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호/사회탑] 히잡에서 시작된 2022 이란 시위, 이란 체제에 대항하다

2022-10-16     김인경 기자

테헤란을 방문한 이란의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경찰의 곤봉에 맞고 차량에 짓이겨져 사망했다는 사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제기되면서 히잡 반대 시위가 이란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시위는 표면적으로 보면 히잡 문화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출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간 경제·정치적으로 쌓여 온 이란 국민의 체제에 대한 반발이 담겨 있다. 이번 시위는 여성은 물론 남성들과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2019년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예측된다. 이란 당국은 시위의 강경 진압에 대해 부인했지만, 시민들을 향해 실탄을 쏘는 장면 등이 공개되기도 했다.

 

히잡으로 시작된 전례 없는 대규모 시위

지난 913, 테헤란을 방문한 이란의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는 머리카락 일부를 드러낸 혐의로 이란의 도덕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마흐사는 코마 상태로 병원에 옮겨져 사흘만인 지난 16일 숨을 거뒀다. 테헤란 경찰서장은 이를 불행한 사고라고만 발표했다. 하지만 경찰의 발표와 달리 아미니는 경찰의 곤봉에 맞고 차량에 짓이겨져 사망했다는 사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제기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민심이 폭발하였고 마흐사의 사망 다음 날인 17일부터 히잡 반대 시위가 시작되어 이란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란의 히잡 반대 시위가 이란의 주요 도시로 거세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이는 이전에 이란에서 발생했던 시위들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지난 2009년엔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었던 대통령 선거 후 수백만 명이 거리로 나와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주요 도시에 국한됐으며, 주로 중산층이 주도하는 형태였다. 이보다 더 최근인 2017년과 2019년엔 경제 상황에 항의하며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났으나, 이때는 대부분 노동자 계층이 참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앞선 시위와 달리 이번 시위에서는 사회 계층 및 나이를 막론한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이 아닌 도시와 마을 수십여 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시위대가 외치는 문구에는 히잡에 대한 선택권뿐만 아니라, 여성의 자유, 체제에 대한 반대를 요구하는 내용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2022 이란 시위, 히잡을 넘어 억압적인 정부에 대항의 메시지를 남기다

이번 시위는 표면적으로 보면 히잡 문화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출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쌓여 왔던 이란 국민의 불만이 함께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2년 이란이 비밀리에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20년간 서방의 제재 하에 이란은 세계 시장 경제에서 소외되었다. 이로 인해 화폐가치는 급락하고 경제 상황은 바닥으로 치닫게 되었다. 여기에 2022년 식량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의 후유증으로 인해 이란의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20229월 기준으로 이란의 연간 물가상승률이 50%를 돌파하면서 억압적인 이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한계치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이번 시위를 당국이 실탄과 최루탄으로 탄압하자 민심은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시위대의 분노는 33년째 집권 중인 하메네이를 향하고 있다. 하메네이는 자신이 총애하는 차만 모즈타바를 후계자로 세우려 하고 있으며, 시위대는 이 사실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 교수는 이번 시위에 대해 과거 반정부 시위는 특수 계급, 혹은 특수 지역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크고 작은 시위를 경험했던 다양한 계층이 결집했다라며 그간 누적된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역대 반정부 시위 중 가장 격렬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 진단했다.

 

각 계층이 참여한 최대 규모의 시위 자국민들에 대한 폭력 멈춰야

이번 이란에서의 시위는 2019년 시위 이래 가장 큰 규모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여성은 물론 남성들도 시위에 다수 가담하기 시작했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확산되면서 이란 정부는 강경 진압에 나서는 모양새다. 국제인권단체인 이란휴먼라이츠(IHR)에 따르면 현재까지 최소 200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란 치안 당국은 평화롭게 시위하던 시민들을 죽이지 않았다며 부인했으나, 이들이 거리에서 시민들을 향해 실탄을 쏘는 장면이 촬영돼 공개됐다.

지난 1014, 조 바이든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밸리 커뮤니티 칼리지 연설에서 이란은 단순히 기본권을 행사하고 있는 자국민들에 대한 폭력을 멈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총탄을 발사할 때마다 이란 당국은 스스로에게도 총을 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 시위가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현재의 경제 상황이나 통치 방식에 대항하여 기본권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영원히 잠재우기는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