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3호/교육현장 엿보기] 가장 빛나는 시간, 교직 첫해.

20206483 김문형 (중국어교육과)

2022-02-13     한국교원대신문

교직에 있은 지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교직 생활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학교에 처음 발령받은 근무 첫해라고 대답할 것이다. 초임 교사에겐 담임 업무를 주지 않는 학교도 많지만, 나는 서울 모 중학교 2학년 남학생 32명의 담임으로 교직 첫해를 시작했다.

처음 학교에 발령받아 2학년 담임이 되고 우리 반 학생들 명단을 받아본 날, 같은 2학년 담임선생님들이 우리 반 명단을 보시고는 교직 첫해인데 쉽지 않겠다며 우려와 위로를 해 주셨다. 교사가 막 되어 의욕과 열정이 넘쳤던 나는 걱정도 되었지만 기대가 앞섰고, ‘만나는 첫날 이름을 외워 불러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이름과 번호를 다 외워 가기도 했다. 첫 만남을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남학생, 그것도 에너지 넘치는 중학교 2학년 남학생들과의 1년은 25세 젊은 여자 초임 교사인 나에게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2학년 총 9개 반 중 우리 반이 가장 사건·사고가 넘치는 반이었다. 3명 정도 학생들의 존재감 때문이었는데 그들은 교내외 흡연, 절도 등 웬만한 사건·사고를 도맡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생활지도부에서 학생지도계 업무를 맡았던 나는 교실에서만 보고 싶은 얼굴들을 생활지도부 교무실에서 자주 보고 수많은 선도위원회에 이 아이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고, 내가 담임으로서 부족해서 그런가 자책도 많이 하였다.

A는 그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는 학생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세서 친구들에게 위협이 많이 된 A는 연루되지 않은 사건·사고가 없는 아이였다. 덩치만 컸지 생각은 아직 너무 어리고 옳고 그름을 잘 분간하지 못하며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다른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말로는 A1학년 때는 그렇지 않다가 2학년 올라와서 변했다고 하였다. A에게는 친구들과 모여 다니며 흡연을 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친구를 괴롭히거나 하는 행동이 멋있게 느껴지고 자신이 존재감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주는 것 같았다. 담임으로서 A와 많은 상담을 해야 했으나, 상담 자체를 싫어하고 대답도 잘 하지 않아 아이의 마음과 상황을 정확히 알기가 힘들었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시간 얘기 나누고 지켜본 결과 행동은 거칠지만 그래도 심성이 나쁜 아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부모님도 아이를 잘 지도하시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계셨기 때문에 희망이 보였다.

그렇게 1년을 사건·사고와 함께 정신없이 보내고 교직 첫해 아이들을 3학년으로 올려보냈다. A3학년이 돼서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여전히 등장하였고 그 때문에 생활지도부에서 자주 만나 나는 “A, 우리 작년만큼 많이 얼굴 보는 것 같네. 선생님은 너랑 여기서 말고 복도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싶다.”하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A는 또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졸업하여 모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 후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

A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다른 학교로 전근하여 근무하던 어느 날 갑자기 A가 찾아왔다.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무엇보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A는 얼굴은 예전 그대로였으나 제법 어른티가 났고 덩치가 더 커졌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은 가지 않고 군대를 일찍 갔으며, 제대 후 현재는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중학교 2학년 때 선생님 속 많이 썩인 것 같아 죄송하다고, 자기를 위해 노력해주셔서 감사했다고 인사드리러 왔다는 말을 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고등학교 가서도 처음에는 여전히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중학교 때와 비슷한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부모님이 저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고 공부는 안 해도 나쁜 짓을 더 이상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러면서 점점 나쁜 행동과는 멀어지려 노력했고 군대 다녀온 후 적성에 맞는 일을 찾다가 현재 일을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나도 이렇게 자라준 A가 고맙고 잊지 않고 찾아와줘서 더 고맙다고 전했다. 내가 A를 변화시킨 결정적 역할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때의 진심은 통했구나, 처음으로 교사로서 경험할 수 있는 감동과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내가 그저 매년 바뀌는 담임선생님 중 한 명에 불과하겠지만, 교사의 입장에서 교직 첫해의 경험이란 좋았든 좋지 않았든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는 것 같다. 나의 첫해는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A로 인해 가장 빛나는 한해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