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3호/사설] 사회의 지도자가 갖춰야 할 예술적 소양의 수준

2022-02-13     한국교원대신문

영화 적벽대전에는 주유와 제갈공명이 중국의 현악기 고쟁을 함께 연주하는 명장면이 나온다. ‘의 조조를 대항하여 연합군을 만들어 전쟁을 치를지 말지 고민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중국의 가야금이라 일컫는 고쟁을 음악으로 대화하듯이 즉흥연주로 양측의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이 장면에서 제갈공명은 밑에서 받쳐 주는 베이스 라인처럼 든든하며 온유한 가락을 연주하는 반면, 주유는 처음부터 현란한 기술을 드러내는 거친 주법으로 독주와 합주를 멋들어지게 즉흥연주 한다. 둘의 팽팽한 심리전은 서로에게 친구가 필요하다’, ‘전쟁을 치를 것이다라는 비언어적인 암묵적 합의에 도달하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더 큰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 낸다. 지략을 펼치는 정치가와 무술에 능통한 장군이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하는 장면은 소위 전인교육을 받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이상적인 예술적 소양을 표현하는 데 충분하였다.

이것이 영화 속에서 일어날 법한 상상의 장면일 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계적 지도자들을 살펴보면 예술적 소양과 감수성이 뛰어난 인물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가인 피타고라스는 음악이 영혼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말하였으며 당시 소리의 높낮이를 정리한 배음의 원리인 피타고라스 음계를 발견하였다.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회화, 건축, 철학, , 조각, 물리학, 수학, 해부학 등 다양한 분야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악기(특히 류트)를 잘 다루었고 직접 악기를 만들기도 했다. 천재 과학자들 중에서 아인슈타인은 과학자이자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양자역학의 기초를 만든 막스플랑크도 작곡을 하는 등 음악과 밀접하게 연관성이 있다.

현존하는 인물 중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19541114~ )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 최초이자 미국의 두 번째의 여성 국무장관이다. 그녀는 음악을 전공한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였고 음대에 입학하게 된다. 덴버 대학교 음대 2학년 재학 중 아스펜 음악제에 참가한 라이스는 한 공연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배워 온 모든 곡을 11살짜리 소녀가 거뜬하게 연주해 내는 것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된다. 전문음악가로 성장의 한계를 느낀 그녀는 곧바로 국제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꿔 스탠퍼드대 사상 최연소 학장에 취임하고,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을 거쳐 미국의 국무장관에 취임하게 된다. 2001년 당시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으로 있으면서 요요마가 조지 W 부시 대통령 내외로부터 미국 예술 훈장을 받을 때 브람스의 소나타를 함께 연주한 사진은 전 세계인들에게 놀라움을 안겨 준다.

세계 최고의 음악교육기관이라 불리는 미국 뉴욕의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는 소위 뛰어난 연주력을 갖추고 세계적 수준의 연주가가 되기를 희망하며 줄리아드 음대 입학을 희망하는 어린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한다. 하지만,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를 졸업한 상당수의 학생들이 음악을 전공하기보다는 하버드대학, 프린스턴대학, 콜럼비아대학과 같은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에 타 전공으로 입학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놀랍다. 쉽게 말하자면 국내 최고 음악교육기관 중 하나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교육원에 합격하여 고3까지 음악학습을 병행한 학생이 서울대학교에 비음악 타 전공으로 입학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참고로 전문연주가가 되기 위하여 10대 청소년기에 몰입하여야 하는 연주연습시간은 일주일에 약 50-60시간 정도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굳이 음대에 입학하지 않더라도 소위 수준급 아마추어가 되기 위해서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 시간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우리나라 교육이 지향하는 목적도 바로 지··체를 고르게 발전시키는 전인교육이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의 지도자는 더욱더 복잡하고 다양한 인종과 사회 갈등, 문화, 신념이 공존하는 세상을 이끌어 가기 위하여 넓은 영역을 깊게 다룰 수 있는 지와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덕을 갖춰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육시스템은 문학, 과학, 수학, 역사, 음악, 미술 등 과목을 철저하게 분리시켜 학생들을 가르친다. 최근에는 융합이라는 명목 아래 교과 간의 연계를 꾀하고는 있으나 그 깊이와 정도에 있어서는 상당히 피상적인 수준에 그친다.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의 목적은 전문가가 아닌 전인을 길러 내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창의성은 그들의 일과 취미 속에서 조화롭게 결과물로 발현될 수 있다. 이 때 취미라 일컫는 경험의 깊이와 수준은 감정이입과 함께 깊게 몰입될 수준에 이를 수 있어야 그 재능이 발휘될 것이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음악적 소양을 단지 1-2년만 악기 학습만으로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재능교육은 평생교육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