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호/기자칼럼] 무지라는 권력을 휘두르는 당신에게

2020-11-30     이희진 기자

저희 과에 장애인은 없습니다.” 최근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학생회장 당선자가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의 장애인 인권 관련 질문에 내뱉은 답이다. 배리어프리(barrier-free)하지 않은 공간을 배리어프리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딱히 그런 공간은 없습니다.”라며 장애인 인권에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럴듯한 말일지도 모른다. 장애인도 없는 과에서 장애인을 위한 사업을 한다는 것이 가뜩이나 바쁜 학생회에게는 그닥 중요하지 않은, 몰라도 되는 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몰라도 됐던 것이 누군가에겐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코로나 블루를 경험할 때 다른 누군가는 코로나 블랙을 겪었던 것처럼 말이다. 코로나 블랙은 모든 것이 암담해진 생존의 문제다. 코호트 격리로 감염으로부터의 탈출구를 봉쇄당한 청도 대남병원의 정신 장애인들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몰려드는 물량으로 죽어가는 택배 노동자들, 비대면으로 약화한 사회 관계망과 지지 체계 속에서 고독사한 취약계층의 사람들이 겪는 상황이 바로 코로나 블랙이다. 코로나 블랙이 찾아오고 나서야 사회는 그들이 겪는 소외와 차별을 발견했다. 사실 발견은 이미 여러 차례 이루어졌었다. 외면당해 다시 묻혔을 뿐이다. 2017년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가 들어서려 하자 반대하던 주민들에게 무릎 꿇던 특수아동 부모들,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조명이나 헤드랜턴 없이 설비를 점검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어 사망한 김용균. 사회에 충격을 안겨줬던 굵직한 사건 말고도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시해 보이는 차별들까지. 우리는 발견한 것들을 무심코 외면하곤 한다. 연대는 남의 일이다.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학생회장 당선자처럼 나랑은 관련이 없다는 말로, 잘 모른다는 말로 회피하거나, 가뜩이나 바쁜데 그런 일까지 신경 써야 하냐며 그들의 외침을 무력화하기도 한다. ‘무지할 수 있는 권력이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가 코로나 블랙을 겪고,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고, 성희롱·성폭행을 당하고, 노동 현장에서 과로로 죽어가는 동안 이를 하나도 모른 채, 학업과 일에 평온하게 집중할 수 있게 해준 무지가 바로 권력이다. 무지라는 권력 아래에는, 차별과 소외를 직접 겪는 의 세계가 있다. 소외와 차별에 무지할 수 없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세계다. 우연히 시선에 들어온 소외와 차별을 보고도 이에 대한 무지를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는 이 권력 구조를 더 견고히 한다. 이 구조에선 앎의 세계에 사는 장애인, 다문화 가정, 고령자, 여성, 성소수자, 어린아이 등이 철저히 배제되고 타자화된다. 의도된 무지 앞에서 그들의 아픔은 남의 일이요, 연대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의도된 무지 앞에서 그들은 소외와 차별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무지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할 수가 없다. 앞서 소개했던 사례들처럼 오늘날 미디어에서는 끊임없이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는 소외와 차별을 고발한다. 바빠서, 나와는 관련이 없어서, 잘 모른다는 말은 이제 변명이다. 사실은 의도된 무지의 안온함을 누리며 외면할 뿐이다. 여전히 무지라는 권력을 쥐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며 살아갈지는 당신에게 달렸다. 당신의 선택이 연대와 양심의 세계이길 바란다.

 

* 배리어프리(barrier-free) :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

* 코호트 격리(Cohort Isolation) : 질병 발병환자뿐 아니라 의료진을 모두 동일집단(코호트)으로 묶어, 감염자가 발생한 의료 기관을 통째로 봉쇄하는 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