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호/사무사] 새해 다짐, 삶의 다짐
연말부터 동네 아파트 페인트칠 작업이 이루어졌다. 말끔하게 색을 갈아입은 집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움직임이 멈췄다. 고요한 동네. 흐릿한 아파트에는 바람만 분다. 분주하게 작업이 이루어지던 어느 날, 한 노동자가 떨어져 숨졌다. 비보를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슬픔보단 충격이었다. 부유한 주민들. 평화로운 공원.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 동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집 앞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어색했고, 영화가 현실이 된 듯한 불균형을 느꼈다.
불균형. 1년 반 동안 신문사 활동을 하면서 약자,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고자 노력했다. 정기자가 되고 썼던 첫 칼럼은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현실, 산재 사망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었다. 편집장이 되어서는 더 적극적이었다. 고 이소선 씨의 삶, 외국인 노동자와 고용허가제, 아동 학대, 서울퀴어문화축제, 코로나 속 장애인의 삶, 차별금지법,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텔레그램 성착취.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을 놓치지 않고 주시하며 더 민감하고 엄격한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우선 깊이 이해해야 자격이 생긴다고 생각해서, 사회 구조의 부조리와 사각지대를 공부했다. 하지만 내가 그들과 함께 진정으로 아파했다면, 그날 아파트에서 떨어진 노동자의 죽음이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같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아픔을 영화로 보았다. 영화 속으로 들어가 그 현실에 젖어 보지 않았다. 기자는 머리가 차갑고 가슴은 뜨거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약자의 삶을 마주한 나는 머리가 뜨겁고 가슴이 차가웠다. 몇 십 시간, 몇 백 시간의 검색과 독서로 그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공들여 쓴 기사를 공감과 정의라고 자부하며 독자들에게 호소했다. 머리가 차가워야 한다는 것은, 가슴이 먼저 뜨겁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내 기사는 퀄리티가 높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떳떳하진 못했다. 늘 마음 한 켠이 공허했었다. 외국인 노동자의 비닐 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낸 타 언론 기자의 기사를 보며, 정인이의 무덤 앞 길게 늘어 선 시민들의 줄을 보며,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선뜻 나의 기사를 꺼내지 못했다. 그들이 겪는 사회 문제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었음에도, 함께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주저하게 되었다.
사회의 부정의를 비판하고 약자와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내가 그려오던 삶의 방향이었지만, 본질을 놓치고 살아왔음을 반성한다. 알량한 허세와 부끄러운 오만이었음을 반성한다. 세계로 들어가는 것. 멀리서 쓰다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내 삶으로 느끼는 것. 공부하는 것도, 채찍질하는 것도 아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웃음이 나고, 소리를 지르는 것. 그렇게 삶의 방향을 다시 그려나가려 한다.
책을 읽으려 한다. 많은 이야기를 담기보단, 한 사람의 진솔한 경험과 마음이 뒤엉킨 책을 읽으려 한다. 천천히 바깥을 걸으려 한다. 가장 작고 가장 아픈 세계를, 방 안이 아닌 거리에서 마주하려 한다. ‘내용이 완전한가’보다, ‘그들의 시각에서 물었는가’를 따지며 기사를 쓰려 한다. 어색하지 않도록. 영화같지 않도록. 언젠가는 부끄러움 없이, 그들과 나란히 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