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2호/교수의 서재] 기계적인 공정(公正)에서 벗어나 연대하자
‘모두가 같은 시험을 보고 높은 성적을 받은 사람이 합격한다.’ 얼핏 보면 공정해 보이는 말이다. 모두가 각자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출발선은 같지 않다. 누군가는 가족의 지원을 받으며 비교적 편안한 환경에서 공부하지만, 누군가는 스스로 학비를 대가며 지친 몸을 이끌고 공부한다. ‘공정’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공정할 수 있을까. 유아교육과 김미애 교수와 함께 기계적인 공정에서 벗어나 공생할 방법을 고민해보자.
◇ 교수님께서 감명 깊게 읽으신 책은 무엇인가요?
저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감명 깊게 읽었어요. 이 책은 신영복이라는 장기 수감자가 옥 중에서 보낸 편지를 모아 놓은 책이에요. 신영복 씨는 1968년도 박정희 정권 시절에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7살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 20년간 수감 생활을 했어요. 당시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김일성 주체사상에 경도되었다는 죄목으로 옥살이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이 사람도 그런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저는 오랫동안 이 책을 가지고만 있었다가 박사 공부를 위해 간 미국에서 이 책을 처음 읽었어요. 저는 늦은 나이에 박사 과정을 시작하면서 많이 힘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겪은 힘든 과정들이 그렇게 큰일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많이 위로받았어요.
◇ 교수님께서는 이 책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셨나요?
‘성공은 그릇이 넘는 것이고, 실패는 그릇을 쏟는 것이라면, 성공이 넘는 물을 즐기는 도취인 데 반하여 실패는 빈 그릇 그 자체에 대한 냉정한 성찰입니다. 저는 비록 그릇을 깨뜨린 축에 듭니다만, 성공에 의해서는 대개 그 지위가 커지고, 실패에 의해서는 자주 그 사람이 커진다는 역설을 믿고 싶습니다.’
서울대 출신의 똑똑한 인재가 젊은 시기에 20년을 옥중에서 보낸 것은 어떻게 보면 실패한 거잖아요. 그런데 신영복 씨는 실패에 대해서 저렇게 말해요. 이 말을 읽으면서 성공과 실패에 대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당시 저는 성공하려고 유학을 왔지만, 매번 내 능력을 넘는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실패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렇기에 이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어요.
‘어둠은 새로운 소리를 깨닫게 할 뿐 아니라, 놀랍게도 나 자신의 모습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어둠은 나 자신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캐어물으며 흡사 피사체를 좇는 탐조등처럼 나 자신을 선연히 드러내 주었습니다.’
신영복 씨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나 자신이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해요. 보통 성공했을 때는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지 않아요.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뿌듯함만 있을 뿐, ‘내가 어떤 존재지?’, ‘내가 이것을 왜 했지?’와 같은 생각은 안 하게 돼요. 반대로 실패했을 때 나 자신을 돌아보는 거죠. ‘내가 왜 여기서 이렇게 실패하고 있지’, ‘나는 왜 실패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등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고민하는 거예요. 실패의 상황 속에서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거죠.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밤이 있어야만 아침을 맞이하는 것처럼 실패가 있어야 나 자신을 바라보고 성찰해서 비로소 성공을 맞이할 수 있어요. 이러한 생각의 전환이 제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됐어요.
◇ 실패와 관련하여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우리학교 학생들은 교사라는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학생들이 많아 대부분 임용고사라는 문턱을 넘겨야 하잖아요. 근데 그게 쉬운 게 아니에요. 공부는 자기와의 싸움이고, 그 과정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을 마주하게 돼요. 하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듯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는 거죠. 시험에 합격하여 교사가 되거나 논문을 통과하여 박사 학위를 받으면 그 지위가 높아지겠지만, 실패한다고 해도 나 자신을 관조하며 나에 대해 좀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면 스스로가 커질 수 있는 거죠. 학생들이 혹시나 실패하더라도 그 시간을 ‘나를 더 담을 수 있는 기회’,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으로 생각한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거죠. 무조건 성공하는 삶이 의미 있는 게 아니니까요. 실패를 실패로만 바라보지 말고,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면 좋겠어요.
◇ 교수님께서 추가로 소개하실 책은 무엇인가요?
『공정한 사회의 길을 묻다』라는 책이에요. 요즘 공정에 대한 이슈가 많잖아요.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해 사람들이 분분하게 의견을 나누는데, 공정이 도대체 무엇인지 저도 혼란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어요.
이 책을 보면 공정에도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첫째는 내가 열심히 하면 얻어지는 결과에 의한 공정인 능력에 의한 공정이에요. 둘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는 평등으로의 공정이고요. 또,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소수자를 배려하는 것으로 필요에서의 공정도 있어요. 우리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고려하여 공정에 대해 폭넓게 생각해야 해요.
얼마 전 인천 공항에서 비정규직 안전 보안 요원들을 정규직으로 승격시켜 준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이 ‘공정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어요. 오랫동안 일했다고 시험도 안 보고 정규직으로 시켜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거죠. 학력, 시험 성적 등 소위 말하는 스펙에 의한 선발만이 공정하다는 논리에요. 하지만 승격된 사람들은 모두 오랫동안 사고 없이 열심히 근무한 사람들이에요. 오랜 기간 무사고로 열심히 근무한 것도 일종의 능력이잖아요. 이 일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기계적인, 경제적 측면의 공정성에만 매몰되어 있어 시험 성적, 학력에 따른 선발만을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 책을 읽으면서 공정함이 무엇인지, 공정을 고려할 때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기계적인 공정함이 아니라 각자의 능력과 처한 상황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등을 알 수 있었어요.
◇ 책 『공정한 사회의 길을 묻다』와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 씨는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성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어요. 신영복 씨는 많은 사람이 주관을 나쁜 것으로 보고 객관을 더 공정하고 좋은 것으로 바라본다고 말해요. 그리고 ‘각자가 저마다의 삶의 터전에 깊숙이 발목 박고 서서 그 ‘곳’에 고유한 주관을 더욱 강화해가는 노력이야말로 객관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곳’이, 바다로 열린 시냇물처럼, 전체와 튼튼히 연대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라고 말해요. 기계적인 공평성과 객관성보다는 각각의 개인이 처해 있는 상황들을 바라봐야 한다는 거죠. 두 책 모두 기계적인 ‘능력’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각 사람의 ‘노력이나 성과’를 드러내는 부분을 인정해주는 각각의 주관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해요. 각각의 주관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면, 그 자체로 모두가 연대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부분이 『공정한 사회의 길을 걷다』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우리학교 학생들이 이 책들을 읽으며 '공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으면 해요. 기계적이고 객관적인 것만을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해요. 이러한 능력주의의 공정에서 벗어나는 거죠. 우리가 태어나는 환경 자체가 불공평한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다양한 공정과 공평함에 대해 고민하고 유연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타인을 생각하고 공동체 안에서 연대하는, 모두가 함께 나아갈 방법을 고민하는 우리 학생들이 되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