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7호/이주의 영화관] 팜 스프링스 : 다른 사람들은 다 똑같을지라도 우리 둘만은
현정우(컴퓨터교육·17) 학우
어느 날 아침 나일스는 잠에서 눈을 뜹니다. 자신에겐 관심 없는 여자친구가 서두르는 모습을 보며 오늘도 나일스는 결혼식장으로 몸을 움직입니다. 여자친구 미스티를 포함해 신부 탈라의 주변 사람들은 식 준비에 열을 올리지만 나일스는 관심이 없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저녁, 결혼식이 시작되고 똑같이 남들에 신경을 쓰지 않는 한 여자가 바에서 와인을 주문합니다. 미스티의 결혼 연설 도중 나일스가 난입해 연설을 이어 가고, 헛소리 반 명언 반이 섞인 연설에 하객들이 감동합니다.
연설이 끝나고 가까워진 바에 앉아 있던 여자와 나일스. 자기의 이름을 사라라 소개한 그녀는 나일스와 비슷한 공감대를 나누며, 인적이 드문 숲에 도착해 밀애를 즐기려는 찰나 등산복 차림의 괴한이 화살로 나일스를 쏴 버립니다. 아무렇지 않게 걸어오는 괴한을 따돌린 채 간신히 도망친 나일스가 도착한 곳은 어느 동굴. 충격에 휩싸여 걱정을 하며 따라오는 사라를 향해 손을 내저으며 나일스는 강렬한 붉은 빛이 타오르는 동굴 속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데…….
이 모든 게 영화 시작 10분 안에 흘러가는 영화 <팜 스프링스>는 타임루프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잠에 들거나 목숨을 잃거나, 혹은 동굴에 들어가는 등 하루가 끝날 일을 하면 그대로 다음 날 6시 침대 위에서 일어나 똑같은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일상에 갇힌 나일스는 매일매일 그야말로 “똑같은” 하루를 보내야만 합니다. 아주 오래 전 붉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동굴에 발을 디딘 이후 나일스는 이제 매일 결혼식이 열리는, 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11월 9일 하루를 함께해야 합니다.
다행히 주변인들의 기억은 초기화됩니다. 하루가 끝날 때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때마다 다른 평행우주가 하나씩 만들어지는 것일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의 성격, 설정, 이전에 남아있던 기억은 동굴에 들어가며 멈춘 그 날 아침의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일스도 패닉에 빠졌지만 점차 어느새 현실에선 할 수 없는 행동들, 결혼식에서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하루에 갈 수 있는 가장 멀리도 떠나는 등 갇힌 시간 안을 즐기기로 합니다.
다음 날 아침, 나일스는 어제와 같은 시간 같은 풀장에서 맥주를 마시던 중 전날 동굴로 기어가기 직전에 만났던 그 여자를 마주칩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맥주를 던지다, 곧이어 나일스에게 상황을 전달받은 사라는 절망에 빠지지만 어떻게든 나갈 방법을 강구합니다. 더 이상 시도할 방법이 없어지자 사라는 ‘이기적인 행동은 하지 말자’고 선언하며 가까이 지내지 못해주었던 동생이자 신부 탈라를 그 순간만큼은 꼭 안아줍니다. 그 날 이후, 이에 감화된 나일스는 사라와 현실에선 할 수 없는 온갖 장난들을 벌이며 갇힌 시간 안을 채워나가고 둘은 더욱 가까워지는 듯합니다.
<팜 스프링스>는 예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고 미국의 스트리밍 사이트 'Hulu'에서 독점 공개를 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여름 극장 개봉된 영화입니다. 그룹 론리 아일랜드에서 활동을 하며 배우, 힙합 가수, SNL에서도 활동했던 코미디언 앤디 샘버그가 제작과 주연을 맡은 영화이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주인공인 나일스의 수다쟁이 연기가 돋보입니다. 다른 로맨스 루프물과는 다르게 매일 반복되는 권태로운 일상을 타임루프라는 설정으로 은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안으로 예정되지 않은 사람을 끌어들이며 주인공의 마음에 생기는 변화와 나일스와 사라 두 사람 사이의 관계성에 주목했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하루하루 반복되며 싸우기도 하고 새로운 일도 만들어지지만 나은 미래를 도모하는 둘, 둘은 과연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 세계에서 혹은 기존의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하나 더, 나일스를 쫓아오던 그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지루하고 틀에 박힌 세상 속 두 루저 남녀의 세상 채우기 이야기. <팜 스프링스>는 8월 19일 극장 개봉되어 VOD 서비스 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