들을 설명해야 하므로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인류에게 공포와, 이를 이해하고픈 욕망을 동시에 선사해 왔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은 서구 문명에 큰 충격을 준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서로 대립하던 서구 종교들의 기도를 통한 대통합과 계몽주의적 측면에서 원망스러운 신에 대한 분노로부터 출발하는 지진에 대한 이성적 고찰이 시작되는 계기를 동시에 제공했다. 이러한 흐름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듯하다. 전 세계에 수많은 지진계가 설치됐지만, 인류는 여전히 위성으로 대기를 관측하듯 땅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여전히 부족한 관측을 통해 지진을 연구하기 위한 현대적 접근이 시작된 지 이제 겨우 200여 년이 흘렀고, 여전한 불확실성 속에도 지진을 이해하거나 특히 예측하려는 과학적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공포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는 듯하다. 과거와 달리 여러 매체를 통해 정보가 넘쳐 나고 이에 대한 접근성이 자유로워지면서 막연한 공포가 편집적으로 만들어 낸 공포, 즉, 잘못된 혹은 왜곡된 정보부터 파생된 왜곡된 해석과 결론이 만들어 낸 공포로 전환되는 듯하다. 지진의 경우는 지진운, 산갈치와 같은 심해생물의 출현 등과 같은 검증되지 않은 지진 전조 현상을 맹신하고 두려워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자연 현상들을 이해함에 있어 경계해야 할 것들 중 하나는 소위 “성급한 일반화”로 말할 수 있는 통계적 오류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지진과 같이 관측의 어려움으로 인해 지진에 관계되는 것으로 알려진 여러 물리량의 변화가 불확실성이 큰 경우, 제한적 관측을 통해 얻은 물리량들의 조합 혹은 상관관계로부터 경우의 수를 따지고 가장 불확실성이 적은 경우를 선택하여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추론 과정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임의의 표본 조합을 고르는 것”과 “극솟값이 아니라 최솟값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임의의 표본 조합을 고르는 것”은 흔히 샘플링이라고 하는데, 이는 수많은 경우의 수로부터 답을 찾는 과정에서 편향적인 표본 선택으로 인한 왜곡된 결과 도출에 빠지지 않기 위함이다. 그리고 “극솟값이 아니라 최솟값을 찾아 나가는 것”은 결론에 수렴하는 과정에서 항상 결론이 불확실성이 가장 적은 합리적인 값인지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성급하게 결론을 낼 경우, 자연 과학에서는 흔히 극솟값에 빠진다고 하며, 이를 경계하고자 극솟값과 떨어진 임의의 표본 조합을 기계적으로 선택하여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여 최솟값을 찾아 나간다.
위에서 자연 과학 중 지진의 연구 과정을 예로 들었으나 일상생활에서 판단을 하는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보의 양이 무한대에 가깝고 이에 대한 접근성이 강화되고 있지만, 개인이 수용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제한적이며 이러한 정보들 중에는 왜곡된 정보들도 상당하다. 이러한 정보들로부터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도 임의의 표본 조합을 고르고, 극솟값이 아니라 최솟값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거치면 좋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보를 제공하는 환경이 이를 방해하고 있는 듯하다. 대표적인 것들이 소위 ‘알고리즘’으로 알려진 정보 제공 방식이다. 정보 검색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포털이나 최근 선호되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의 경우, 사용자의 검색 기록이나 정보 선택 기록 등을 바탕으로 사용자의 성향을 판단하여 유사한 정보를 우선하여 노출하도록 한다. 이러한 방식은 판단이 필요 없는 정보의 소비 측면에서는 사용적 편의성을 제공하지만, 사용자의 정보 판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오히려 편향된 극솟값에 빠지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즉, 임의가 아닌 편향적 정보를 선택하게 되고,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수렴한 정보가 정답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이러한 경향들을 보면, 현재의 정보 제공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편의성보다는 제공자의 편의성(수익성)이 더 강조된 듯하다. 하지만 이로부터 파생된 판단과 책임은 결국 개인의 몫이다. 지진 발생 전후에 지진운이나 산갈치가 발견됐다는 기사나 영상, 그 댓글에 나타나는 지진에 대한 확증적 공포를 보면, 필자도 과거엔 단순히 무지로부터 비롯됐다고 보고 개탄스러웠지만, 요즘은 편향적 정보 제공으로부터 비롯된 안타까운 판단으로 보여 안쓰럽기도 하다. 따라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알고리즘’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정보를 수용(“임의의 표본 조합을 고르는 것”)하며 정답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지 의문을 품는 과정(“극솟값이 아니라 최솟값을 찾아 나가는 것”)을 통해 편향되지 않고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이며, 어쩌면 더 보편적으로 ‘알고리즘’과 AI를 다루게 될 세대들을 위해 주도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이 앞으로 교사들이 우선시해야 할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