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호/사설] 당신은 어떤 스토리텔러입니까

2022-05-01     한국교원대신문

스토리텔링(story telling), 즉 이야기를 말한다는 것의 목적은 단순히 재미있는 것을 공유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야기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수많은 장면들은 독립적으로 또는 산발적으로 존재할 때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인간의 해석에 의해 각 장면들이 연결되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 이를 두고 조너선 갓셜은 그의 저서 <스토리텔링 애니멀>에서 모든 사람의 뇌에는 작은 셜록 홈스가 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셜록 홈스는 관찰되는 것을 역추리해서 특정한 결과로 귀결된 원인의 질서 정연한 연쇄를 밝히려고 한다. 삶을 일관되고 질서 정연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경험하려고 하는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본능이다.

 

미래학자 롤프 젠센은 현대 사회의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 이야기에 주목한다. 농업 사회의 기반은 가축과 토지였고, 산업 사회의 기반은 석유와 철광석이었다. 그리고 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를 가진 자가 앞서 나갈 수 있었다. 롤프 젠센에 따르면 정보화 사회 이후에 도래할 세상은 꿈과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자가 주도하게 될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힘은 이미 수많은 사례로 증명된 바 있다. 일례로 판타지 소설인 반지의 제왕은 영화로 제작되어 총 3억 달러의 흥행을 불러왔다. 뉴질랜드 영상 산업은 164% 성장되었으며 2만 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나타났다. 이는 관광 산업의 활성화와 국가 이미지 상승으로 이어졌다.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은 스토리텔링의 힘을 더욱 증폭시킨다. 다양한 매체의 수많은 채널을 통해 제공할 콘텐츠가 끊임없이 요구되는데 콘텐츠의 원천은 이야기이다.

 

스토리텔링이 상업적인 중요성만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이야기는 주장, 지식, 사상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 건국 신화로 왕권의 정당성을 부여하던 것에서 시작해서 현대에 이르러 정치인들이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 대중에게 어필하는 것 모두 스토리텔링에 해당한다. 정치인이 내세우는 공약보다 때로는 그가 정치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라든가 그가 겪은 굴곡진 삶이 기억에 보다 오래 남으며 사람들의 행동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타인을 설득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전문 작가들이 하고 대중은 그것을 소비하기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 현대인은 유능한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한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말할 것인가? 스토리텔링 교육에서는 의 이야기에서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의 삶은 한 편의 스토리이다. 이 스토리에서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편집자 역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편집자로서의 우리는 특정한 현재의 경험을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과거의 경험과 관련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의 경험을 예상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사건 중 무엇을 선택할지, 그 사건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스토리는 내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결정한다.

 

이쯤에서 나는 어떤 스토리텔러인가를 생각해 보자. 만약 내가 우울하고 슬픈 스토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자신의 삶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동일한 경험이라고 할지라도 새로운 편집을 통해 긍정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삶의 어떤 장면을 유의미한 것으로 만들지 그리고 이미 벌어진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어떻게 규정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어느 누군가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스토리 안에서 결함이 있을지언정 고귀한 주인공들이다. 내 삶의 스토리를 되돌아보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편집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