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호/기자칼럼] ‘노력’이 만든 피로인간은 ‘진짜’ 휴식이 필요하다

2021-05-31     김금비 기자

대학 가서 놀아라어른들의 말에 고등학교 3년 내내 공부에 전념했다. 대학생이 되면 자유롭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고 똑같이 공부한다. 여러 가지 활동도 하면서 점점 바빠졌다. 드라마처럼 팀플에서 낭만적으로 사랑이 싹트는 일, 해외 배낭여행 따위는 없었다. ‘과제와 일에 허덕이는 대학생만이 서 있었다. 그래도 바쁘게’ ‘열심히사는 것이 언젠가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 스스로 되뇌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감정에 대한 짧은 에세이를 작성하라는 과제를 마주했을 때, 집단상담 활동 중 자기소개 게임으로 나에 대한 세 가지 설명을 적을 때, 쉽사리 손을 댈 수 없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가. 나는 요즘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왜 나는 나를 모르는가?’라는 물음으로 삶을 돌아보니,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데 급급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바깥에 나가 산책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바쁘다는 핑계로 일을 선택했다. 해야 할 일들에 짓눌려 나에게 소홀해지고 있었다.

지나치게 바쁜 삶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1,967시간으로, OECD 평균(1,726시간)보다 241시간을 더 일했다. 우리 사회는 성과를 내기 위해 매우 각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고등학생 A양은 아침 730분에 학교에 간다. 영단어를 외우고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30분까지 수업을 듣고, 저녁식사 후에는 과외를 간다. 과외가 끝나면 학교로 돌아와 밤 11시까지 자율학습을 한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냥 놀 수 없다. 숙제와 수행평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생각에, A양의 방은 새벽 내내 불이 켜져 있다.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B씨는 9시에 출근한다.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오전 회의가 있다. 회의 후 업무를 보던 중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 있어 점심은 사무실에서 간단히 때운다. 오후에는 주어진 업무를 하나씩 처리한다. 업무 진행 속도가 부진한 것 같아 결국 야근하기로 한다. 입사 동기들이 하나둘씩 승진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불안감에 밤늦게까지 일을 한다.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한다. 아마 내일도 야근일 것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과를 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성과는 남들보다 우월해야 한다. 잉여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욱 자기착취를 감내한다.

한병철 교수는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착취하면서 성과주의사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한국사회를 피로사회라고 지적하며, “사람들은 자신을 착취하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고 말한다. 성과를 향한 압박은 자신을 착취하게 만든다. 무리하게 자신을 독려하고, 성과를 끌어내는 동안 개인은 조금씩 견디기 힘든 곳으로 나아간다. “해야 한다”, “남들도 다 한다”, “할 수 있다처럼 긍정성의 과잉은 피로인간, 나아가 피로사회를 만들어 낸다. 무엇이든지 노력해야 하는, ‘노력이 당연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잃어버린다. ‘를 잃은 우리는 삶의 주체성이 결여된 자동인형이 된다.

피로사회에 빼앗긴 를 되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의 피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어디에서 피로가 왔는지 찾아내어, 나를 둘러싼 피로를 한 발 떨어져 바라본다. 이를 통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과잉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 그리고 진짜휴식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오로지 를 위한 휴식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평소 휴식을 취하더라도 해야 할 일을 걱정하거나, 핸드폰을 보는 등 타인과의 관계에 얽매어 있다. 마음이 쉬는 진정한 휴식을 갖지 못한다. 외부와 잠시 거리를 두고, 온전히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 마음이 가장 편한 휴식을 가져야 한다. 가만히 앉아 내가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노래, 평소 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려 보자. 어딘가에 적어보아도 좋다. 나를 온전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자.

성과 중심에서 벗어나, 개인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로이 살아가는 사회를 상상하긴 어렵다. 이 피로사회를 버텨내며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를 안다면, 일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온전한 주체성을 지니며 살아갈 수 있다. 다가오는 여름방학엔 잠시 멈추어 를 알아가는 진정한 을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