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호/교수의 서재] 고전을 우리 곁에 두는 방법
‘홍길동전’, ‘춘향전’처럼 익숙한 고전 문학부터 ‘전우치’, ‘추노’, ‘사도’ 등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영화나 드라마까지, 고전의 세계는 깊고 넓다. 고전이라면 질색하는 사람들도 어쩌면 이미 그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옛날 글’이 아니다. 뿌리 깊은 고전의 세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새롭고 다채로워진다. 무한한 매력을 지녀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고전이지만, 그 진가에 재미를 붙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왠지 어렵고 지루할 것만 같다는 편견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제는 편견에서 벗어나 고전의 매력에 빠져드는 새로운 경험을 시작해볼 때다. 매력이 가득한 고전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해줄 국어교육과 오윤선 교수의 서재로 함께 들어가보자.
◇ 교수님께서 감명 깊게 읽으신 책은 무엇인가요?
특별히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 뭔가 생각해 봤더니 떠오르는 게 별로 없어요. 대신 오래 읽었던 책은 있더라고요. 사실 읽었다기보다는 공부하려고 들고 다닌 책이었는데요, 논어랑 맹자가 바로 그 책이에요. 정말 열심히 봤죠.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는지 지금 생각을 해보면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중 세 번째 즐거움이 생각이 나요. 군자삼락 내용 중에 ‘득천하영재이교육지 삼락야(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라고,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가르치면 그게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군자는 아니지만 학생들 가르치는 즐거움을 떠올리면서 이 구절을 생각을 해요. 이 구절 때문에 교육의 길로 접어든 것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이런 고전은 사실 옛날 글이니 지금 학생들한테 읽으라고 하기엔 재미가 없잖아요. 재미없는 걸 굳이 읽으라고 추천을 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특히나 이런 거는 우리나라 고전도 아니니, 이런 책을 지금 읽어서 감동을 받거나 감명받아 읽을 만한 구절이 있지 않은 이상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저는 생각해요. 글 읽고 정말 나한테 감명을 주고 감명 깊게 읽을 구절이 있다고 하면 모르겠지만 아니거든요.
◇ 그렇다면 교수님께서 소개하고 싶으신 다른 작품이 있을까요?
저는 한중록을 추천하고 싶어요. 한중록은 줄거리를 이야기하기에는 길지만 이야기를 해볼게요. 혜경궁 홍씨가 어려서 사도세자랑 결혼을 했거든요. 결혼 이후에 사도세자가 이상한 행동들을 해요. 한중록을 계속 읽어보면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쳐서 사도세자가 정신병에 걸리게 되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아버지가 안 되겠다 싶어서 뒤주에 가둬서 사도는 죽게 되죠. 혜경궁 홍씨가 굉장히 똑똑해요.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자기 아들 정조는 살려야겠다 생각을 해요. 그래서 시아버지 영조한테 굉장히 납작 엎드린 거죠. 어찌 보면 이제 정조가 죄인의 아들이고 죄인의 가족인 거잖아요. 그런데도 우리를 살려줘서 굉장히 감사하다 그러면서요. 그렇게 굉장히 처신을 잘해서 아들을 결국 왕으로 만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이 나중에 자기 외할아버지, 그러니까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가 자기의 아버지인 사도 세자를 죽였다고 오해를 해요. 뒤주를 자기 외할아버지가 가져왔다고 생각한 거죠. 사실은 혜경궁 홍씨 친정이 나중에 벌을 받고 집안이 엉망이 되죠. 그런 걸 해명하려고 혜경궁 홍씨가 글을 쓴 거예요. 사실은 한중록은 굉장히 복잡해요. 이런 일 말고도 일이 굉장히 많거든요
◇ 한중록을 추천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한중록은 혜경궁 홍씨가 썼는데, 혜경궁 홍씨 입장에서 써서 그 글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한중록에 사도세자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영조가 아버지인 자신은 똑똑한데 아들은 자신의 기준에 못 미치고, 아이는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치니까 그렇게 된 거잖아요. 이 부분을 읽다 보면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부자관계와도 굉장히 비슷하다고 볼 수가 있어요. 왕실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접목시켜 읽을 수 있는 게 정말 많아요. 고전 중에서도 지금 읽으면서 우리의 가족관계나 교우관계와 같은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 있고, 감동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있다면 읽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을 해요. 한중록처럼요.
또 한중록을 읽어보면 글을 정말 아름답게 잘 썼어요. 우리가 ‘여성적인 문체’, ‘남성적인 문체’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게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긴 하지만 이 한중록을 읽어보면 ‘여성적인 문체가 이런 거구나’, ‘궁중에서 쓰는 글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우아하게 잘 썼어요. 그래서 고전은 줄거리만 듣고 넘어가기보다는 정말로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중록뿐만이 아니라 다른 작품도 읽어보면 ‘아, 이래서 우리가 고전이라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 고전은 매력적이지만 입문하는 게 쉽지 않은데,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요?
