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호/기자칼럼] “지금 하는 공부가 여러분에겐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 하는 공부가 여러분에겐 의미가 있습니까?”
연필로 끄적이고 있는 ‘미적분의 꼬부랑 기호들과 그래프’, ‘읽고 나면 머리가 새하얘지는’ 비문학 지문들, ‘머리 한가운데가 뻥 뚫린 듯한’ 영어 문장의 빈칸들. 이것들은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꿈꾸는 미래와는 영 동떨어져 있다고 느낀다. 이런 괴리 속, 대한민국의 중고등학생들은 미래를 고민할 시간에 한 문제라도 더 고민하는 ‘문제 기계’가 되었다. 목적의식 없이 ‘공부’하는 학생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쾌락적 존재이다. 인간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서 느낀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그 방면에 더욱 깊이 파고들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고 그 일을 함에 있어 보람을 느낀다면 한편으론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런 성공하는 삶을 위해 10대라는 시기는 ‘나’를 알아가는 시기이며, 앞으로의 삶을 계획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 시기에 몸담는 교육의 장(場), 학교의 중요성은 이루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적 측면에만 주목해도 학생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이치들이다. 이를 가르치기 위한 노력도 분주하다. 교육과정을 만들고, 이에 따른 교과서를 편성하고, 다양한 교수법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친다. 예를 들어 국어교과의 ‘독서’ 과목은 ‘읽기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사고가 성숙되며, 나아가 평생 학습력을 갖게 되고 인생의 즐거움도 얻을 수 있다.’라는 측면에서 학교 교육을 통해 의도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교육의 ‘본질’이 대학 입시의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의 일반적인 생각은 ‘꿈이 무엇이다’이면 꿈과 관련된 ‘학과’를 생각하고 목표로 하는 ‘대학’을 설정한다. 이때부터 학생들은 ‘공부’해서 점수를 올리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꿈에 다가가기 위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뿐이니까, 꿈에 다가가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는 ‘점수’니까. 물론,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이라면 여러 자동차의 디자인적 특성과 제조사별 특징 등과 같은 관심 분야를 공부할 순 있지만 이는 곧 목표 ‘대학’입학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없다. 독서 교육을 예로 들면,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독서 공부를 해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닌 읽기 능력의 향상이 학생들의 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뒷받침 되어야한다. 학교 교육의 방향이자 목표는 관련 대학의 입시가 아니라 그 장래희망 자체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인 학생이 있다면, 국어교과의 독서과목 수업으로 얻은 읽기 방법으로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공부를 하며 어려운 논문들과 자료를 잘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화법’수업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펼치고 다수의 의견을 파악해 포용하고 조율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이 학생들의 바람을, 꿈을, 미래를 반영해 진행된다면, 학생들이 공부하는 이유를 잃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학생들의 꿈이야 어떻든 이런 교육 방식과 평가 방식 그리고 입시제도가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결국은 인생에 도움이 될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고 그런 능력을 얻을 수 있게 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시선에서 공부의 목적이 어떻게 되냐’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인생의 초창기인 10대에 가지는 공부의 목적이 앞으로의 ‘삶’에 대한 동기부여의 유무로 귀결 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꿈이 있는 학생들에겐, 현실적인 '꿈'이 될 수 있도록, 가진 꿈을 놓지 않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며 하고 싶은 것 자체를 모르는 학생들에겐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앞으로를 계획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교육이 요구된다.
학생들이 지금 왜 공부하는지 아는 것. 현재 그것이 간과되고 있다.
학생들의 '성공한 삶'을 위해서, 목적의식을 한 방울 떨어뜨린 교육으로 학생들의 공부에 의미를 부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