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호/이주의 영화관] '퍼스트 카우' : 흔적, 잔해, 무엇보다 우정에 관하여
현정우(컴퓨터교육·17) 학우
19세기 미국의 서부개척 시대, 사냥꾼들의 식량을 담당하는 역할로 그들의 혹독한 여정에 함께하던 요리사 쿠키는 어느 날 밤, 발가벗은 채 숲속에서 먹을 것도, 잘 곳도 없이 앉아 있는 한 명의 중국인을 보게 됩니다. 다른 일행들이 눈치 채지 않게 그에게 몰래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해 준 쿠키는 다음 날 일어나자 다른 이들이 깨기도 전에 그가 서둘러 떠나 버렸음을 알게 됩니다. 몇 년이 지나고 그가 떠돌이 생활을 하며 정박한 한 마을, 술집에서 한바탕 난투가 벌어진 뒤 의문의 인물이 쿠키를 나직이 부릅니다. 그는 그가 몇 년 전 도망치는 길에서 구해 준 적이 있던 중국인 킹 루였습니다.
<믹의 지름길>, <어떤 여인들> 등을 감독한 미국 독립영화계의 중년 거장 켈리 레이카트 감독이 2019년에 감독한 영화 <퍼스트 카우>는 상영시간의 면에서도, 스케일과 디테일의 면에서도 이전의 영화들보다 한층 장대해진 영화입니다. 그녀의 영화들에서 은근히 따라붙던 수식어였던 ‘서부극’을 비껴가듯 (<믹의 지름길>을 제외하곤 현대를 배경으로 하던 이전의 영화들과는 달리) 아예 서부시대로 배경을 옮겨 이전과 같은 주제를, 그러나 보다 선명하고 노골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확연히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영화의 처음에 인용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처럼 <퍼스트 카우>는 우정, 두 사람 사이의 뗄 수 없는 관계에 관해 담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난 킹 루와 쿠키는 같이 살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 볼 대책을 강구하는 사이가 됩니다. 쿠키가 킹 루를 만나던 시점과 동시에 마을에는 암소 한 마리가 들어오는데, 바다와 거리가 있는 마을에 유일했던 이 암소는 귀한 자원이 되어 마을의 부유한 교역상의 손에 들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쿠키와 킹 루는 둘이 먹을 과자를 굽고 맛보며 우유를 조금만 넣으면 맛이 좋아질 거라 생각을 하는데, 여기서 교역상의 암소에게 생각이 미칩니다. 매일 밤 숨죽여 가며 암소에게서 짜 온 젖과 꿀을 넣어 만든 과자는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며 킹 루와 쿠키에게 먹고 살 돈을 제공해 주고, 과자에 대한 소문은 어느덧 교역상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말을 탄 카우보이들과 인디언들만이 등장하던 서부영화에서 여러 계층의 직업, 현상금 사냥꾼, 범죄자들이 등장하던 서부영화도 지나, 실제 그 시대 내부 지방의 척박한 생활상과 다양한 이주민들의 모습까지 그린 영화 <퍼스트 카우>는 시간적, 공간적으로도 배경의 세부적인 부분을 생동감 있게 잘 살린 영화입니다. 실제로 서부 시대에는 기존에 살던 인디언이나 영국에 박해받던 아일랜드 등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을 제외한 중국인, 한국인을 포함한 다양한 동양인들 또한 미 대륙으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주인공 킹 루는 이를 반영하듯 추격당하던 중국인으로 등장하며 교역상의 집에는 여러 명의 인디언들이 시녀와 하인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척박한 생활상을 반영하듯 어두운 빛깔과 색조의 화면들이 고단함을 채우며, 드문드문 이어지는 대사들이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국내엔 한 번도 개봉된 적이 없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영화 감독인 켈리 레이카트의 영화였기에 영화제를 제외하곤 보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이미 2019년 제작이 완료돼 오랜 시간 동안 퍼진, 본 사람들의 입소문 덕분인지 요원했던 개봉이 이루어졌습니다. <퍼스트 카우>는 이번 달 4일 개봉하여 극장가에서 상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