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호/오늘의청람] ‘한국교원대신문’의 문을 연, 이동주 교수를 만나다
한국교원대신문이 제460호를 맞이했다. 한국교원대신문은 85년 3월 첫 발행을 진행한 이후, 36년 동안 꾸준히 신문을 발행해 오고 있다. 우리학교에는 ‘한국교원대신문의 시작’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한 분이 계시다. 이번 오늘의 청람에서는 한국교원대신문의 초대 편집장이었던 이동주 교수(영어교육)를 만나, 당시 신문의 발행과정과 신문사의 역사에 대해 알아본다.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국교원대학교 영어교육과의 교수 이동주입니다. 영광스럽게도, 저는 우리학교 영어교육과에 1회로 입학했습니다. 영어 교사로 18년가량 근무하며 우리 대학원의 석사·박사 과정을 밟고, 2012년에 영어교육과 교수로 다시 우리 대학에 왔습니다. 변화하는 우리 대학의 모습, 후배들의 모습을 봐왔죠. 지난 36~37년 동안 ‘교육’이라는 기본 틀에서 많은 경험, 혜안과 지식을 쌓으며, 우리 대학 발전과 후학 양성을 위해 힘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국교원대신문에서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얼마나 활동하셨나요?
1985년도 3~4월부터 졸업 때까지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편집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당시에는 ‘기자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초대 기자장이 되었고, 장기 집권 후에 동기가 이어받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88년도 초까지만 활동했어요. 그때는 명예 기자라고, 신문사 선배 기자로서 일종의 멘토 역할을 하는 직함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3년은 기자로 활동하고, 명예 기자 역할로 졸업 때까지 활동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의 암울한 시기에 신문사 기자로 활동한 것이 제게 굉장한 활력소가 되었어요.
당시 신문은 어떤 과정을 통해 발행되었나요?
‘한국교원대학 소식’이라는 소식지가 우리학교 1호 신문이에요. 이것이 기자모집 공고였고, 지필 시험과 면접을 거쳐 14~15명의 학생 기자가 선발되었어요. 취재기자, 방송부원, 카메라 기자, 만평을 그리는 특수 분야까지 세분화해서 체계적인 채용이 이루어졌어요. 그리고 사회부장, 문화부장 등 분야별 부장을 두었어요. 이렇게 구분했어도 카메라 들고 취재 다니고 같이 기사 쓰면서 다 같은 일을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처음에 기사 쓰는 것이 어려웠죠. 주간 교수님과 편집국장님한테 훈련을 조금 받고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서 서로 피드백 주고받으며 스스로 공부하고 깨우쳤습니다. 기사를 작성하고, 충청일보라는 신문사에 우리가 직접 원고를 송고했어요. 신문이 나오기 전날은 수업도 공결 처리 받고 온종일 윤전기 앞에서 수작업으로 수정하고, 최종 승인받으면 윤전기에서 나온 따끈한 신문을 우리 손으로 들고 왔습니다.
한국교원대신문의 지면 구성이나 방향성을 처음 구상해 발행하는 과정이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신문을 만들기는 처음이니까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래서 흉내 내기 위해서 애를 많이 썼죠. 그런데 다행인 것이, 초창기의 신문은 생활정보지 타블로이드판이라는 아주 작은 신문이었어요. 타블로이드는 일반 신문 크기보다 작잖아요. 학교 소식을 전하는 수준의 작은 신문 4면 채우는 일은 그렇게 버겁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일반 신문 크기로 변하고, 점차 노하우가 쌓이고 증면 과정을 거쳐, 섹션 구분을 하게 되죠. 1면과 2면은 학교 소식을 전하는 사회면, 3면과 4면은 교육을 다루는 특별 면, 그다음에 문화면 이런 식으로 구색을 갖춰 갔어요. 저희도 배워가면서,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높여가면서 점차 신문의 모습을 잘 갖췄죠.
대학신문사 활동을 통해 어떤 것들을 배우고 느끼셨나요?
글쓰기를 잘 배웠어요. 학창 시절에서 사실적인 글쓰기나 비판적인 글쓰기와 같은 지도를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기자 활동을 통해 배워갔어요. 한정된 분량에 논리적으로 글을 작성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또, 세상을 보는 시각을 달리할 수 있죠. 학교를 보는 시각이 다른 친구들과 달라요. 전체를 볼 수 있거든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각, 넓게 나아가 세상을 보는 시각을 익혔어요. 참고로 한 후배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한국 특파원으로 실제 기자가 되었고, 또 다른 친구도 언론 활동을 해요. 우리 신문사에서 언론인의 꿈을 키워 교직이 아닌 새로운 분야에서 활동하는 등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얻었습니다. 직접 체험을 통해 얻은 가장 큰 보람 중 하나죠. 짧지만 긴 신문사 경험이 학창 생활에서의 저를 가장 키워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 있나요?
우리학교 학생임에 자부심을 가지고,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급속도로 성장해 국가 경제 순위에서 밀리지 않는 정도가 되었어요. 우스갯소리로 교육의 덕분이라고 하지만, 사실임은 분명해요. 어떤 다른 것보다도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회가 존속될 수 없기에, 교육이 우선입니다. 우리 학교가 이런 교육 분야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세요. 그러면 후배들이 동량이 되어 우리 대학은 영원히 우리나라 교육을 이끄는 선두 대학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