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호/사회] 탈(脫)원전 백지화, 끝나지 않은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

2022-04-18     김재하

지난 12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는 새 정부가 추진할 친원전 정책의 골자를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목표는 유지하되, 기존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을 탄소중립을 위한 기저 전원으로 활용할 것으로 밝혔다. 일각에서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와 전기요금 문제, 그리고 인근 주민들의 안전성 문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탈원전에서 친원전까지 대한민국 원전 정책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나라 원전 정책은 1959년 이승만 정부의 원자력 연구원 설립 이후 60여 년간 원자력 발전의 진흥이라는 기조를 유지해 왔다. 특히 1970~8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짐에 따라 급증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의 필요성이 더욱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1973년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인 고리 1호기가 착공되었고, 이후 영남권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원전 건설이 이루어져 현재까지 총 24기의 원전이 우리나라 전력의 30% 이상을 공급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증폭된 불안감 역시 공존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조는 2017년부터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하며 크게 변화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2084년까지 원전제로도달을 목표로 하는 탈원전 60년 로드맵을 발표하고,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고 설계 수명이 다 된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는 영구정지되었고, 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 등의 신규 원전 건설은 중단되거나 취소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원자력 산업계의 타격, 탄소중립과의 양립 가능성, 전기요금 인상 문제 등의 다양한 비판에 놓였다.

새 정부가 들어서며 원전 정책의 흐름은 탈원전에서 친원전으로 다시 크게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 전부터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원자력 발전 비중 30% 유지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왔다. 지난 12일 인수위는 실현 가능한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방향에 관한 언론 브리핑에서 이러한 방향성을 이어나갈 것을 천명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했던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 및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유지하되, 기존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과 신·재생 에너지를 조화시켜 탄소중립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중심의 탄소중립 정책에 대해서는 실현 가능성이 크게 떨어지는 한편, 민생 압박 요인도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윤 당선인의 취임 이후 원전 가동률 상향, 노후 원전 수명 연장 등의 적극적인 친원전 정책들이 추진될 가능성이 전망되고 있다.

 

그렇다면 친원전은 정답인가 여전한 폐기물, 전기요금 문제

이러한 에너지 정책의 대대적인 전환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먼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내년 4월에 40년의 설계 수명이 만료되는 고리 2호기에 대한 계속운전안전성평가 보고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한 상태다. 그러나 현재에는 수명이 연장된 원전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처리에 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는 고리·한빛·한울원전이 2031년부터 순차적으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더는 저장할 수 없는 포화상태에 이르게 될 것으로 예측한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고준위 방폐물 처리 특별법은 필요한 사안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라고 하면서도, “현재 유사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가운데 인수위에서 특별법 제정까지 논의가 진전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외에도 한국전력의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의 원인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파악한 인수위의 분석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기후 위기 대응 비영리단체인 플랜 1.5’ 윤세종 변호사는 전기가격은 국제 유가와 LNG 도입 가격의 영향을 훨씬 크게 받고 있기에 탈원전과 한전 적자 및 전기요금 상승 요인을 연결 짓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 5년간 원전 의존도는 23%에서 29%로 꾸준히 늘었지만, 한전의 적자 폭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처럼 탈원전과 한전의 적자 사이의 상관관계가 명확한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희생의 시스템원전의 위험은 누가 떠안는가

원전 문제에 있어 간과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원전 인근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지난 6일 탈핵부산시민연대는 고리 2호기 수명 연장 조치에 반대하며 부산시민이 10개의 핵발전소도 모자라 고준위 핵폐기장까지 강요받고 있는 상황에서 40년 가동한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까지 감내하라는 정부의 폭력을 용납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원전 인근에서는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원전의 수명 연장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들이 누리는 경제적 이득은 스스로의 안전을 담보로 얻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도쿄대 교수 다카하시 데쓰야는 원전이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희생의 시스템으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위험을 부담하는 집단은 소수이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수혜를 받는 집단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다수의 국민인 불평등한 구조는 원전이 지니는 본질적인 한계이다.

 

현시점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의 효율성을 고려할 때 원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의존이 불가피함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효율성과 위험성,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에서 친원전으로의 정책적 전환점인 지금, 원전 문제의 이면에 있는 위험성, 그리고 국민의 안전이라는 최우선 가치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