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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호/얼렁뚱땅문화살롱]「나는 중식이다」, 정중식

김성치(초등교육·14)l승인201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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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손을 꼭 잡고 잔 적이 있다. 그 겨울밤 할머니 댁엔 눈이 많이 내렸다. 창밖으로 새하얀 눈발이 흩날렸고 마당서 흰둥이 짖는 소리가 들렸다. 휘잉 몰아치는 겨울바람은 조용한 공기를 간간이 찢었다. 곰팡이가 조금 핀 천장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둥실 떠올라 절로 밤하늘에 가 닿을 듯 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아버지 코 고는 소리는 유난히 시끄러웠다. 문득 그가 내 손을 꼭 붙잡은 채 주무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스무 살 먹은 아들 손을 잡고 잠에 들었을까. 무수히 갈라지고 여기저기 굳은 살 자리한 손을 쓰다듬었다. 왜인지 나는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내 싱싱한 육신과 맑은 영혼에 비하여 옆에 누운 남자는 얼마나 사무치게 지쳐있는가. 내가 가진 젊음을 아버지에게 조금 나눠주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손에 내 손을 포개고 잠시 기도했다. 그러나 아버지 손의 감촉은 그대로였다. 내 부드러운 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날 밤 끝내 아버지가 내 젊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그가 버텨내는 고통을 옆에서 지켜봐온 나는 외로운 아버지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하지만 내가 그에 대해 가진 깊숙한 애정은 손을 꼭 붙잡아드리는 것에 그치고 만다. 아마도 아버지는 자식의 젊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불안함으로 가득한 시간을 감당해내는 과업이 이제 아들의 몫이 되었음을 아신 걸까. 스물두 살의 나는 무참히도 한창 젊다. 
아버지만큼 강해져야 한다. 그가 남겨둔 젊음을 낭비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내 앞에 어지러이 놓인 풍경을 구경만하고 있을 수 없다.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버둥거리며 내가 먹을 밥을 벌어야 하고, 나만의 목소리를 만들어가야만 한다. 혼란스러운 세계에 매몰되고 싶지 않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것들을 한 줄씩 적어두고 다음 장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비로소 내가 짠 게임을 시작해야 할 때다.

“열심히 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나는 중식이다」
 
단 한명이 촬영하고 직접 배우로서 출연하는 십칠 분짜리 영상이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오늘부터 자신이 영화감독이라고 믿는 정중식은 자기 역량이 닿는 데까지 노력해보기로 했다. 제목부터 위풍당당하다. ‘나는 중식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뉴스와 기사가 여러 시퀀스를 담당하고 있고, 자기가 직접 작곡한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쓰인다. 못생긴 한명의 주인공(정중식 본인이다.)만이 등장하며, 어설프게 그린 삽화로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썩 우스꽝스럽게도, 영화 곳곳엔 영상을 촬영하는 데 사용한 소니 액션캠을 홍보하는 신이 삽입되어 있다. 혹시 모르는 스폰서십을 기대하면서.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의 주된 메시지가 바로 이 영화를 만드는 방식 자체라는 것에 있다. 정중식은 스스로를 못난 배우라고 인정하고, 자신이 섬세한 촬영 기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감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다만 그는 보잘것없는 능력을 총동원하여 각 신마다 최대한의 퀄리티를 담기 위해 애를 쓴다. 액션 카메라를 세탁기에 넣어보고, 훌라우프에 매달아 돌려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철부지 늦깎이 감독 정중식의 이런 분투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잠이 안 온다. 이게 뭐가 불안한 건데.”
「나는 중식이다」

중식이는 불안하다. 너무 불안하여 잠이 오질 않는 밤엔 작곡을 한다. 돈이 궁한 날엔 노가다 판으로 향한다. 일을 마치곤 새벽 첫차를 타고 퇴근한다. 어느 날은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가기도 한다. 그래봤자 번번이 떨어지기 일쑤다. 종국엔 어렸을 적부터 막 살아온 것을 후회한다며 낙담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고민을 얼기설기 모아 영화로 만든다.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믿기 시작하면 삶은 조금씩 불행해지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사실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나는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 혹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이처럼 잔뜩 부풀린 정체성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배제하고 모욕한다. 솔직하게 말해, 누구나 별 거 없는데, 나도 그렇고.
어느 작품을 통해 많은 이가 감동하는 것은, 군더더기를 다 떼어내고 남은 삶의 알몸이 아닐까. 작가가 끄집어낸 지극히 개인적인 장면들은 언뜻 보기에 굉장히 초라하고 심지어 거북할 수조차 있다. 다만 이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정성스레 꺼낸 이야기엔 모든 인간이 품고 있는 감정과 경험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중식이의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면서 우리들 역시 휘청거리며 걷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처럼. 
  
“나는 영화감독이다. 오늘부터” 
「나는 중식이다」

조촐하게 제작된 영화를 보면 기분이 참 묘하다. 반대로, 막대한 자금을 휘둘러 휘황찬란한 첨단 효과를 곁들인 영화는 내 삶과 그리 넓게 맞닿아 있지는 않은 듯하다. 제 안에 외로움을 버텨내는 이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서 담담한 빛을 퍼뜨리는 영화야말로 나를 멈칫하게 만든다. 이윽고 러닝타임 막바지에 엔딩 크레딧이 천천히 내려오면 내 삶도 언젠가는 저런 방식으로 끝이 나기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내 삶의 엔딩 크레딧엔 그동안 어떤 배우가 출연했으며, 제작 지원은 어디서 받았는지에 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겠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감독의 이름엔 아마도……아니, 반드시 내가 적혀있기를.


김성치(초등교육·14)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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