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7호/교육] 노동 환경으로서의 학교 급식실을 되돌아보다
세종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사람을 갈아 넣어 급식을 하는 실정”
지난 13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는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학교급식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급식실 인력 공백에 대해 대체인력을 적절히 수급 받지 못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대책을 촉구한 것이다. 또한 급식실 노동자가 폐암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는 사례가 늘어나며, 급식실이라는 노동 환경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고용노동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관련 기준 마련 및 건강 검진 실시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미흡한 대응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 코로나19로 인한 급식실 인력 공백 … 여전히 부실한 대체인력제도
지난 4월 13일 서울교육청 앞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인력 공백에 대한 대체인력 충원을 촉구하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이하 학비노조) 학교급식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렸다. 학비노조의 이러한 문제 제기는 3월부터 전국적으로 계속되어 왔다. 또한 지난 27일, 세종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와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대전지부도 각각 교육공무직 전 직종 전담대체인력제도 마련 및 배치기준 개선 요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처럼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거세진 것은 기존의 무리한 급식실 배치기준과 대체인력제도의 부실성에 기인한다. 학비노조 측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학교 급식실의 조리종사원 1인당 식사 제공 담당 인원이 평균 146명에 이른다. 이는 군대 75명, 병원 32명, 공공기관 64명의 2~3배에 달하는 매우 높은 수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시차배식, 방역과 위생 등의 업무들이 추가되며 노동강도는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코로나19로 인한 인력 공백까지 발생하게 되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인력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는 빠른 대체인력의 투입이 필요해졌다. 대부분의 시·도교육청이 인력풀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마저 인원 수급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학비노조는 “평상시 대체인력을 노조나 급식실 노동자 스스로가 구하고 있다”라는 점을 지적했다.
◇ 안전한 학교, 안전한 급식실? … 급식실 노동자 폐암 발병률 일반인의 24배
노동 환경으로서의 학교 급식실이 과연 안전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올해 2월 23일, 근로복지공단은 경남 창원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다 폐암에 걸린 노동자에게 산업재해를 승인했다. 이는 경남지역 학교 급식실 노동자에 대한 첫 번째 산재 승인 사례이다.
지난해 2월 수원의 한 중학교에서 폐암에 걸려 사망한 조리실무사가 처음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이후 현재까지 총 19명의 급식실 노동자가 폐암으로 산업재해를 승인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고용노동부 산재보상국 업무상질병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월 15일 기준 총 52명의 산재 신청자 중 32명이 아직 심사과정에 있다. 이 중에는 폐암 이외에도 백혈병과 대장암으로 산재를 신청한 급식실 노동자들도 있다.
작년 민주노총에서 발표한 ‘급식실 산업안전 실태조사’에 따르면, 유치원과 초·중·고교 급식실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폐암 발병률은 일반인의 24배에 달한다. 그 주된 원인으로는 급식실 노동자들이 조리과정에서 일산화탄소, 조리흄 등의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것이 지목된다. 2020년 2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발표한 ‘조리 시 발생하는 공기 중 유해물질과 호흡기 건강영향’에 의하면, 학교 급식실에서는 최대 295.4ppm의 일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이는 안전보건규칙의 적정 기준인 30ppm에 비해 약 10배 정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튀김, 볶음, 구이 등 230도 이상의 고온에서 기름을 이용해 요리할 때 발생하는 2.5um 이하의 미세분진인 조리흄은 폐암 발생과의 직접적인 인과성이 밝혀진 발암성 물질로 알려져 있다.
◇ 급식 제공 기준 마련, 환기 시설 개선 및 건강 검진 실시 … 미흡한 점 여전해
고용노동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고자 저마다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0일 ‘감염병 상황에서의 학교 급식 제공 기준’을 마련했다. 조리사·조리실무사의 결원율에 따라 대체식, 간편식 등으로 급식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기준에서도 몇 가지 미흡한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먼저 조리사·조리실무사의 결원율이 아닌 확진율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비판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제시한 기준은 조리사·조리실무사의 확진율에서 충원된 대체인력을 제외한 결원율이다. 하지만 이는 투입된 대체인력이 업무에 익숙하지 않아 기존 인력에게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또한 인력 공백 문제에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대체인력제도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학비노조 측은 현재 강원·충북 지역에서 실시하고 있는 거점형 대체인력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급식실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는 ‘학교 급식조리실 환기설비설치 가이드’를 발표하여 노후 환기 시설의 개선을 본격화했다. 또한 각 시·도교육청에 ‘55세 이상, 또는 10년 이상 근무한 조리사’를 대상으로 저선량 폐CT 촬영을 하도록 권고하여, 현재 시행 중에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노동부의 입장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이미 산재 신청한 노동자 중 55세 미만이 8명, 5년 미만 종사경력 노동자가 6명이나 있다”라는 점을 언급하며 검진 대상 확대의 필요성을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