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호/사설] K-Culture의 소프트 파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9월 20일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열린 ‘제2차 지속발전가능발전목표 고위급 회의 개회세션에 청년대표 자격으로 초청되어 전 세계 청년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BTS가 유엔 무대에서 연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이미 2018년과 2020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이다. 음악 공연이 아닌 사회적인 아젠다로 국제회의에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단지 방탄소년단(BTS)의 존재감과 파급력에만 의존한 것이 아닌 한국 문화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의미한다.
K-Pop을 비롯하여 K-Movie, K-Drama, K-Food, K-Classic 등 소위 한류라고 불리는 K-Culture의 성장과 확산세가 무섭다. 최근에만 해도 BTS의 신곡 Butter가 빌보드 차트에서 7주 연속 1위 및 지속적으로 상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것 뿐 만 아니라 블랙핑크 아이돌 그룹의 뮤비 동영상은 유튜브에 오르는 순간 수억 뷰를 기록할 만큼 세계 대중 음악계에 큰 관심을 끌며 세계 대중음악의 주류를 이끌고 있다. 대중 음악 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계도 K-Classic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3대 음악 콩쿠르라고 불리며 4⦁5년 주기로 개최되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쇼팽국제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최근 10년 동안 한국 음악인들의 실적은 한국인이 세계 최고의 클래식 음악 강국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는 성악 남녀 부문 1위, 피아노 부문 2, 3위, 바이올린 부문 3위에 오르는 등 5명이 나란히 시상대에 오르는 전례 없는 광경을 연출하였다. 2015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우승하였고 201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우승 하였다. 지난주에 마무리된 제63회 부소니 국제 콩쿠르에서도 한국인 피아니스트 박재홍·김도현이 나란히 1, 2위 수상할 만큼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한국인 연주가들의 승전보가 이어지고 있다.
음악계 뿐 만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한류의 열풍은 강렬하게 이어진다. 작년 제92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은 각본상과 국제영화상 수상은 거의 확정적으로 예상했으나 감독상과 작품상은 세계 영화인 뿐 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놀랄만한 결과였다. 92년 아카데미 영화 역사상 영어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는 한국 영화 역사는 물론 세계 영화 역사를 새로 쓴 놀라운 쾌거였다. 헐리웃이라는 거대한 영화 시스템 속에서 기술력보다는 한국적인 내용을 가지고 가정의 일상사와 사건을 담아내는 작품성으로 영화의 진가를 인정받았으니 수상의 의미가 더 크다 하겠다. 영화계의 한류 열풍은 올해도 이어져 제93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한국 이민자들의 소소한 삶을 그린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였다. 흔히들 세계 영화계의 주류로 일컫는 헐리웃 영화들의 특징은 그 규모나 시스템이 블록버스터급의 대작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헐리웃 영화들 틈새 속에서 일상을 그려내는 마치 소품 같은 한국 영화들이 오스카 영화제의 최고봉에 연거푸 오르는 것은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나 분명 외국인들 눈에 매력적으로 와 닿는 무언가가 있나보다.
한류 강의로 유명한 미국 펜실베니아주 주립대 샘 리차드 교수는 최근 그의 Innovative Sociology 강의에서 한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 그는 K-culture가 전 세계를 매혹하는 이유로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하드 파워가 군사력과 경제력과 같은 물리적인 힘을 일컫는다면 소프트 파워는 설득력을 말한다. 다시 말하여 한국 문화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소프트 파워를 갖추고 더 세련되고 멋진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막상 우리 한국인 본인은 우리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갖는 생활양식인 문화가 세계인의 행동 양식과 사고방식 등을 변화시키는데 기여한다는 점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자연스럽게 생활양식이 되어가는 것이 문화의 힘이다. 마치 우리가 햄버거와 피자를 먹으며 물대신 반드시 콜라를 함께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은 특정 문화에 젖어 들게 되면 끊을 수 없는 마법과도 같은 현상이다. 한류 문화가 보다 더 오랫동안 세계인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 문화의 소프트 파워가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이를 키워 나아가야할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