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호/사무사] 원래의 주인

2021-09-27     편집장

길었던 여름이 지나고 학교에 다시 왔을 때, 운동장에 있는 수많은 긴 잔디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진짜 관리 안 한다.”, “저런 곳에서 체육 실기 수업은 어떻게 듣지?”라며 불평을 쏟아냈다. 우리학교 익명 커뮤니티에서도 운동장이 아니라 완전 열대우림이다.”, “운동장을 저렇게 방치해도 되는 거야?”라며 운동장의 풀들을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대했다.

이후 환경과 관련한 교양 강의 시간에 최근 환경과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어떤 한 학우는 오늘 저녁에 시원한 바람을 쐬며 운동장을 산책했는데 풀이 엄청 많이 자라 있더라고요.”라며 말의 포문을 열었다. 나는 당연히 운동장의 잔디를 방치해서 불편했다.”와 같은 이야기가 이어질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운동장도 원래 이 숲의 일부였을 텐데, 우리 인간에 의해 깎여나갔다가, 긴 여름 방학 동안 원래의 자리를 찾았나 봐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머리에 무언가를 맞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그곳의 잔디들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아닌, 원래의 주인이었다.

 

자연의 일부인,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자원을 그저 발전을 위한 도구로 취급해왔다. 18세기 시작된 기술의 흐름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것들을 파괴했다. ‘편리함을 맛본 사람들은 더더욱 발전하는 기술을 놓지 못했고, 그럴수록 지구는 황폐화해졌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사람들은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고 살 곳 없는 북극곰, 아파하는 지구와 같은 모습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전기를 아껴야 해’, ‘분리배출을 해야 해’, ‘육류소비를 줄여야 해와 같은 행동 방침을 요구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들은 오히려 피로감을 불러왔고, 사람들은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저 보호해야 하는 것, 지켜야 하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 잔디들을 보고,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고민했을 때, 나도 자연을 그 자체로서가 아닌 의무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무감에서 비롯된 마음은 자연을 수동적으로 인식하게 하며,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자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공간의 지속성을 위해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우리가 자연의 소유자인 듯이.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주인이 아닌 손님으로, 지배자가 아닌 구성원으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의무감이 아닌 진정성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과 환경의 교육이 변화해야 한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라고 의무감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하며, 참여하며 많은 것을 직접 경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연과 함께하면서, 자연을 사랑하게 되고, 진정으로 그들을 아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원래의 주인들이 자신의 자리를 되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