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호/교수의 서재] 작가의 눈, 사회를 고민하는 렌즈가 되다
"큰 도서관은 인류의 일기장과 같다."라는 격언이 있다. 과거부터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비판적인 시각을 녹여내 사회문제를 고발하고, 독자에게 고민할 거리를 제공해왔다. 최근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눈을 돌리며 현대인의 독서량은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책은 여전히 오래된 교훈으로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을 준다. 학창 시절부터 사회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던 일반사회교육과 최석현 교수는 어떤 책과 함께 사회를 바라보았을까? 책에 투영된 시선을 따라가 사회를 바라보고, 더 나은 세상을 고민하는 그의 여정을 함께해보자.
◇ 학창 시절 인상 깊게 읽으신 책이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졸업한 지 20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이라는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떠오르더라고요. 귄터 그라스는 독일의 소설가이고요, 1999년에 노벨문학상을 이 책을 통해서 받았습니다. 이 책이 1959년에 나온 책인데, 참 오래되었죠? 제가 대학 시절만 되어도 30여년 정도 되었던 책이었답니다. 처음에는 이 책을 읽고자 의도해서 읽은 것은 아니고 제가 고등학교 때 봤던 영화 포스터 중에 <양철북>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게 소설도 있네? 싶어서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다가 상당히 심오한 내용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죠.
◇ <양철북>은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나요?
소설의 내용은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독일의 단치히(그단스크)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내용입니다. 오스카라는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데, 이 오스카라는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전쟁 도중 그리고 전쟁 이후의 삶을 시간 순서대로 묘사하는 그런 줄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재밌게 읽었던 포인트 중 하나는 이 오스카라는 소년이 태어나서부터 성인의 지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가 스스로 성장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하여 세 살 때 성장을 멈춰서 계속해서 어린아이로 살아가고 있죠. 그렇게 아이의 눈을 통해서 독일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나치에 동조하게 되고 전쟁 이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소시민의 삶으로 돌아가는지 묘사합니다. 사실 성인의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어린아이의 눈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기술 함으로써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사실 우리가 전쟁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소시민들이 때로는 전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되고, 또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그 과정들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전쟁 이후에 독일이라는 국가가 전쟁 과정에서 감추고 싶어 했던 아픈 모습들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감명받았습니다.
◇ 이 책을 추천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상당히 해석이 많이 될 수 있는 소설입니다. 성장을 멈춰버린 오스카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데 사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어른들의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각도가 다르죠. 어른들은 자기가 한 행동이,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이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밑에서 어른들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각들을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회나 우리 주변을 고정된 시각이 아닌 각자의 역할에서 벗어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제 개인적인 입장인데요. 나중에 이 책을 다시 읽고 나서 사회학자로서 우리 사회에서 독일이라는 사회 내를 보면, 독일이라는 사회가 급속하게 산업화를 진행하였고,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세계열강에 진입하는 급격한 현대화를 이루었잖아요? 그런 합리성이 증진된 사회를 객관적으로, 멀리서 바라보면 합리성 속에 담겨 있는 비합리성이 이분법처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이 섞여 있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갈 수 있는 태도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런 것들을 어떻게 볼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비합리적인 것들을 감추고 있는 여러 가지 허위인식들이라던가 이런 것들을 파헤칠 수 있는 비판적인 능력 등을 기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인공 오스카가 나 스스로 성장을 멈춰버리겠다. 그리고 사람들과 떨어져 거리를 유지하겠다고 했던 점들에서 그랬듯이 비판적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더 나가서는 이런 비판의식 속에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원동력, 의지 이런 것들이 어떤 것이 있을까를 고민해보는 시간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졌으면 합니다.
◇ 독일과 같이 우리나라도 전쟁의 역사를 겪었는데,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학생들이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할까요?
우리 역사상에서 전쟁을 이야기한다면 불합리한, 시대의 사건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이런 불합리, 부조리 속에서의 일들을 우리 사회가 회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50년 동안 고민해왔다고 생각됩니다. 1950년 6·25전쟁 이후에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기도 하고 반공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거치기도 하고 우리가 민주화를 거치면서 우리 시민들의 고민이 오랫동안 이루어진 것이죠. 개인이나 사회나 집단이라는 것이 가장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상태에서 개인의 가치와 개인의 정체성, 우리 사회의 공동체 의식이 어떻게 재성립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더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 학생들에게 해주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많은 것을 고민해보고, 많은 것을 읽어보고, 많은 것을 경험해보라는 얘기를 드리고 싶싶어요. 저 자신도 대학교 4년 동안에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동아리도 해보고 새로운 것이 있다면 가서 한 번 해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세상이 집에서 부모님과 같이 바라보던 세상과 좀 다르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저는 대학교 다닐 때 우연히 다문화가정 자녀를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일을 하면서 이분들에게 우리 한국 사회는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어요. 그러면서 사회를 바로 보는 시각을 트레이닝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동기부여가 돼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공부 과정에서 내가 생각했던 이슈와 같은 이슈를 만나게 되면서 이것들을 좀 더 내 전공으로 살려서 계속 연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시대의 특권은 고민입니다. 졸업하고 나서도 고민이 이어지겠지마는 중년은 고민을 계속할 시간이 별로 없어요. 앞에 닥친 일들을 계속하다 보면 한해 한해 나이가 점점 먹더라고요. 나에 대한 고민, 시대에 대한 고민, 세상에 대한 고민, 이웃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보는 것이 젊은 시기의 특권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