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호/컬처노트] 회색 담배와 그 위에 하얀 상상, 다시 그 위에 덮인 ‘회색 숨’

2022-09-26     신예주 기자
사진 / 신예주 기자

 

관람객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이하 청주관)’에 도착하면 무언가 압도되는 느낌을 받는다. 청주관 앞에 있는 탁 트인 잔디 광장, 문화제조창 본관과 이어져 거대한 건물 크기 때문만이 아니다. 외벽에 걸려 있는 권민호 작가의 ‘회색 숨’이 주는 아우라가 있다. ‘회색 숨’은 청주관에 방문한 관람객들이 가장 처음 만나는 작품이다. 작가는 1960~70년대의 ‘산업화’가 주는 이미지를 청주관과 청주관의 전신인 연초제조창을 소재로 풀어냈다. MMCA 청주프로젝트 2020으로 선정돼 2023년 7월까지 만날 수 있는 ‘회색 숨’은 청주관의 역사와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 사람들이 숨 쉴 수 있는, 회색 외벽을 가진 새로운 공간

청주관이 들어서기 전 이 건물은 연초제조창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일하며 엄청난 수량의 담배를 생산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며 담배 규제가 활발해졌다. 담배 회사의 쇠락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내덕동 연초제조창도 그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결국 연초제조창은 2004년에 문을 닫고 리모델링을 거쳐 2018년, 청주관으로 재탄생했다.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하며 내뱉던 ‘회색 숨’은 대신 미술 작품으로 채워졌다.

사실 청주관으로 리모델링 하는 과정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리모델링 방법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있기도 했고, 건물이 완공된 직후에 작품을 옮겨 작품 보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각종 논란과 코로나19 등 힘든 시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청주관은 몇 년에 걸쳐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았다. 지역 주민에게 청주관은 든든하고 동시에 친근한 문화 공간으로 다가온다. 지역 주민들은 청주관에서 미술 작품을 보며 여유를 즐기고, 각종 미술 관련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연초제조창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번듯한 미술관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 연초의 회색, 누군가가 ‘회색 숨’을 통해 기억할 과거

청주관은 내년이 되면 개관 5년 차가 된다. 시간이 지나며 청주관이 들어서기 전 연초제초장의 흔적은 점점 사라지고, 옛 연초제조창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권민호의 ‘회색 숨’이 소중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회색 숨’은 청주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통해 청주관의 과거를 기억하고, 작품 안에서 나타나는 공장의 이미지와 현재 청주관의 모습 사이 대비를 통해 청주관이라는 곳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관람객들이 ‘회색 숨’을 보고 느낄 개개인의 감상까지 포함한다면, ‘회색 숨’은 청주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까지 해석할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연초제조창과 청주관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건물처럼 규모가 크고 거대한 것부터 애정이나 관심처럼 언뜻 모호하게 느껴지는 것까지, 모든 것은 변화의 여지가 있어 아름답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움에 홀려 무언가 변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으면 안 된다. 우리가 권민호 작가의 ‘회색 숨’을 통해 과거 청주관의 모습을 바라보듯이,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잡아둘 수 있는 것을 간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