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호/사무사] 꽃잎이 부서진 자리에서, 봄바람을 기다립니다
목련이 환하게 피었습니다. 지구가 아파서 꽃이 이르게 피나 걱정되지만, 두 볼을 스치는 봄 기운에 여전히 마음이 설렙니다. 아른거리는 초록빛 아래, 봄처럼 환하게 웃던 당신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싱그러운 이 봄날, 당신과 함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봄바람 스며들던 지난 날에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연이은 총성이 울렸습니다. 8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이었습니다. 인종주의, 성차별, 여성혐오가 뒤엉켜 아시아계 사람들의 삶과 존엄을 짓밟았습니다. 그리고 총을 겨눠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말도 안되는 사건인데, 당당하게 비판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차별과 혐오로 가득 찬 시선, 삶의 존엄을 몰아붙여 끝내 처참히 박살내는 살인은, 우리 사회의 무언의 총격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경기도를 시작으로 지방자치단체 여덟 곳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전수검사 행정명령을 발표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1인 이상 고용한 사업주, 미등록 외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명령을 어기면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하고, 감염이 되면 방역비용을 포함한 모든 비용에 대해 구상권이 청구될 수 있었습니다. 경기도는 진단검사를 받지 않으면 취업을 제한하려고도 했습니다. 인권위는 이를 차별이라 판단했지만, 여전히 진행하는 곳이 보입니다. 명령에 스며든 국가의 인식은 폭력적입니다. 지역 감염, 이주노동자 내 집단 감염을 우려한다고 말합니다. 지역 감염이 우려된다면 그 지역 주민 모두가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출신 국가가 달라서, 피부색이 달라서 더 쉽게 감염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이주노동자를 콕 집어 코로나 확산의 화살을 돌렸고, 그들의 인권과 존엄을 차별로 묵살했습니다. 이주노동자 내 집단 감염을 우려했다고도 했습니다. 전수검사 결과 확산세가 감소했다는 자랑스러운 기사도 나옵니다. 감염자를 미리 발견하여 격리하고, 비감염자들만 모여 일을 해나간다면 위험성이 줄어들까요. 여전히 도사리고 있습니다. 주목해야 했던 것은 감염 여부가 아닙니다. 감염을 목전에 두고 있는 그들의 삶입니다. 12시간 가량 일하며,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잡니다. 자가격리와 거리두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들이 부대끼는 곳은 비닐하우스, 컨테이너와 같은 가건물입니다. 환기 시설이 없습니다. 잡동사니가 가득한 흙바닥에서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합니다. 지난 해 12월 경기도의 한 이주노동자가 그곳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1월부터 비닐하우스를 노동자 숙소로 제공하는 신규 사업장은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고용허가를 받은 사업장은 그대로입니다. 상당수의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거나 개선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고용주의 허가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고용허가제가 존재합니다. 장시간 노동, 폭언, 성폭력에도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합니다. 참지 못해 사업장을 이탈하면 불법 체류자가 됩니다. 정부는 사업장 변경의 가능성을 넓히는 후속조치들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삶의 위협에서 자유로운가 묻는다면,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사람을 보지 않고 차별로 일관하는 사회가 참 무심하고 잔인합니다. 그 시선에 휘갈겨져 당신도 하늘나라로 갔지요.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믿었던 군은 강제 전역이라는 총성을 울렸습니다. 자연스러운 삶을 침묵과 외면으로 뒤덮었습니다. 그 속에서도 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짓던 당신이었습니다. 반짝이는 꽃잎 같던 당신이었습니다. 차가운 이 땅 위에, 아직 남은 꽃잎들이 흔들립니다. 사회는 총을 겨누고, 꽃잎들은 산산조각 부서집니다. 오늘도 아득하게 봄을 기다립니다. 봄바람이 불어와 그 여린 움직임을 감싸주면 좋겠습니다. 당신도 꽃잎도, 저 목련처럼 환하게 피어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