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호/기획] 혼자가 아닌, 건강한 공존을 위한 비건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별한 날에만 먹었던 고기가 이젠 끼니마다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다양한 매체에서도 유명인들이 고기를 구워 먹으며, 매일 밤 우리의 침샘을 자극한다. 하지만 우리가 소비하는 육류는 환경오염의 주된 원인이며, 육류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비윤리적인 방법들이 강행되고 있다. ‘비건’은 개인의 건강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지구촌을 위해 ‘비건’을 바르게 알고, 열린 마음으로 ‘비건’을 바라보자.
◇ 지구와 동물이 흘리는 눈물로 우리의 식탁은 만들어진다
현대인에게 고기가 없는 식탁은 상상하기 어렵다. 2020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통계로 본 축산업 구조 변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연간 1인당 육류 소비량(닭·돼지·소)은 1980년 11.3kg에서 2019년 54.6kg으로 약 5배가량 증가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육류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매년 약 600억 마리의 동물들이 도살되고 있다.
육류 소비는 지구의 환경을 파괴한다. 기후변화인식공동체(2020 Climate Scouts, 김민선 외 4인)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가축이 먹을 곡물을 기르는 과정 ▲가축을 키우는 과정 ▲가축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일어난다. 전 세계 곡물의 1/3은 가축을 위한 사료로 사용되고 있다. 늘어나는 육류 소비량에 따라 곡물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해 산림을 벌목하고, 곡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사용한다. 1990년대부터 축산업에 의해 아마존 삼림의 약 90%가 사라져 생물다양성이 감소 되었고, 기후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가축을 기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축산 분뇨와 메탄가스 역시 환경오염의 주된 원인이다. 가축들이 배출하는 분뇨는 2030년까지 30억 톤이 배출될 것으로 예측되며, 이는 인과 유기물의 함량이 높아 심각한 토양 및 수질오염을 일으킨다. 메탄가스의 경우에도 매년 3.1기가 톤의 이산화탄소와 맞먹는 양이 배출되어 온실효과를 일으킨다. 육류의 생산, 가공, 운송 과정에서는 80억 톤이 넘는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다. 이처럼 동물성 식품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환경오염이 일어나고 있다.
육류 소비에는 윤리적인 문제도 뒤따른다. 많은 축산가에서는 증가하는 육류 소비량을 감당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생산량을 얻기 위해 ‘공장식 축산’ 방식을 선택한다. 미국 ‘지각력 협회(Sentience Institute)’가 2019년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동물농장의 90% 이상이 공장식 축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장식 축산 방식은 동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와 습성은 고려되지 않은 채, 오로지 효율만을 위해 한정된 공간에서 대규모 밀집 사육이 이루어진다. 닭, 돼지, 소 등의 육지 동물 뿐만 아니라 양식장에서 길러지는 어류 등 많은 동물이 빈약한 공간에서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사육되고 있다. 서경옥, 김기대 교수의 ‘공장식 가축 농장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모색(2015)’에 따르면 “돼지의 경우에는 스트레스로 다른 돼지를 공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생후 3일 이내에 송곳니를 발치하고, 꼬리를 제거한다. 또 수퇘지에서 나는 노린내를 없애기 위해 생후 1주일 이내에 마취 없이 거세를 하며, 생후 20일부터는 어미로부터 분리하여 살집을 불리기 시작한다. 자연 수명이 10∼15년인 돼지는 규격화된 몸집이 되면 생후 5∼6개월 후 도축된다”. 열악한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란 동물들은 권리를 짓밟힌 채 처참하게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환경과 동물을 지키기 위해서는, 육류의 소비를 줄이거나 ‘채식’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 기자의 일기: 우리학교에서 비건을 실천해보다
먹음직스러운 고기는 환경을 파괴하고 동물을 학대하고 있었다. 채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후, 직접 채식을 실천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자들은 채식주의 중에서도 고기, 우유, 달걀 등의 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는 ‘비건’에 도전해보았다. 한 사람당 이틀씩 끼니마다 비건식을 실천했다.
[김금비 기자] 내가 먹는 음식에는 어떠한 결과가 뒤따른다 (2021.04.23. - 2021.04.24.)
