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호/컬쳐노트] “인간은, 이야기를 써서 신과 만나는 거야”

2021-10-18     구본규 기자
영화 '저승보다 낯선' 포스터 ⓒ우사유 필름

 

정답 없는 질문, ‘저승보다 낯선

대표적인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 영화 저승보다 낯선’(Stranger than the beyond)은 이와 닮은 구조로 전개된다. 상대적으로 나이 든 사람(민우)과 그렇지 않은() 두 사람이 등장해 러닝타임 내내 대립하고, 몸싸움하고, 그러려니 하기도 한다. 관객은 영화의 처음부터 의문 속에 빠져들고 영화의 끝에서는 정답 없는 질문만 잔뜩 안고 나온다. 그런 영화다. 그래서 이야기.

늙은이는 COMA, 즉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병상에 누워서 눈만 끔뻑끔뻑한다. 병상에서 눈을 감으면 의식만이 어딘지 모를 곳에서 외따로 시간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된다. 한탄스러운 정도로 소란스럽던 인생과 대조될 정도로 고요히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곳이다. 늙은이는 눈만 감으면 자기만의 극락에 돌입할 수 있는 것이다. 죽었지만 살지도 않은 사람의 의식이 떠도는, ‘저승보다 낯선.’

그런데 웬걸, 혼자만의 공간인 줄로만 퍽 믿고 있던 곳에 요상한 시끌벅적한 젊은이가 등장해서는 극락을 난잡하게 헤집는다. ‘감독님이라 부르면서, 혼자 있느냐는 둥 여기는 어디냐는 둥 왜 여기 있느냐는 둥 별의별 잔말을 떠들썩하게 내던진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이쪽 세계에 오기 전의 기억도 없다. 늙은이에게 천국이었던 곳은 지옥이 되었다. 홀로 고즈넉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발 빠르게 사라지고 없었다. 둘의 관계는 이렇게 시작하고, 끝을 달린다.

 

모르니까 어려운 말을 하는 거야. 그러다가 자기 말의 앞뒤가 안 맞게 되고

감독이 하는 말이다. 혼란스러워하고, ‘저쪽(차안)’의 기억은 없는 주제에 거기서 하던 대로만 하는 젊은이에게 말이다. 이 말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둘 모두 행동, 대사, 태도 따위가 유동적이다. 사람 다, 그저 멋모를 뿐이다.

늙은이가 젊은이에게 쉬운 말을 해 보라 요구한다. 젊은이는 "나는 누구일까요?"라든가 "죽음의 희망조차 없는 곳" 등의 말로 응한다. 세상 어려운 말이지 않은가. 그리고 젊은이가 풀이할 줄 모르자 늙은이는 타박한다. “쉬운 말을 하라니까!”

젊은이는 무얼 기다리는지 모르면서 병적으로 일단 기다리고, 순서를 지키고자 발버둥치기도 한다. 자기 순서를 얌전히 기다려야 한다는 데 얽매인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젊은이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자유로운 삶을 외치고 또 외친다. 자유를 강조하며 말하다가 냅다 달려가기까지 한다. “감독님, 춤을 추고 싶어졌어요!” 자유로운 듯이 몸을 움직이지만 그 춤 속에서 고통스러운 자신, 손에 피를 묻힌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저쪽이 슬며시 고개를 내민 것일지도. 결국 동작은 굳어간다. 젊은이가 바라는 자유가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정확히는 스스로가 가두고 있음이 드러난다.

늙은이도 자가당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감독이 유난히, 초반부보다 더욱 신경질적이고 예민하게 반응할 때 놈이 묻는다. “감독님도 죽음이 두려우신 거죠?” 여기에 민우는 누르락붉으락하며 감정을 토한다. “이 재수 없는 새끼가” “안 그래도 심란한데, 새끼가 진짜언제는 천국이라며 좋아했던, 쉽게 말로 풀어 보라 했던 감독의 모습은 이미 자취를 감추어 흔적이 되었다.

 

제가 그래서 계속 이유를 물었던 거예요.”

별 희한한 말들이 오가고 서로 싸우기도 하던 순간들이 지나 영화는 끝자락에 서려고 한다. 감독은 자기가 생각했던 영화의 플롯을 읊는다. 젊은이는 가볍게 듣는 듯하면서도 그 저의에 진지하게 수긍한다. 감독은 자신의 그 혼란스럽던 지난 일을 뒤로 한 채 확신에 차 말한다. “인간은, 이야기를 써서 신과 만나는 거야.” 이런 말에 놈은 그래서 제가 계속 이유를 물었던 거예요.”로 응수한다. 처음부터 왜 여기에 있느냐 등 계속해서 질문하고 납득하려고 한 점을 상기시킨다.

특별한 서사도, 작중 인물이나 여러 사물에 대한 대단한 언질도 없이 두 사람의 말과 행동이 부딪히고 또 부딪기만 한다. 젊은이가 할 말을 늙은이가 하게 되고, 늙은이가 할 말을 젊은이가 하게 되기도 한다. 저승인 줄로만 알았는데 저쪽이 아른아른하고, 저쪽이 완전히 장막에 가려지기도 한다. 죽음 앞에 선 두 사람의 이야기를 관객이 저마다 가슴속에 안게 되는 것으로 영화는 갈무리한다. 그래서 저승보다 낯설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