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7.11.16 목 11:07

[395호] ‘평생 어휘 학습장’ 쓰기 도발(挑發)

윤천탁 (국어교육) 조교수l승인2016.10.24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뉴스에서 ‘북핵 도발’이란 단어가 여러 차례 다루어지자 초등학교 2학년생인 큰아들이 “엄마, 도발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웬만한 단어의 뜻을 잘 말해 주던 아내가 이번에는 바로 답을 해 주지 못하고 “아빠가 국어 선생님이니까, 아빠한테 물어봐.”라고 말했다. 그 순간 ‘국어 선생’인 필자는 머릿속으로 ‘도발’이란 단어가 쓰인 예를 열심히 떠올리며 단어의 뜻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무력 도발, 미사일 도발, 도발적, 성적 도발……” 등등 여러 가지를 떠올렸는데, 선뜻 ‘도발’이 어떤 한자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마도 ‘발’은 ‘일어날 발(發)’이 쓰인 것 같은데, ‘도’는 무슨 한자인지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에 ‘도발’이 무슨 뜻인지는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남에게 설명하자니 어려움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잠깐 동안 생각을 한 후 안 되겠다 싶어 국어사전을 찾아보고 나서 큰아들 녀석에게 단어의 뜻을 설명해 주었다. 그날 필자의 ‘평생 어휘 학습장’에는 ‘도발’이란 단어가 적히게 됐다.

어휘 교육과 관련한 여러 용어 중에 ‘이해 어휘’와 ‘표현 어휘(혹은 사용 어휘)’라는 게 있다. ‘이해 어휘’는 자기가 직접 원활하게 쓰지는 못해도 그 의미나 용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어휘를 말한다. 한편 ‘표현 어휘’는 자신이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어휘를 말한다. 예를 들어 야구와 관련한 신문 기사를 읽다가 “마무리 투수가 마지막 타자를 뜬공으로 처리하여 경기를 승리로 매조지를 했다.”라는 문장에 쓰인 ‘매조지’의 뜻을 대충 짐작을 하고 ‘끝을 맺음’의 뜻이라는 정도로 이해했다면 자신에겐 ‘매조지’가 ‘이해 어휘’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매조지’라는 단어가 ‘일의 끝을 단단히 단속하여 마무리하는 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평상시에 “그 일은 내가 매조지를 잘할 테니 걱정하지 마.”처럼 일상생활에서 원활히 잘 사용한다면 ‘표현 어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휘 교육에서는 처음 접하는 생소한 어휘를 ‘이해 어휘’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더 나아가 ‘표현 어휘’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필자가 어휘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국어 어휘를 제대로 몰라서 어떤 일에서 소외를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등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지장이 생기는 일은 없게 해야 하지 않겠냐는 소박한 생각을 하면서부터이다. 그래서 거창한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일단 나 스스로가 어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풍부하게 한 후, 그 결과물을 나의 가족이나 동료 등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생각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 일명 ‘평생 어휘 학습장’이다. 이것은 필자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처음 접해서 무슨 뜻인지 모르던 표현,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지만 정확히 몰라서 일상생활에서 맘대로 쓰기 어려운 표현,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게 잘못된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된 표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데 문제는 없지만 누군가가 물어봤을 때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표현 등에 대해 매일매일 적어 두는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필자가 평생 어휘 학습장을 기록한 것의 일부를 예로 든 것이다.

날짜

어휘

접한 곳

잘못 알고 있던 내용

새롭게 알거나 제대로 알게 된 내용 등

알아본 정보의 출처

10/21

바람만바람만

대중가요의 제목 및 가사

‘바람[風]’에 ‘만’이라는 조사가 붙은 것을 반복해서 쓴 것으로 생각했음.

“바라보일 만한 정도로 뒤에 멀리 떨어져 따라가는 모양”을 뜻하는 부사였음. (용례) 바람만바람만 뒤따라가다

표준국어대사전

 

평생 어휘 학습장에 들어갈 내용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약간씩 바뀔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향후 자신의 언어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지속적으로 기록해 둠으로써 자신의 어휘능력을 키울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어휘능력 향상에도 기여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꾸준히 기록하면 된다.

평생 어휘 학습장을 통해 각자의 어휘능력을 신장시키는 방법 중 하나는 뜻이 맞는 친구와 함께 각자가 작성한 것을 정기적으로 교환해서 자신이 몰랐던 어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만약 아래 내용에 대해 시원하게 답하기가 어렵다면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고 나만의 평생 어휘 학습장을 오늘부터 써 보기를 권한다.

 

- ‘마각을 드러내다’는 표현에 쓰인 ‘마각’은 다리와 관련이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누구의 다리를 말할까?

- 이온 음료의 용기에 적힌 “이 제품은 스포츠, 일, 목욕으로 땀을 흘렸을 때와 자리끼 등 일상생활에서의 수분 공급에 아주 적합한 음료입니다.”에 쓰인 ‘자리끼’는 뭘 말할까?

- “올해 첫얼음…설악산에 상고대 장관”이라는 제목이 적힌 사진을 보고 ‘상고대’를 찍은 부분이 어디인지 정확히 말할 수 있을까?

- “10년이란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라는 표현에서 ‘주마등’은 달리는 말의 등에 올라타고 달리는 것과 상관이 있는 걸까?

- “해먹 위에 누워 잠을 잤다.”는 표현에서 ‘해먹’은 한자어일까? 고유어일까? 아니면 외래어일까?

 

글의 서두에서 거론한 ‘도발’을 사전에서 찾으면 “도발(挑發)「명사」남을 집적거려 일이 일어나게 함.” 정도로 풀이하고 있다. 이 글의 제목을 ‘평생 어휘 학습장 쓰기 도발’이라고 붙인 이유는 독자들을 부추겨서 평생 어휘 학습장을 쓰는 일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독자 중 어떤 분이 자신이 적은 평생 어휘 학습장을 필자와 공유하고 싶다면 언제든 환영한다. 필자는 평생 어휘 학습장에 기록해 둔 ‘도발’이란 단어를 정기적으로 살펴보는 작업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4살짜리 작은아들 녀석이 몇 년 뒤 “아빠, 도발이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필자의 머릿속 어휘 지식 사전에 있는 ‘도발’이란 단어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아들 녀석과 나누게 될 것이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자식들, 친구들, 제자들과 이러한 경험을 나누시기를…….


윤천탁 (국어교육) 조교수  knuepress@daum.net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천탁 (국어교육) 조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이전홈페이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탑연로 250  |  대표전화: 043) 230-3340  |  Mail to: knuepress@daum.net
발행인: 류희찬  |  주간: 박현선  |  편집국장: 최원호  |  편집실장: 하주현/정규나  |  청소년보호책임자: 최원호
Copyright © 2017 한국교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