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호/기자칼럼] 존재가 지워진 세계에 가닿는 삶을 향하여
우리 사회는 진정으로 민주적인가. 우리 개개인은 과연 민주 시민인가. 우리가 민주 사회를 망가뜨리진 않는가.
누구나 자기 시선의 한계에 머무르며, 그 세계 안에서 타인을 해석하고 여러 정보를 편집하고 무시한다. 누구나 저마다의 주관이 있기 때문인데 다른 말로 프레임, 혹은 인식 틀이 고착화돼 있기 때문이다. 인식 틀은 습관으로 굳게 자리 잡아 사고를 포함한 우리의 언행 하나하나를 무의식중에 지배한다. 비민주적이고 평등하지 못한 세계는 습관이란 벽에 숨어 언제나처럼 공고화되고 있다.
첫 번째로 민주 시민을 양성하려고 하는 비민주적인 학문 공동체를, ‘강사법’이라 불리는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으로써 다뤄보자.
대학에는 전임교원⦁비전임교원이 있고 비전임교원은 다시 초빙교원⦁겸임교원⦁강사 등으로 나뉜다. 이중 ‘강사’는 연구한 내용을 고등교육기관에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교원’이 아니었으며 이로 인해 ▲학기 단위 계약으로 인한 불안정 고용 ▲건강보험⦁사학연금⦁퇴직금 같은 사회보장 수여 불가 ▲폐쇄적인 채용 절차 ▲방학 중 임금⦁여타 수당 없음 등의 차별을 받아왔다.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년에 고등교육법 개정이 예정된 후 ‘19년 8월 1일부터 강사법이 시행됐다.
‘10년에 서정민 박사의 죽음이 있고서야 이 문제는 사회에 드러나기 시작했으나 ‘강사법’ 시행에 유예가 수차례 적용되어 문제를 근시일 내에 시정하지 못했다. 시행 직전인 ‘19년 상반기에는 여러 대학에서 강사법의 적용을 최소화하려고 강사를 미리 해고하는 등 여러 고초가 있었다. 강사법 시행 이후에도, 겸임교원⦁초빙교원 등의 제도로써 법의 적용을 피하는 등의 편법이 자행되어 법과 실제 운영 간의 괴리가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너무나도 익숙한 직종인데도 이런 형편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학이 자금 운영을 잘하리라 짐작하는, 교수⦁강사⦁초빙교원 등의 대우가 다르지 않겠거니 넘겨 짚는 안일함과 무관심이 습관이 되어 대학 사회의 일면을 눈앞에서 지워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두 번째로 기획 기사에서도 다룬 ‘트랜스젠더’를 논함으로써 선입견이 배제하는 사람을 다뤄보자.
혹자에게 트랜스젠더는 어떤 사람이겠느냐고 질문을 던져보자. 자문자답을 해보기도 하자. 흔히들 ‘본인 몸이나 사회적 반응에 괴리감과 고통을 느꼈기 때문에 여성/남성에서 남성/여성으로의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 정도로 이해하곤 한다. 이 통념상 정의는 그다지 적확하지 않다.
통상적인 수준에서 트랜스젠더는 트랜스남성(FtM: Female to Male)⦁트랜스여성(MtF: Male to Female)이다. 하지만 이는 좁은 의미의 트랜스젠더일 뿐이고 ‘출생 시 정해진 성별(이하 ‘지정성별’)과 성정체성이 다른 사람’이 본래 의미다. 이분법적인(Binary) 구분하에 성정체성은 여성/남성밖에 없지만 젠더퀴어(Genderqueer)라고 하는 비이분법적인(non-binary) 성정체성도 있는바, FtM⦁MtF 외에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젠더퀴어는 안드로진, 매버릭, 에이젠더를 위시한 여러 성정체성을 포괄한다.
지정성별 자체 또는 지정성별에 부가되는 역할을 향한 괴리감이 야기하는 불쾌감을 ‘디스포리아’라고 하는데, 본인의 성정체성과 신체가 불일치하여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일례다. 통념상으로는 디스포리아를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어야 ‘트랜스젠더’겠지만, 실제로는 괴리감이 있어도 디스포리아를 느끼지 않거나 약하게 느끼는 사람도 많다. 자신이 FtM이든 MtF든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이든 무관하게 말이다. ‘성전환수술(SRS: Sex Reassignment Surgery)’도 이와 마찬가지다. 디스포리아의 양적⦁질적 차이와 SRS 여부 자체는 트랜스젠더 여부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좁은 의미의 트랜스젠더만 트랜스젠더라 인정하는 이곳에서, 어떤 이들은 ‘트랜스젠더’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배려 등 여러 부분에서 소외되거나 자기 정체성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강압 앞에 놓이기도 한다. 상습적으로 이용하는 사고 도구와 개념이 인간성을 주요 가치로 내거는 민주 사회를 모르는 새 좀먹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인식 습관은 “내가 틀리거나 모자란 것은 아닐까?” 하는 자기 부정을 갖고 의도적으로 비틀지 않는 이상 부수기가 지난하다. 기존의 사고 방식과 여러 논리적 전제들이 틀렸다는 가정하에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자. 위의 둘처럼 꽤 알려진 사안과 다르게 감추어진 세계가 많다. 내가 보던 세계가 사회의 전체가 아님을 자각하자. 안 보던 세계에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조망하고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자. 버젓이 존재함에도 존재성이 지워졌거나 흐릿해진 사회에 발을 내딛도록 하자. 그리고 같이 실천하자.
다른 작은 나라들, 그러니까 대학, 마을, 학교가 모두 봉건적인 왕조 체제인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만 민주 공화국이 될 수는 없어요.
[채효정,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교육공동체벗, 2017, p.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