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호/독자의시선] 사물의 기억
민소정(교육학·17) 학우
우리 집은 두 달 전 즈음에 이사를 갔습니다. 이사를 가기 전,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다른 집보다 살림이 많다면서 짐을 많이 버려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족들은 몇 주 동안 각자의 물건들을 정리했습니다.
방을 모두 정리하고 보니, 멀쩡하지만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수납장 구석구석에서 미사용 상태인 새 제품들도 나왔습니다. 오래된 커트러리 세트라든지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물건들을 버리기 아깝다하시며, 중고 거래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시고는 나온 물건을 무료로 드린다며 올리셨습니다.
저와 언니는 뭐 하러 공짜로 사람들에게 물건을 나누어주려 하냐며 불평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부모님께서는 오히려 이런 것들을 뭐 하러 돈을 받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에게는 의미 없는 물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쓸모가 있을 수 있지 않겠냐면서,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다 쓰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집에서는 한동안 어플리케이션 알림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습니다. 소리가 들리면 어머니는 집 근처로 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물건을 전해 주시고 돌아오셨습니다.
오랜 시간 거실을 장식하고 있던 달마도가 그려진 접시도 그 대상이었습니다. 달마도 접시는 어떤 아저씨께서 가져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로부터, 아저씨께 달마도를 드릴 때 나눈 대화를 전해들었습니다. 아저씨는 그 동안 힘든 일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이제는 힘들었던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고, 앞으로의 일이 잘 풀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달마도를 집에 두고 싶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기뻐하시면서 달마도 접시를 받아 소중히 가져가는 모습에 어머니는 가슴이 뭉클해지셨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어떤 부분이 감동적인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쩌면 아저씨가 가진 기대감이 전해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에 대한 소망이 달마도 접시로 나타난 것이겠지요. 이런 일이 있으면 새삼스럽게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에는 모두 사용자의 기억이 깃들어 있다는 점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은 대학교 입학할 때 어머니께서 사주신 것인데, 거의 4년 동안 저와 함께 과제를 하면서 보냈습니다. 충전기 선에는 피복이 살짝 벗겨져 테이프로 둘둘 말려 있고요, 키보드 커버는 1학년 때 룸메이트와 같이 주문했는데 사이즈를 잘못 구매해서 매번 벗겨집니다.
아마 노트북이 고장 나게 되면 저는 그런 사소한 기억들을 노트북과 함께 버리겠지요. 그런 점에서 물건을 정리하는 일은 어떤 의식 같습니다. 저는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엽서라든지, 멀리 여행을 떠났다가 구매한 열쇠고리 같은 걸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가도, 한순간에 미련 없이 버려버리곤 합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땐 예뻐 보였던 게 안 예뻐 보일 수도 있고, 또 과거의 추억이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몇 년 지나고 보니 그저 그런 평범한 기억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두 달 전과 같이 물건을 버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가진 것들은 결국 내 삶의 흔적인 동시에 내가 표현되는 방법 중 하나인 듯 보입니다. 달마도 접시를 가져가신 아저씨처럼 자신의 기대에 따라 새로운 소품을 들이기도 하고,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추억과 함께 기념품을 정리하기도 하니까요. 앞으로도 저에게 의미 있는 물건들로 주변을 채워나가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