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호/교수의 서재] 시를 잊은 그대에게
시는 인생의 순간을 담고 있다. 누군가의 환희, 절망, 행복과 같은 여러 감정이 스며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그런 인생의 모든 순간을 포착해 시에서 녹여낸다. 우리는 그런 시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시는 잊혀 가고 있다. 그런 당신에게 국어교육과 김형태 교수는 시집을 내밀어 본다. 다시 시집을 가슴에 품고 잃어버린 뜻을 찾아보자.
◇ 교수님께서 학창 시절 감명 깊게 읽으셨던 책은 무엇인가요?
저는 삶의 해답을 책에서 찾았어요. 책은 저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답을 주기도 하죠. 학창 시절에 제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많아서 도서관을 문턱이 닳도록 다녔죠. 제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제게 해답을 준 게 ‘시’였어요.
대학교 1학년, 시가 좋아서 시 연구 모임에 가입했는데, 동아리 선배가 교내 서점에서 정희성 시인의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라는 시집을 선물해 줬어요. 그 시집이 제가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첫 시집이었지요.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가 많이 담겨 있어서 그 시절 혼란을 겪던 제게 많은 안정감을 줬어요. 정갈함, 단아함, 따뜻함…….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시집이고, 선배가 제게 시집을 선물해 줬던 순간은 영화처럼 오래 남아 있어요. 이 시집 덕분에 문학에 더 흥미를 느꼈고 진로도 더 확실해질 수 있었으니까요. 저도 그 선배처럼 누군가에게 첫 시집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그 책이 교수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원래는 시집을 다 읽기보다 시 자체만 읽었어요. 하지만 정희성 시인의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는 제가 처음으로 끝까지 다 읽은 시집이었어요. 살살 부는 바람과 따뜻한 햇볕 아래 시를 읽었는데, 그 시집이 주는 온화함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정희성 시인은 쉬우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죠. 우리 삶의 순간을 포착해서 쓴 시이기 때문에 여러 현실의 문제를 깊게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더군요.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현실을 다시 곱씹게 해 줬던 이 시집에 감사해요. 내면도 풍성해지고 현실을 다양한 감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책이죠.
그 후로 정희성 시인이 참여하는 시인 콘서트도 다녀왔어요. 도종환, 김용택, 안도현 등 유명한 시인의 말을 듣고 만나면서 시에 대한 흥미가 강해졌어요. 대학원에 가서는 현대 시를 전공하는 계기가 되고, 논문도 쓰게 되었죠. 제가 문학의 길로 들어서는 발판을 마련해 준 시집이에요. 선배를 다시 만난다면, 선물해 준 시집이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 학교에서도 이렇게 선배가 후배에게 시집을 선물해 주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네요.
◇ 이 책을 소개한다면, 어떤 학생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는 1991년에 초판이 발행된 책이에요. 시간이 많이 흐른 책이기 때문에 지금 학생들이 보면 조금은 빛바랜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재를 마주하기보단, 과거를 회상하기에 좋은 책이랄까요. 그래서 학생들에겐 동시대의 고민과 감각이 실린 시집을 더 추천하고 싶어요.
◇ 교수님이 학부생에게 시집을 선물해준다면 어떤 시집을 선물해주고 싶으신가요?
단계를 밟아가며 시집을 선물해 주고 싶어요. 처음 시를 접하는 학생에게는 이해하기 쉽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집을 추천해요. 김사인, 이대흠, 도종환, 배창환, 서정홍, 함민복 시인의 시집은 쉬우면서도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거든요. 진실한 언어로 우리의 인생을 얘기하니까요. 하지만 시가 익숙해지면 조금은 낯설고 불편한 시집을 선물해 주고 싶어요. 우리는 충격으로부터 변화하거든요. 동화, 조절 그리고 평형을 얘기했던 피아제가 ‘교육의 근본 역할이 이전 세대의 일을 단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언급한 적이 있어요. 나와 비슷한 것과의 만남을 통해 나의 역량을 확대하는 것 보다, 나와 이질적인 것을 통해 내가 변화할 수 있는 깊이가 더 커요. 가장 좋은 문학작품은 충격적이고 새롭고, 어느 정도 난해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니까요. 우리 학생들도 그저 지나쳤던 불편한 순간들을 시를 통해 다시 마주하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 학생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전공마다 관련 전공 잡지가 있어요. 예를 들어, 국어과는 문학동네와 같이 계절마다 나오는 잡지가 있어요. 이런 전문 잡지는 동시대의 고민을 깊이 통찰하는 글이 많이 소개되고, 최신 이론을 잘 얘기해 주고 있어요. ‘눈먼 자들의 국가’도 문학동네에서 나온 수필집인데, 4월에 읽기 좋은 책이어서 꼭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이라는 부제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사건을 뛰어난 문장력으로 매우 통찰력 있게 다루고 있어요. 4월은 슬픈 날이 많은 달이에요. 학생들이 책을 통해서 삶의 한순간을 놓치지 않고 곱씹어 보면 좋겠어요. 세월호처럼 슬픈 역사를 다시금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으면 해요.
◇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학생들에게 ‘큰 뜻을 품고 살아라’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교사가 되기 전에 어떤 교사가 될 것인지,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건 매우 중요하거든요. 단순히 임용고시와 취직에만 힘쓰기보다는 자신의 본뜻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맹자’라는 책의 첫 장에는 <양혜왕(梁惠王) 상편>이 가장 처음 나오는데, 양혜왕이 맹자에게 나라를 이롭게 하는 방법을 묻거든요. 그러자 맹자는 ‘왕이여, 이익이 아닌 오로지 의만 있을 뿐입니다’라고 얘기해요. 즉, 사익보다 공익을 추구하며 살면 뜻이 생긴다는 말이죠.
또, 故 문재린 목사가 쓴 북간도 회고록을 읽었는데 아이들의 교육에 헌신적인 모습을 보며 많이 놀랐어요. 북간도 이주민들은 ‘공학전’이라는 공동의 땅을 통해 수확하는데, 이를 오로지 아이들의 교육에만 사용해요. 교사들도 매우 가난한 삶 속에서 아이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조선 독립에 이바지하도록 하죠.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아이들은 모두 뜻을 가지고 공부를 해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은 뜻을 잃은 채 교육하고 교육받는 모습이 많이 보여요. ‘물 위에 씨를 뿌리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라는 함석헌의 말처럼 우리는 수확에 대한 기대 없이 씨를 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래가 암울해도 뜻을 가지고 씨를 뿌리면 언젠가 싹이 트거든요.
하지만 이러한 ‘뜻’은 막연히 품겠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에요. ‘뜻’은 고통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세상의 아픔을 안을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해요. 함석헌은 ‘진정한 앎은 앓음’이라 얘기했죠. 학생들이 가난한 자, 소외된 자, 고통당하는 자들 곁에서 그들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만 잃어버린 ‘뜻’을 얻을 수 있거든요. 저는 그 매개체가 시집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시를 잊은 학생들에게 시를 다시 찾으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