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호/교육탑] 특권층으로 향하는 그들만의 사다리, 그 위엔 과학고·영재학교가 있다

영재학교 졸업생 의대 진학 논란이 드러낸 교육불평등

2021-02-15     김금비 기자

최근 한 방송에 영재학교 출신 서울대 의대생이 출연하면서 과학고·영재학교 졸업생의 의대 진학 문제가 재조명되었다. 이공계열 인재 양성을 위한 특수목적학교인 과학고와 영재학교에는 매년 수백억의 세금이 투입된다. 그러나 설립 취지와는 맞지 않게 과학고·영재학교를 개인의 의대 진학 통로로 이용하고 있는 현실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과학고·영재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사교육이 필수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재학교 학생들 중 대다수가 영재학교 입학을 위해 중학교 시절 사교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권층에 가려면 사다리에 올라야 한다. 과학고·영재학교는 본래의 의미를 버리고, 그 사다리의 일부가 되었다. 사다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특권층만이, 그 사다리에 탈 수 있다.

 

취지는 버리고 몰아주기만 챙겨간다

지난 달 6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과학고 출신 서울대 의대생이 출연했다. 방송에서는 출연자가 서울대를 비롯한 국내 주요 의과대학 6곳에 동시 합격한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방송 직후 프로그램 측과 출연자는 국민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들이 비판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고와 영재학교의 설립 취지와 그에 따른 교육부의 지원을 알아야 한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0조에서는 교육감으로 하여금 특수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를 지정고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이공계 및 과학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 과학계열의 고등학교로서 과학고등학교를 명시하고 있다. 또한 영재교육진흥법 제2조에 따르면, 영재학교는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영재의 능력과 소질에 적합한 교육을 위해 설립되는 고등학교 과정 이하의 학교다. 영재학교에는 과학영재학교와 과학예술영재학교가 있는데, 유퀴즈 출연자의 출신 고교인 경기과학고를 비롯한 8개의 과학영재학교가 전국에 존재한다. 과학영재학교와 과학고등학교는 서로 다른 법으로 관리되고 있으나 과학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립 취지에 따라 과학고와 과학영재학교 졸업생 모두 이공계열로 진출하는 것이 원칙이다.

영재학교는 전국 8개교가 모두 국공립으로, 이공계 인재 양성의 취지에 따라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을 만큼 높은 교육투자가 두드러진다. 교육부 정보공시 사이트 학교알리미에서 각 영재학교별(한국영재 제외) 2020년 학교회계 예/결산서를 바탕으로 영재학교 학생 1인당 평균 세출총액을 산출한 결과, 2,070만 원이었다. 또한 학교마다 다르지만 학생들은 1인당 한 해 교육비와 장학금 등 평균 지원금으로 최소 1,700만 원에서 많게는 3,000만 원까지를 무상지원 받고 있었다. 전국 20개 과학고의 경우, 학생 1인당 평균세출총액을 산출한 결과 약 1,610만 원이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1인당 평균 최소 1,200만원에서 최대 2,300만 원까지 지원받고 있었다.

출처 / 교육부
출처 / 한국교육개발원 '한국영재교육종단연구의 고등교육 단계 조사설계 연구'

하지만 국가 차원의 과학 인재 양성이라는 설립 취지와 그에 따른 국비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용하여 진학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용호 의원(전북 남원·임실·순창,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2월 기준 전국 20개 과학고 졸업생 수는 총 1,567명으로, 이 가운데 14.7%(231)가 이공계 외 학부로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19년 한국교육개발원이 대학 재학 중인 영재학교 졸업생 337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한국영재교육종단연구의 고등교육 단계 조사설계 연구에 따르면, 이들 중 40.4%(136)사회적 명성과 인지도와 같은 외적 요인을 대학 선택 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해당 연구 참여자들의 주전공은 대부분 이공계열로 이 중 공학계열이 159(47.2%), 자연계열이 73(21.7%), 의학계열이 65(19.3%), 무계열이 39(11.6%)이었다. 대학 선정과 관련해서 사회적 명성과 인지도를 중요하게 고려했다는 점, 특히 의학계열로의 선택이 19% 정도로 높았다는 결과는 영재학교가 충분히 의대 진학의 사다리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과학고·영재학교는 국가의 과학창의인재육성을 위해 존재한다. 졸업생들의 진학이 설립 취지와 국비 지원에 부합할 수 있도록, 엄격한 학사제도 개편이 시급하다.

