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호/사설] 교원임용고사, 그 이상을 꿈꾸며
교사가 되기 위해서 한국교원대에 입학을 했지만 진로에 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임용고사에 합격 또는 불합격한 선배들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기도 하고, 때론 불안해지기도 한다. 일단은 합격을 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우울한 전망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갈수록 적어지는 선발 인원을 보면서 불안과 걱정이 삶을 지배하곤 한다. 교원임용고사를 거쳐 교사가 되는 길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길이다. 깨어 있는 교사 한 명이 수십 명의 학생을, 학교를, 지역을 살릴 수 있다. 준비된 교사가 아름다운 이유이다. 하지만, 그 길만이 전부는 아니다. 교사가 아니어도 교육의 가치를 품으면서 여전히 가치롭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적지 않은 교사들이 교단에 진출을 하고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생활지도와 학급운영에서 뜻하지 않은 돌발 변수가 자주 발생한다. 여러 이유로 마음에 상처를 지닌 학생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학교폭력, 상담, 학력부진, 난독증, 사회복지 등등 고난도 문제를 교사 스스로 해결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이러한 전문가의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학교를 떠난 청소년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학교 밖 청소년들을 품고 그들을 위해 인생을 거는 다양한 시설과 기관, 활동가들을 알고 있고, 접해 봤는가? 농어촌 학생들은 도시에 사는 학생들보다 학습과 문화 여건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계층과 지역에 따라 학생들의 꿈의 크기가 달라진다. 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기 위해 멘토링 내지는 진로, 학습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개발 및 운영 하면서, 교육격차가 곧 사회격차로 이어지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을 만나 보았는가?
기존의 공교육에는 다양한 규제가 존재하고, 입시에 종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교육과정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편 공교육 교사로서 주는 직업적 안정성을 버리고,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공동체성과 자율성, 주체성의 가치를 바탕으로 기존의 공교육 문법과 다른 방식으로 대안교육에서 상상력과 실험정신을 발휘하기도 한다. 대안교육 역시 우리가 품어야 할 소중한 교육의 공간이다.
수많은 법률과 정책, 사업, 예산이 학교를 관통한다. 학교는 다양한 법령을 시행해야 한다. 그 방향이 잘못되면 현장은 몸살을 앓게 된다. 국회에 교육을 이해하는 제대로 된 보좌관이나 국회의원이 필요한 이유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어떠한가? 공무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예산이 없습니다.”, “규정에 없는 일입니다.”, “관례에 없는 일입니다.”, “우리 부서 소관이 아닙니다.”, “좋은 아이디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라고 한다. 관행과 관습, 경로의존성, 이해관계에 포획된 관료들이 정책과 사업을 펼치는 그 순간 학교는 메마른 하부 행정기관으로 전락하게 되고, 교원과 학부모, 학생들은 고통을 받는다. 교육부와 교육청에 역량을 지닌 정책 혁신가가 필요하다. 연구자의 삶은 어떠한가? 정책과 사업은 더 이상 주먹구구 방식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연구에 의한 정책 개발, 객관적인 성과 평가, 현장과 미래의 시선에 본 정책 피드백 등이 필요하다.
좋은 가정 배경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들이 타인의 실패, 아픔, 고통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이 판사, 검사, 변호사로서 역할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득권을 위한 정의로 변질될 수 있다. 교육을 둘러싼 다양한 사건의 현장에서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그런 법조인은 어디에 있을까?
모든 이들이 서울로 향할 때, 지방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몸부림치는 지역 활동가들이 존재한다. 누가 지역을 가꿀 것인가? 교육에 관한 다양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데, 공무원을 무한정 늘릴 수 있을까?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공익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누가 그 일을 해야 하는가? 환경, 복지, 경제, 정치, 교육 등등 각 분야에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NGO를 누가 이끌어야 하는가? 언론을 보라. 교육의 본질을 알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얼마나 될까? 교육은 사회부 초년 기자들이 잠시 거쳐 가는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피상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만 쓰는 기자들로 인해 교육에 관한 이미지는 더욱 왜곡된다. 교육을 제대로 아는 기자가 필요하다.
이처럼 교육과 사회의 생태계로 우리의 관점을 확장해 본다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영역과 분야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실제로 한국교원대를 거쳐 간 선배들의 삶을 추적해 보면, 가슴 뛰는 일이 교사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교원임용고사가 수험생들에게 주는 고통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하지만, 교육과 사회의 생태계에서 존재하는 고통의 총량을 놓고 보면 일부에 불과하다. 인간과 자연의 고통을 해소하고, 행복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교육과 사회의 어떤 영역에서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이들이 있다. 그러한 존재와 경로, 삶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