학식 식단표를 보면서 못 먹는 음식을 지워나갔다. 나물 반찬만 남았다. 비건 첫 끼. 치커리 생채를 가득 담았다. 마약옥수수는 옥수수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치즈가루가 뿌려져 있었고, 마요네즈가 들어가 먹을 수 없었다. 김치도 젓갈이 들어가서 먹지 못했다. ‘된장국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국물 한 입 뜨려는 순간, 작은 멸치 껍질을 보았다. 치커리 생채와 국물을 최대한 뺀 국 건더기만이 학식에서 먹을 수 있는 전부였다. 평소보다 일찍 식사를 마치고 배가 허전해서 편의점으로 향했다. 인터넷에 ‘비건 과자’를 검색해 과자와 두유를 샀다. 여기서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첫 번째, ‘팜유’는 식물성이지만 불법 화전 농법으로 재배되어 지구환경을 파괴한다. 두 번째, ‘모든’ 두유가 비건 식품은 아니다. 두유의 식품첨가물에는 동물성 재료들이 사용된다. 내가 먹은 두유는 비건 제품이 아니었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먹은 나의 실수였다. 몇 번 채식을 하니 몸이 익숙해진 탓일까, 속이 편하고 몸이 가벼웠다. 비건 마지막 날, 저녁은 누룽지와 방울토마토를 먹었다. 학교에서 비건을 실천하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동물의 잔혹한 죽음이 내가 먹는 음식을 만든다면, 고기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완벽하지는 못해도 불완전한 채식주의자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재혁 기자] 함께해요! 건강과 환경을 위한 비건 체험기 (2021.04.28. - 2021.04.29.)
비건을 실천하기에 앞서 학교 식단표를 보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돈육김치볶음, 삼계 백숙, 해물파전, 새우튀김, 언양식 바싹 불고기, 수육, 강정까지 육류·어패류가 단 한 끼도 빠지지 않고 모든 식단에 나왔다. 첫날 점심 식단을 보고 도저히 먹을 수 있는 게 없었던 나는 편의점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살펴보았다. 라면 속에 든 쇠고기 분말 가루, 샌드위치 속 햄 등 이리 찾고 저리 찾아봐도 육류가 포함되지 않은 식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찾은 2+1 인스턴트 야채죽으로 첫 끼를 배불리 먹었다. 하루를 보내고, 두 번째 날 점심에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수육’이 나왔다. 좋아하는 음식을 눈 앞에 두고도 먹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웠지만, 오염된 환경을 한번더 떠올리며 콩나물국과 함께 간단한 식사를 마쳤다. 이후 저녁으로 먹을 샐러드를 구매하기 위해 여러 가게를 살펴보았다. 복지관에 있는 편의점에서 샐러드와 오렌지주스를 사 먹으면서 2일이라는 짧은 기간의 비건 체험이 끝이 났다. 이번 체험을 통해 너무 ‘육류’에 의존하는 식사를 해왔던 나를 반성할 수 있었다. 처음 접한 비건이어서 많이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한 달에 한 번쯤은 내 건강과 지구를 위해 비건을 실천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학교에서 홀로 비건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힘을 모아 함께 한다면, 더 쉽고 즐겁게 비건을 실천할 수 있다. 채식의 필요성을 인식하며 2년 동안 단계적으로 비건을 실천해온 성공회대학교 변주연 학우의 조언과 함께 비건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 식품을 판단 할 때에는 ‘ 커뮤니티’를 적극 활용하라!
비건을 오래 해온 사람들도 이름이 생소한 동물성 성분 등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채식 커뮤니티에 성분표를 분석해놓은 글을 활용하여 비건 식품을 판단해보자!
- 비롯된 채식은 금물!
자신을 옭아매거나 제한하는 방식의 채식은 오히려 큰 스트레스만을 불러올 뿐이다. ‘삶의 방식의 변화이자 익숙하지 않은 영역에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점진적으로 채식을 도전해보자!
- 영양의 균형을 맞춰서!
채식을 하다보면, 영양불균형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옳지 않은 소리! 다양한 식물성 단백질 등을 적극 활용한 균형있는 식단이 중요하다!
- 본연의 맛을 즐겨보자!
육류 이데올로기 속에서 잊혀져가는 채소 본연의 맛, 화학성분과 혼합제를 줄이는 ‘자연식물식단’으로 채소 본연의 맛을 느껴보자!
