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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호/교육현장엿보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강민우(군산제일고) 교사l승인201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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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신문사 후배가 되어버린 제자 녀석에게 원고를 청탁받고 교직 경력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나이 마흔 다섯의 지금. 나를 바라본다. 눈앞에 아이를 두고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머뭇거린 적이 있다.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아 안경을 벗고 보기도 한다.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 때가 있었다. 우리반 아이들이 나를 어려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한 마디로 늙어가고 있다. 몸과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지 8년째. 중학교에 있을 때와는 달리 여유가 없다. 방학을 해도 보충수업을 하다 보면 며칠 쉬다가 또 새 학기를 시작한다. 지난 학기를 돌아보고, 새로운 학기를 준비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나 자신이 충전되지 못한 채 계속 방전되는 배터리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좀처럼 신바람이 나질 않고 피로감이 누적되는 느낌이다. 
교사가 되고 나서 한 다짐은 관리자로 승진하려 노력하지 않고 평교사로 정년퇴직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변의 선배와 친구들이 장학사가 되고, 교감으로 승진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나만 제 자리에서 고여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못마땅한 기분이 든 적도 있다.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퇴직하고 싶다는 내 소망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단지 조금씩 자신이 없어졌을 뿐이다. 이런 지금의 불안과 자신 없음 덕분일까. 이젠 가던 길 멈추고 나를 돌아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문학을 가르치셨다. 점심을 먹고 난 5교시 햇볕이 나른한 창가 쪽에서 턱을 괴고 수업을 듣다가 문득 든 생각. 저렇게 수업을 하는 거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잘난 척한다는 오해는 없길 바란다. 수업은 형편없고 지루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귀에 쏙 들어올 만큼 재밌고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지극히 보통의, 일상적인 수업 장면이었다.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저런 평범한 수업이라면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어줍잖게도. 
이렇게 흐릿하고도 막연한 생각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신입생 시절 기억나는 장면은 다리미실이다. 우리 과 동기들은 기숙사 점호가 끝나면 신뢰관 다리미실에 모여서 라면을 끓여 먹곤 했다. 냄비 하나에 열댓 명이 먹을 양을 끓여야 했으니 라면 사리를 몇 번은 넣어가며 재탕 삼탕한 라면이었다. 짜고 퉁퉁 불은 면발을 후르륵 씹어 삼키며 우리는 선배들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거나 우리과 여자애들의 뒷담화를 하곤 했다.
찌질하게도. 하지만 간혹 아니 사실은 꽤 자주, 그 곳 다리미실에서 우리는 당시의 사회와 교육 현실을 비판하거나 장차 자신의 미래가 될 선생님의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무슨 얘기들을 했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지만 고만고만한 동기 아이들과 다리미실, 과방, 인문관 앞 잔디밭, 운동장 한 켠에서 나누었던 자못 심각하고도 진지했던 당시 경험은 8할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를 키운 소중한 거름이었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에 들어가 우당탕탕 이리 치이고 저리 부딪히며 정신없이 보내다가 처음 맞이한 겨울 방학은 지난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수업을 할까를 고민하기에 적절한 시기였다. 도서관에서 현직에 계신 선생님들이 펴낸 ‘함께여는 국어교육’의 생생한 수업 사례들을 밑줄 쳐 가면서 읽고 공책에 정리하곤 했다. 내년엔 나도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괜스레 가슴이 뛰고 두근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앞이 뿌연 안개 속에서 나아갈 한 걸음을 고민하고 있다. 잠시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잘못된 선택은 없었는지, 그른 판단은 없었는지 생각해 본다. 아직까지 큰 후회는 없는 것 같다. 그럼 다시 운동화 끈 단단히 묶고 가던 길 나서야겠다. 내 삶이 소모적인 배터리와 같은 느낌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한다. 정년을 바라보며 근근히 버티며 연명하는 삶이 아니길 바란다. 자신의 늙음을 탓하고 주변을 탓하면서 슬그머니 놓아버린 초심은 없는지, 퍼질러진 게으름은 없는가 살필 일이다. 주변의 선생님을 보면서 계속 배우고 아이들과도 소통하려는 노력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이제 나 자신에게 불경 한 구절을 인용하고 끝맺으려 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강민우(군산제일고) 교사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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