우리가 고전을 그냥 읽으면 어려워서 사실 안 읽게 돼요. 요즘은 아주 쉽게 풀어서 재밌게 쓴 고전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냥 그런 걸 읽으면 돼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항상 예로 드는데요. 그 작품도 셰익스피어가 쓴 대로 읽으면 어려워서 못 읽고, 영국 사람들도 그렇게 안 읽어요. 대신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를 본단 말이에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춘향전도 판소리로 들으면 재미가 하나도 없고 읽어도 재미가 없어요. 판소리계 소설은 읽으면 어렵잖아요. 하지만 그걸 영화로 재밌게 만든 걸 본다거나 드라마 ‘쾌걸춘향’을 본다거나 하면 재밌어요. 또 ‘전우치’라는 영화도 재미있어요. 사실 전우치 영화를 보면 되게 웃긴데 알고 보면 소설에서도 그 장면이 그대로 나와 있어요. 예를 들자면 그림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장면도 소설에 그대로 적혀 있어요. 알고 보면 소설도 굉장히 재미있는데 사람들이 안 읽을 뿐인 거죠. 옛날에 드라마 ‘추노’도 알고 보면 원래 ‘김학공전’이라는 소설이에요. 이것처럼 소설도 알고 보면 재밌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안 읽는 거죠. 고전 소설을 읽으려고 하면 사람들이 재미가 없고 어렵다고 생각해서 안 읽는데, 그럴 땐 그냥 그 소설을 재밌게 만든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그 재미를 느끼면 되는 거죠, 현대에 맞게. 사람들이 거기서 감동을 받으면 그게 고전의 역할이라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접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꼭 책으로만 고전을 향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또 고전을 읽는다면 어려운 원전 그대로 볼 필요는 없고 쉽게 사람들이 번역해놓은 책으로만 봐도 괜찮다는 생각을 해요. 정리하자면 ‘우리가 생활에서 문학을 즐겨야지 굳이 어렵게 학문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자 많은 학자들의 생각입니다.
◇ 영화나 드라마가 원작과 다르다고 비판을 받는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춘향전 같은 고전 소설은 굉장히 여러 버전들이 있어요. 그거는 그 버전마다 다 의미가 있거든요. 현대에 춘향전을 각색해서 만든 드라마도 다른 버전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그것도 다른 작가가 다른 생각으로 만든 버전이니까요.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다른 가치관으로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다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건 나쁜 게 아닌데 문제는 역사 드라마의 경우죠. 그건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역사 드라마를 잘못 보고서 역사를 잘못 알고 있으면 큰일이니까요.
사실은 그래서 한중록도 역사학계랑 국문학계랑 의견 충돌이 많았어요. 역사학계에서는 혜경궁 홍씨가 친정을 옹호하기 위해서 실제 있었던 일을 왜곡해서 쓴 거라고 주장했거든요. 근데 최근에는 국문학계가 점점 맞다고 인정받는 추세에요. 증거가 점점 발견되고 있거든요. 한중록에는 사도세자가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역사학계 교수님이 말씀을 했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발견된 편지 등에서 실제로 사도세자에게 울화병과 여러 병이 있었다는 증거가 나와요.
정리하자면, 역사학 사실이 왜곡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그런 문제와 달리 고전을 각색한 것이 원작과 달라지는 것은 시대에 따라서 가치관과 여러 가지가 달라지니까 바뀌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또 원래 글로 쓰는 그런 문학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바뀔 때는 매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당연히 바뀌어요. 독자층이나 청자층이 달라질 때는 좋아하는 게 다르잖아요. 그래서 또 타깃의 요구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는 나쁘다고 할 수 없죠.
◇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고전을 시작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저는 영화나 드라마가 좋다고 봐요. 어려운 시작을 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사실 고전에서 단서를 갖고 온 드라마가 굉장히 많아요. 고전이 아니더라도 역사 같은 거, 조선왕조실록에서 한 줄 가져와서 시작한 게 굉장히 많죠. ‘대장금’이나 ‘별에서 온 그대’나 전부 다 그렇단 말이에요. 실록에서 몇 줄 가져오는 식으로요. 그런데 이제 외국에서 인기 있었던 드라마들 목록을 쭉 봤을 때 고전에 기반을 둔 것들이 훨씬 인기가 많았대요. 그래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하거든요. 그런 만큼 다시 고전을 주목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교과서에 있는 고전을 읽는 것을 추천하지만 사실 쉽게 읽기 어렵잖아요. 그러니 일단 드라마나 영화로 시작해 보자는 거예요. 그러고 고전을 읽어보면 재미있어요. 국립중앙도서관 같은 데에 들어가면 고전 소설을 공짜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특별히 ‘고전이 이런 것이다’라고 하며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기보다는 어떤 작품을 접하고 거기에 나름의 감동을 얻거나 의미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학의 생활화인 거죠. 사실 거기서 더 나아가서 제가 바라는 것은, 영화를 보고 재밌다고 느껴서 원작을 찾아서 봐야겠다고 결심해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