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2호/이주의 영화관] ‘프렌치 디스패치’ : 우연과 같았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삶의 조각들

현정우(컴퓨터교육·17) 학우

2021-11-29     한국교원대신문

영화 내내 대사가 끊이지 않고 흘러넘칩니다. 아마 너무 대사가 차고 넘쳐 이 글에 쓰는 고유명사 및 설정들도 실제 영화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신문 발행인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고 이를 프렌치 디스패치라는 이름으로 탈바꿈시켜 새로운 잡지사를 창간한, ‘프렌치 디스패치지의 편집장 아서 하워처 주니어의 이 잡지사에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각자만의 개성을 지닌 기자들이 있습니다. 이름과 특징마저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로벅 라이트, 루신다 클레멘츠, J.K.L. 배런슨, 그 이름들만은 영화를 보고도 또렷이 남을 정도인 이들의 개성은 그들만의 문체와 화술로만 이야기될 수 있는, 오직 그들만이 보고 듣고 직접 경험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옵니다.

부고, 짧은 소식, 그리고 몇몇 단편 기사들. 영화가 시작되면 등장하는 첫 문구와 함께. 영화는 편집장 아서의 죽음을 알리는 소식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프렌치 디스패치>의 한 호를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온 듯, 몇 페이지부터 몇 페이지까지. ‘프렌치 디스패치호의 기사들이 화면을 차례차례 채우기 시작합니다. 잡지의 맨 처음, 자전거 탄 기자가 전하는 오래된 도시의 아름다움, 추함, 그리고 (이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한) 과거와 미래가 지역 면의 내용을 채우고 반복되고 나열되면 문화예술 면, 정치사회 면, 요리음식 면 속 기사들이 꿈틀댈 준비를 마칩니다.

<문라이즈 킹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다즐링 주식회사> 등으로 독보적 영화 세계를 구축해 온 웨스 앤더슨이 야심차게 준비한 신작이자 그의 열 번째 장편영화인 <프렌치 디스패치>는 바로 이전 작품인 <개들의 섬>과 달리 각자 인물들이 겪은 단편적인 조각들을 엮고 짜 맞추어 만들어낸 조각보 같은 영화입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살고 있던 환경에서 문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주인공들이 규합하고 결국엔 해내고야 마는 스토리의 영화들(<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문라이즈 킹덤>, <개들의 섬>)이 있다고 한다면, 특정 인물에 관련된 주변인들의 단편적인 기억들이 모이고 모여 종국엔 어떤 멜랑콜리함과 그리움, 간직으로만 남겨질 수밖에 없는 소중한 기억, 추억들을 강조하는 영화들(<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프렌치 디스패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전적으로 후자에 해당되는 영화인데 여태까지 선보여 온 그 어떤 조각모음보다도 세심하고 조밀한 연출, 다양한 카메라 워킹이 사용되어 얇은 숏들과 깊어지는 영화의 감정이 대조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굉장히 즐겁습니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크게 3부로 나뉘어져 있다고 많이 얘기되곤 하는데 이것이 보는 이들에 따라 다르게 나뉠 수 있다는 사실도 재미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문화예술 면, 정치사회 면, 요리음식 면의 세 가지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데, 영화의 구조로 보자면 편집장의 부고, 잡지의 시작과 끝, 그리고 세 편의 기사들이라는 안팎의 3, 이야기의 면에서는 문화예술 면까지 1, 요리음식 면을 기준으로 서서히 2부와 3부가 갈리는 구조로도 이야기될 수 있겠습니다. 특히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는 과거와 미래는 언급되어도 (이는 흑백과 컬러 사용이라는 영화 자체의 이분법과도 연결이 됩니다) 현재는 언급되지 않는데 이게 영화의 깊은 감상과 감정을 유발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치로 작용한다는 것 또한 사뭇 감동적입니다.

본래 2020년 칸 영화제에서 공개돼 그 해 전 세계 개봉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코로나로 공개 및 개봉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져 2021년 말이 되어서야 개봉된 <프렌치 디스패치>. 1118일 상영되어 현재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