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3호/사회] 우리의 도시는 무엇을 내쫓음으로써 아름다워지는가

지하철 서울역 2번 출구 경고문,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나

2022-02-13     구본규 기자

지하철 서울역 2번 출구에 노숙인이 엘리베이터에서 대소변을 보지 않게 하라는 경고문이 올라왔다. ‘홈리스행동은 배제와 차별이 아니라 홈리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며 인권침해 진정을 내었다. 홈리스 배제는 선입견에 따른 이런 행태 외에도 법률 및 정책의 대상이 협소한 데서도 드러난다. 법률의 노숙인 등이라는 표현은 주거빈곤을 절반도 포함하지 못한다. 홈리스를 사회악이 아니라 빈곤의 문제로 보아 해결하고 품어야 한다.

 

배제와 범죄화가 아니라, 제대로 된 대책을!

엘리베이터에서 대소변을 보는 노숙인 발견시 역무실로 신고 바랍니다.” 지하철 서울역 2번 출구 인근에 부착되었던 경고문이다. 지난달 18일 홈리스행동은 해당 경고문이 홈리스 집단에 대한 사회적 고립과 배제를 심화하고 차별과 혐오를 조장한다며 시위하였다. 이후 홈리스행동은 서울교통공사를 대상으로 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격권과 평등권을 침해하는 적대적 환경에 대한 대책 권고를 요구하는 인권침해 진정을 내었다.

일정한 주거가 없는 거리 노숙인에게 공공역사와 같은 공간은 공공성 실현의 장이다. 비바람을 피하고 생리현상을 해결하며, 동료 홈리스와 만나거나 복지지원체계를 접해서 생존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런데 주변에 적정한 공공화장실이 없고 더군다나 코로나19로 인해 역사 폐쇄 시간이 앞당겨지기까지 한다. 경고문은 해당 현상의 원인인 사회 구조와 환경을 은폐하고 노숙인에게 모두 짊어지게 하여 혐오를 유발함으로써 역사 진입을 곤란하게 한다. 결론적으로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낙인 찍히고, 유일하다시피 하는 선택지에서 배제되어 설 공간을 잃어버린다.

서울역 부근의 화장실 문제는 90년대부터 제기된 문제였으나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았으며 팬데믹 상황에 심화되었다. 엘리베이터에 대소변을 누어선 안 된다 수준의 논의가 아니다. ‘왜 엘리베이터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데까지 내몰렸는가라는 사회적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문제 제기다. 서울교통공사 측에서 최소한 외부 공공화장실을 지근거리에 설치하고 꾸준히 잘 관리하는 해결책이라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다. 해당 경고문은 이런 대책 없이 거리 노숙인을 공공역사에서 지우고 빈곤 자체를 범죄화하기 때문에 비판받았다.

 

의도적으로 배제되는 홈리스, 다시 사각지대로

주거빈곤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제도와 시선에서 지우는 행태는 법률과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노숙인복지법)이 지원하는 대상은 노숙인 등이다. ‘노숙인 등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시선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 등 세 범주 중 하나에 속하는 만 18세 이상인 사람이다. 보건복지부 정책에서 노숙인 등일시보호시설 및 거리 등의 노숙인 쪽방상담소가 설치된 쪽방 주민의 두 범주에 속하는 사람으로 제한된다.

이는 대다수 홈리스(homeless)’를 포착하지 못한다. 노숙인은 말 그대로 집 밖에서 자고 묵는 사람을 뜻한다. 반면 홈리스는 더 넓은 의미을 포괄한다. ‘(home)’이 단순 물리적인 의미 이상으로 정붙이는 가정을 뜻하기도 하기에, 안정적 주거환경의 부재는 물론이거니와 주거로 상징되는 사회적 안전망, 돌봄관계 등의 부정(less)’도 포함한다. 주거빈곤으로서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상당히 축소해 보고 있다. 게다가 노숙인복지법 시행령을 통해 만 18세 이상으로 또 제한하여 청소년 홈리스들을 배제한다.

보건복지부는 전국의 노숙인 등이 2016~2019년 말 기준 약 16,000, 2020년 말 기준 약 14,000명뿐이라고 발표했다(보건복지부(2021), 2021년 노숙인 등의 복지사업 안내). 하지만 오피스텔이 아닌 비주택, 즉 쪽방상담소가 없는 쪽방이나 컨테이너 등을 포함하면 2017년 말 기준 약 37만 가구가 된다(국토교통부(2018), 주택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 비적정 주거환경에서 생활하는 대다수의 홈리스는 노숙인 등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각종 복지와 지원의 대상이 아니다. 사태를 축소하여 바라봄으로써 주거권 침해, 주거부정 상태(homelessness)’를 해결하지 않으며, 오히려 차별을 지속하는 모습이다.

사라로스의 아키수츠 (출처 : insecurespaces.net)

 

지하철 서울역 경고문과 노숙인복지법, 두 사례의 공통점은 홈리스를 우리 시선에서 지워버리고 그 대가로 깔끔하고 정돈되어 보이는 도시를 얻는 데 있다. 방역 관리나 건강 관리 등 사회적 안전망 바깥으로 밀려나는 현상, 중간에 난간이 올라와 있는 밴치 같은 적대적 디자인도 대표적인 사례다. 사라 로스(Sarah Ross)의 아키수츠(archisuits)처럼 이런 행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홈리스를 쫓아냄으로써가 아니라 빈곤을 해결하여 홈리스를 제대로 품음으로써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