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호/교수의 서재] 사람의 권리(人權),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이해로부터
우리는 다양성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나와 다른 사람에게 냉소나 혐오 대신 따뜻한 관심을 건네는 것,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이미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이해의 출발점이다. 일반사회교육과 김다현 교수와 함께 책을 통해 그들과 대화하며 우리가 헤아리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 교수님께서 가장 감명 깊게 읽으셨던 책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인가요?
저에게 영향을 준 책 한 권을 꼽으라 하면 김두식 교수님이 쓰신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을 말하고 싶어요. 요즘에는 우리 생활과 연결 지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법, 경제, 수학, 과학 등 교양서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특히 법이나 인권과 관련하여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만한 책이 많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영화를 소재로 인권과 법에 관해 이야기한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이 나와서 순식간에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이 책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여러 인권 문제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많은 사람이 보았던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 또는 대화를 가지고 온 책이에요. 당대의 영화와 드라마, 문학 등은 그 시대상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담고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실제는 아니지만, 실제 우리 사회 모습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영화 속 장면을 보며, 인간의 기본적 권리, 여성, 장애인, 노동자 등 우리 사회 약자들의 모습을 마주하고 그들과 대화해 볼 수 있는 책이에요.
◇ 그 책이 교수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제가 교육학과 법학을 공부하고 법교육이라는 영역에 나름의 뜻을 가지고 연구하며 활동도 하고 있었는데요. 사람들이 느끼는 법에 대한 어려움이 ‘법 그 자체에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점’, ‘내용적으로도 어려운 용어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법을 우리 삶의 유용한 상식처럼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를 매우 많이 고민했었어요. 그렇게 열심히 고민해서 연구하다 보면 사회 여러 구성원에게 필요한 법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시간이 조금 지나 알게 되었어요. 연구를 하기 전에 갖추어야 하는 세상에 대한 식견과 경험이 부족한 상태였다는 걸 범죄소년 교육을 하면서 느꼈던 것이지요. 매주 교육을 위해 범죄소년들을 만났는데 그 친구들이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하면, 순간 답을 어떻게 해야 할까 긴장하기도 하고, 뭔가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되는 어려움이 계속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왜 이런 어려움을 느낄까?’라는 생각에 대한 답이 생기더라고요. 제가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적용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진짜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사실 수많은 책이 내가 알지 못한, 보지 못한 경험을 대신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책은 그 당시 저에게 우리나라 어딘가에 있는 새로운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그 사람들이 어떠한 문제에 봉착해 있는지, 저를 이끌어 경험시켜준 책이라고 볼 수 있어요. 나름 여러 경험을 해 보았다고 생각한 저였지만 제가 살면서 했던 경험들은 제가 선택한 경험들이었고, 이 책은 제가 세상을 보고 싶은 부분만 보도록 허용치 않은 책이었어요.
◇ 이 책을 소개한다면, 어떤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사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하에서 고등학생에게는 단기적으로 대학이 목표가 되는 것이 현실이기에,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사색할 겨를도 없을뿐더러 내 주변을 둘러보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상황에서 자연스레 모든 행동의 책임을 나 스스로 져야 하는 나이가 도래하고, 선거권이 생기면서 나의 결정이 타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큰 힘이 생기는데요. 결국에 우리가 성인이 된다는 것은 나의 자주적인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있지만, 공동체 시민으로서의 역할도 가지기에 이런 역할을 위해 워밍업이 필요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우리 신입생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물론, 고등학생 때 읽어봐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지만요. 그래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실제 제가 수업하는 ‘인권과 인권정책’ 수업 과제로 내주기도 했던 책이에요. 학생들이 별 관심 없었던, 또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길 원했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이 나온 지 좀 시간이 많이 지나기도 했고, 그 사이에 우리의 인권이 조금 더 진일보한 변화가 있었기에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최근에 나온 인권과 관련된 책들을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또는 내가 몰랐던 타인과의 직접적·간접적 대화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이 사회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요.
◇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해주고 싶은 말이 사실 너무 많아요. 저도 대학 입학 후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면서 불안했던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 학생들이 가지는 막막함, 어려움 등을 어렴풋이 알 것 같거든요. 특히 사범대, 법대, 의대처럼 전공이 진로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보면 나에게 주어진 길을 열심히 가야 할 것 같고, 다른 길은 없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아니면 다른 길을 갈 때 ‘내가 기존에 공부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세상의 모든 길은 연결되어 있다’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내가 어떤 도전을 해도 그 도전은 현재 내가 있었던 그 길에서 나온 길이기 때문에 시간을 버린 게 아니라고요. “진짜 괜찮아.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싶은 것 다 해봐, 그런다고 큰일 안 나, 사회에서 규정한 잣대로 나의 인생과 시기를 평가하지 마”라고도 얘기해 주고 싶어요. 쓰다 보니 그냥 다른 사람의 평가, 사회에서 규정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무슨 행동이든 응원한다는 그 말이 하고 싶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