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3호/사무사] 눈을 앗아가는 독재자
우리는 ‘눈과 귀’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듣는다. 그리고 세상의 다양한 모습과 소식들은 입을 통해 전달되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사람의 눈이 멀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한 명씩 자신의 눈을 잃어간다. 도로의 자동차는 갈 곳을 잃어 가만히 멈춰 있었고, 거리를 맴돌던 사람들의 발자취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모두가 눈을 잃은 그 도시는 막막함, 불안감, 그리고 공포로 뒤덮혔다. 암흑만이 남은 도시에서는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었고, 사람들의 이야기도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 도시 속 몇 명의 눈 뜬 자는 사람들의 모든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도시의 권위자가 되었다. 권위자들은 이야기들을 뒤집고, 엮어 자신들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눈먼 자들에게 전파되어, 그들은 영원히 왜곡된 이야기만 들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의 사회에서 ‘언론’은 눈과 귀와 같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론 매체를 통해 전달된다. 언론은 누구나 흔히 아는 이야기가 아닌 약자와 소외자를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다. 또 통치 구조의 권력의 행사를 감시하고, 부정부패에 대항한다. 세상을 보고, 듣고, 그리고 그것을 말할 수 있기에 언론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독재자들은 ‘언론’을 방해물 혹은 눈엣가시로 여겨왔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 영원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언론을 탄압했다. 역사 속의 검열과 제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앗아갔고, 눈과 귀가 가려진 눈먼 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독재자의 시대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대학이라는 사회에서 대학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대학본부와 단체들의 잘못된 점을 비판해야 한다. 또 학내 여러 소외자와 약자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위해 소리쳐야 한다. 하지만 대학 사회에서는 여전히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월 숭대시보의 기자 전원이 해임되고, 발행을 저지하는 언론 탄압 사태가 일어났다. 숭실대학교 총장이 매일경제와 진행한 인터뷰 기사 ‘대학가 위드코로나…숭실대 “100% 대면강의”’가 그 발단이었다. 취재의 필요성을 인지한 기자들은 해당 내용을 지면 1면에 실으려고 하였지만, 주간 교수에 의해 제지되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제1279호 1면을 백지로 발행하더라도 해당 기사를 작성하겠다”라고 맞섰고, 결국 기자 전원이 해임되었다. 이후 기자들의 전원 해임은 철회했지만, 사설에 대한 사전 검열, 예산 부족을 빌미로 한 종이 신문 발행 중단, 숭대시보의 조기 종간까지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되었다. 학보사에 대한 언론탄압은 숭대시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많은 대학의 학보사에서는 편집권 침해, 발행 저지, 사전 검열 등의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 사회에서의 언론은 그저 친목 활동 또는 자기 계발 활동으로만 치부되고, 그들의 정당한 목소리는 큰 벽에 가로막혀 사라지고 만다.
아직 우리 사회 곳곳에는 숨은 독재자들이 살아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눈을 우리도 모르는 새 앗아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도 눈먼 자들의 도시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앞을 볼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영원한 어둠만이 있는 그 세상을. 그래서 우리는 눈을 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권력의 부정부패와 불공정에 부단히 맞서고, 또 함께 소리쳐야 한다. 모두를 위해, 눈을 앗아가는 독재자에게 소리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