- 날에는 고기파티? 이젠 비건파티!
기쁘거나 특별한 날에 고기나 치킨을 먹는 문화 대신에 다함께 비건 식당에 방문하는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보자! ‘착취없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환경을 사랑하는 지구 지킴이로의 성장, 대월초등학교 채식 급식 이야기
학교 현장에서도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인천, 경남, 울산, 전북 등에서는 이미 학생들에게 채식 급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4월부터는 서울에서도 채식 급식이 시행되고 있다. 특히 인천시에서는 V.T.S day(Vegetarian Trip of School meal)를 운영하여, 월 2회 이상 학생들에게 채식 급식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채식선도학교 6곳을 선정하여 채식선택급식을 시범적으로 운영 중이다. 우리신문은 채식선도학교로 선정된 대월초등학교의 홍서윤 영양교사를 만나, 채식 급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V.T.S day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탄소 배출을 줄여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육류 섭취를 줄이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그래서 실천 가능한 환경 보호 활동에 대해 학생들에게 알려줌으로써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V.T.S day의 운영은 좀 더 나은 지구를 만들기 위한 한 걸음입니다.
Q. 채식 식단을 구성하시면서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점이 있나요?
A. 학생들의 영양량을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성장기를 고려한 학교급식의 영양관리기준을 준수하며 에너지, 필수아미노산, 비타민B군 등 주로 육류에서 섭취하고 있는 영양소들이 부족하지 않게 식단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학교에서는 완전 비건이 아닌 페스코 베지테리언에 준하는 식단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Q. V.T.S day 급식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V.T.S day를 시작하기 전, 채식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4월 식단표에서 V.T.S day를 찾아보고 색칠해오면 선물을 주는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채식급식이어도 평소에 먹던 식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교환하러 올 때 채식의 필요성과 우리 환경의 상태를 간단하게 말해주었어요. 그 덕분인지 아직까지 왜 오늘은 고기가 없냐고 물어보는 학생은 없습니다.
Q. 채식급식선도학교로 선정된 후, 학교에 새로운 변화가 있나요?
A. 채식급식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매달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월 말에는 지난달에 비해 육류 섭취를 얼마나 줄였는지, 그에 따라 환경을 얼마나 지켰는지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이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행사를 실시해 채식 급식하는 날이 즐거운 날임을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탄소제로 메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학생들과 함께 화분 텃밭을 구성하여 직접 농작물을 심고 기르는 과정에 있습니다. 또한 점심시간만이 아니라 교육과정 속에서 환경교육과 함께 해야 채식급식이 지속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매월 1회 교직원 연수를 실시하고 있으며, 4월에는 채식 밀키트로 하루 한 끼 채식을 실천해 지구를 지키는 활동을 했습니다.
◇ 비건, 비거니즘, 하나의 삶의 태도가 되어가다
한국채식협회에 따르면 국내 채식인구는 2008년 약 15만 명에서 2018년 150만 명으로 10년 동안 10배가량 증가했다. 롯데마트는 2020년 12월 비건식당을 열었고, 이마트는 채식주의존을 도입해 식물성 원료만을 사용한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편의점에도 비건 떡볶이, 채식 도시락 등이 등장했다. 식품을 넘어, ‘비건’은 모피와 같은 동물성 원료로 만들어진 옷, 동물 실험으로 탄생한 화장품을 거부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로 확장하고 있다.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는 “먹거리에서 영역을 확장해서 동물과 관련된 일상용품을 거부하는 것을 ‘비거니즘’이라고 한다. 비거니즘 문화가 점차 확산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국내 비건 시장은 여전히 작지만 코로나19와 기후 위기로 인해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으며, 앞으로 채식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분들이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드러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채식을 자유롭게 실천하기 어렵다. 채식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존재하며, 채식을 하기 위한 사회적 환경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원복 대표는 채식을 자유롭게 실천하기 위해 “채식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해소하고, 채식을 선택해서 실천할 수 있도록 채식 메뉴 개발과 식당 및 마트 등에서의 판매 확대와 같은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채식을 열린 시각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과도한 육식위주의 사회인데, 점차 채식 위주의 사회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하루 한 끼 정도 채식을 실천해보는 등 비건친화적인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제 비건을 하나의 ‘삶의 태도’로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