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호/사설] 임기 후반부를 맞이하는 총장과 대학당국에게 바란다.
춘분이 지났으니 절기상 임인년 호랑이해도 벌써 1/4가량이 지났다.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하는 아침저녁의 찬바람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흐름은 그렇게 만물의 변화를 재촉한다. 이제 곧 청명과 한식이 다가올 테고, 자연스레 형형색색의 봄꽃들이 교정 곳곳을 물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우리대학의 2022학년도 1학기 역시 수업 1/4선을 조용히 넘어서고 있다. 여전히 개강 초의 어수선함이 우리 곁을 맴돌고 있지만, 시간은 그렇게 매정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시간의 흐름 속 어디에서 우리의 좌표를 찾아야 하는가?
기실 이번 학기는 어쩔 수 없는 학교 밖의 여러 문제로 더욱 혼란스럽게 시작되었다. 벌써 세 해째 변종을 거듭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협으로 인해 강의실 안팎에서 교육의 기본이 하릴없이 무너져가는 것을 목격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또한 학기 초 시행된 대통령선거의 여파도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에 적지 않은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물론 이제는 마치 당연한 일이라도 된 듯한 한반도의 겨울 가뭄과 그것이 낳은 동해안 일대의 산불은 우리 앞에 놓인 삶이 결코 녹녹치 않다는 점을 더 한층 상기시키는 듯하다.
이런 와중에 우리대학에서는 제11대 김종우 총장이 제2기 집행부를 꾸리며 총장임기 후반부를 맞이하고 있다. 개강 즈음 발표된 제2기 집행부의 면면과 총장의 인사말에 예년과 달리 더욱 눈과 귀를 집중하게 되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여러 변수와 위협이 우리 곁에 상존하기 때문이다. 2020년 총장의 취임사는 “지식창조형 교육전문가를 양성하는 미래한국교육의 중심”으로 우리대학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겠다는 일성으로 시작했다. 물론 예기치 못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지난 두해 동안 도전보다는 안정에 기초한 수동적 운영이 대학의 정책적 기조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를 고려하면 절반가량의 임기가 남은 총장의 공과를 섣부르게 예단하는 것은 결코 온당치 못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위드코로나를 운위하며 이 낯선 상황에 조금씩 적응해 가는 지금 이 시점에서, 총장과 제2기 집행부에서 제시하는 학교운영과 관련된 청사진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3월 11일 새로운 학기의 시작을 맞이하는 인사말에서 총장은 선출직 총장의 임기와 무관한 대학 운영의 연속성을 염두에 두고 “대학의 장기발전에 필요한 정책을 발굴하고 추진”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종합교원양성대학으로서의 위상을 다지기 위해 “교육연구활동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우리는 이와 같은 총장의 의지를 지지하며 몇 가지 제언을 덧붙이고자 한다.
무엇보다 총장의 임기 후반 구상에 우리대학이 나가야할 바에 대한 선제적이고 도전적인 전망이 부재하다는 점을 언급해야 한다. 아쉽지만 국립대학으로서 우리대학은 정부의 정책기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유달리 볼썽사나웠던 지난 대선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국가정책 가운데 하나가 ‘교육’의 문제였고 이제 그와 관련된 파장이 조금씩 감지되는 듯하다. 더욱이 교육부의 존폐나 축소와 관련된 문제도 논의되고 있다고 하니, 우리대학도 그에 맞선 선제적인 대응책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종합교원양성기관이라는 우리대학의 특수한 목적과 교양의 함양과 지적 수월성을 추구하는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 본연의 책무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를 고려해, 이제는 우리대학이 가야할 방향과 정책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립해야 한다. 교육에 대한 관심도 그리고 전망도 부재한 새로운 정부 아래, 지금이야말로 우리대학이 선도적인 대학운영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대학의 본령을 더욱 철저하게 숙고하고 보다 강력하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기실 유럽에서 대학이 처음 태동할 때 그것은 ‘연구하고 가르치는 이들’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공동체로 시작되었다. 처음 대학이 조합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이 그 때문이다. 우리는 총장의 인사말에서 교육연구활동의 활성화가 강조된 것이 그와 같은 대학의 본령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소산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그와 관련되어 그저 말에 그치지 않는 구체적인 방안이 대학 구성원 앞에 제시되어야 한다. 기계적인 시수 확보나 산술적인 수강생 모으기, 인기투표 식의 강의평가 등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교육과 연구의 질적 발전을 도모하는 혁신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셋째, 이와 관련하여 대학행정 및 운영의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실제 2020년 총장의 취임사에 나타난 첫 번째 약속은 교육환경의 변화라는 외부 요인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과 함께 “내부적으로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그 약속을 실천해야만 한다. 우리대학의 기구나 제도에 뿌리 깊게 상존하는 깜깜히 의사결정구조, 비민주적인 교내 조직, 강의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 편의주의 그리고 친소관계에 기초해 관행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사적인 대학운영 등을 바로잡아야 한다. 대학당국이 바라는 우리대학의 장기발전은 그와 같은 탄탄한 기초 위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아쉽게도 우리는 학기 초 총장의 인사말에서 어떤 낙관적인 기대나 전망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우려를 느낀다. 장기적인 대학발전에 필요한 정책을 발굴·추진하고 교육연구활동을 활성화할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이야기가 자칫 ‘무엇을 하겠다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히기 때문이다. 코로나와 함께 더욱 심해지는 구성원들의 볼멘소리, 즉 ‘대학 당국에 기대할 게 없다’는 푸념을 이제는 날려버려야 하지 않을까? 이에 우리는 임기 후반부를 맞이한 총장과 새롭게 그와 우리대학을 운영해 나갈 집행부가 화려한 말의 상찬보다 구체적인 대안과 실천적 정책을 구성원 앞에 보여주기를 요구한다. 이제 곧 벚꽃이 흐드러지고,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 여름으로 향할 것이다. 바쁜 꿀벌에게는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초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