 

졸업 자격 박탈 등 교육부 차원의 강수 두어 의대 진학 막아야

외고나 자사고의 경우 설립 취지에 반하는 진학 사례들이 있으면 외고, 자사고 지정이 취소되는 등 교육부 차원의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러나 외고·자사고와 달리 과학고·영재학교는 가해지는 제재가 없다. 개인의 의대 진학 통로로 이용되더라도 그것은 불법이 아닌 편법에 그치는 것이다. 의대 진학 사례가 발생한 다른 과학고·영재학교와는 달리, 부산의 한국과학영재학교(이하 한국영재’)는 최근 4년간 졸업생 100%가 이공계열로 진학했다. 한국영재는 학생의 의·약학계열 합격·불합격 여부를 떠나 지원만 하더라도 한국영재에서 받은 모든 혜택을 환수하고, 졸업을 유예시켜 대학 합격을 취소시킨다. 서울과학고도 2020학년도 신입생부터는 의대 지원 시 지원받은 교육비 1500만 원과 교내상 모두를 취소한다. 이와 같이 교육부가 과학고·영재학교 졸업생의 의·약학계열 지원 자격 제한을 의무화하고, 의대 진학 시 졸업 자격을 박탈하는 등 학사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교육걱정’) 구본창 정책국장은 ·약학계 지원 시 장학금 환수나 교내 수상 철회 정도의 불이익 조항만으로는 문제가 되고 있는 의·약학계열 진학을 막지 못한다. 한국영재와 유사하게 의대 지원 시 졸업 유예라는 강수를 둘 필요가 있다고 제재 방안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더불어 과학고·영재학교 내에서만이 아니라, 과학고·영재학교 출신 신입생 비율이 높은 의대에 예산 지원을 줄이고, 특기자 선발 인원을 줄이는 등 대학 차원의 제재 또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교육 인재가 과학고·영재학교에 간다

2020년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사교육걱정이 공동으로 실시한 희망 고교 유형별 사교육 실태 조사’(163개 일반 중학교 학생 3470, 151개 일반고 및 112개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과학고·영재학교 학생 5112, 교사 1461명 대상)에 따르면 월평균 100만 원 이상을 사교육비로 쓰는 중3 학생 62.5%가 영재학교를, 50%가 과학고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당 14시간 이상 사교육을 받고 있다고 응답한 중3 학생은 79.3%였는데, 그 중 62.5%가 영재학교를, 55%가 과학고 진학을 희망했다. 실제로 신 의원과 사교육걱정이 영재학교 입시로 유명한 사교육 업체 3곳의 자료를 확인해 본 결과, 2019학년도 영재학교 전체 입학자 834명 가운데 ㄱ학원 출신이 266(31.9%), ㄴ학원 출신이 80(9.6%), ㄷ학원 출신이 74(8.9%)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과학고에서는 입학자 128명 가운데 48.4%62명이 강남구 대치동의 특정 학원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2020년 사교육걱정이 영재학교와 과학고 학생의 거주 지역(·)을 분석한 결과, 해당 년도 기준 수도권 교육 특구 상위 10개 시·구의 입학생은 전체 입학생(828)43.6%(361)를 차지했다. 월 사교육비로 수백만 원 이상을 감당할 수 있는 특정 계층만이 과학고·영재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구본창 정책국장은 거주 지역, 부모의 경제력 등이 고교 입시에 영향을 미쳐 고교서열화를 만들어내고, 이는 대입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불평등한 교육 향유 현실을 설명했다. 나아가 현재 과학고·영재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대부분이 고강도 선행학습과 사교육을 받으며 만들어진 인재다. 따라서 입학과 관련해서는 지원 시 지역 제한을 두고, 자기주도학습전형을 도입해 부모의 배경이 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시도교육청의 영재발굴센터를 내실 있게 운영하여 영재를 발굴하고, 영재학교가 분리교육기관이 아닌 일반고 및 시도교육청이 발굴한 영재를 위탁 교육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권층의 사다리를 무너뜨리고, 교육의 본질을 고민해야

과학고·영재학교 대학 진학 문제가 불거졌지만, 우리 교육에는 뿌리깊은 불평등이 존재한다. 이는 사회에서 반드시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지난달 20,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교육불평등해소법안을 발의했다. 정부가 교육불평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불평등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를 토대로 5년 단위의 계획을 세워 교육불평등을 점진적으로 해소하는 과정을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그 중심 내용이다. 구본창 정책국장은 현재까지 우리 사회에서 교육불평등 원인의 정밀 진단과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차후에 교육불평등해소법이 제정되면 영유아부터 노동시장까지 영향을 미치는 불평등의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개천의 용에게 박수를 보낸다. 어려운 교육 환경에서도 용이 된 그의 노력에 박수친다. 하지만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들의 노력이 아니다. 그들이 뼈를 갈아 노력하게 만든 교육 환경이다. 상층의 자녀들에겐 금은보화같은 교육이 쏟아지지만, 개천의 아이들은 뼈를 갈아도 교육을 받기 어렵다. 모든 아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의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특권층만의 사다리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나아가,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교육은 특권층으로 가기 위한 수단, 더 근본적으로는 계층 세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는 이번 과학고·영재학교 의대 진학 논란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나 교육의 본질은 수단이 아니다. 과학고·영재학교가 의대 진학 고시원이 아닌 과학의 장이었듯이, 교육의 본질은 모든 아이들의 인간다운 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