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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호] 탈식민주의와 아프리카 소설 : 응구기 와 씨옹고를 중심으로

이석호(카이스트) 대우교수l승인20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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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박경리 문학상의 해외 수상자로 케냐의 작가인 응구기 와 씨옹고가 선정되었다. 응구기는 아프리카의 탈식민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2000년 이후 노벨문학상 후보로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본고는 응구기 문학이 어떤 측면에서 세계문학의 이름에 값하는 성취를 이룩하고 있는지, 또 구미 내부에서 탈식민주의 문학을 생산하는 작가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검토해보려고 한다.

아프리카 문학의 탈식민화와 관련해 응구기의 문학적 여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마케레레 대학에 입학해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읽었던 조셉 콘래드라든가 포스터 등속의 작가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초기 습작 단계에 속한다. 두 번째 단계로는 상기한 작가들의 미학을 기쿠유인(케냐의 주요 부족) 특유의 내러티브로 전유해 형식과 내용 면에서 기존의 것과 전혀 다른 소설을 써내기 시작하는 중기 단계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창작의 매개어인 영어를 폐기하고 자신의 토착어인 기쿠유어로 소설 및 동화 그리고 희곡 등을 쓰기 시작하는 실험적 단계가 마지막 단계에 속한다.

 

영미문학이라는 그릇에 담은 초기 소설들

응구기는 1964년 『울지 말아라, 아이야』라는 첫 소설을 상자하면서 문단에 등장한다. 이 소설은 마우마우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마을은 쑥대밭이 되어가는 와중에 서구식 학교에 다니면서 서구식 교육을 받는 한 식민지 아이의 정신적인 갈등을 그린 자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응구기는 아프리카인의 비극이 근본적으로는 토지의 상실에 있음을 주목한다. ‘토지’는 응구기의 문학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주제이다. 청년 시절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강하게 경도된 바 있는 응구기는 이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마우마우 운동의 본질도 케냐의 농민들이 조상신을 모시고 가족들을 부양할 땅을 상실한데 있음을 지적한다. 응구기는 이 소설에서 ‘기쿠유와 뭄비’라는 창조신화를 동원해 ‘땅의 회복’이 문제의 핵심임을 강조한다.

1965년 응구기는 실제로는『울지 말아라, 아이야』보다 먼저 탈고했지만, 출판은 일 년 늦게 한 『샛강』이라는 소설을 발표한다. 『샛강』은 ‘호니아’라 불리는 생명의 강을 사이에 두고 기독교도가 중심이 된 한 마을과 아프리카 정통 신앙을 숭상하는 다른 마을 사이의 종교적이고 이념적인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응구기는 기독교 교육을 받은 와이야키라는 청년을 통해 기독교와 토착 종교, 다시 말해 근대와 전통 간의 화해를 시도한다. “선교 학교에 가거라. 가서 백인들의 온갖 지혜와 비밀을 배워오너라. 팡가(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나비를 잡을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선교 학교에 다니게 된 와이야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갈등이 깊어진 두 마을을 화해시키려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어이없이 그 갈등의 골에 빠지고 만다. 응구기는 기독교적인 가치에 일방적인 특권을 부여하는 식민지 체제하에서 근대와 전통은 상호 화해가 불가능한 대립쌍임을 분명히 한다.

 

서구 모더니즘을 아프리카의 확장된 리얼리즘으로

두 편의 초기 소설들을 통해 형식과 내용 면에서 유럽 작가들의 그것과 미학적인 변별점을 구축하는데 실패한 응구기는 아프리카인만의 독특한 내러티브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응구기는 이때부터 이른바 역작들을 생산해내기 시작한다.『한 톨의 밀알』이 그중 하나이다. 『한 톨의 밀알』은 1952년부터 1960년까지 계엄령이 공표된 한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룬다. 응구기는 이 소설에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켜 각자의 시선으로 본 사건의 전말을 구술하게 한다. 한 사건은 여러 등장인물들의 구술과 다양한 입장을 통해 다각적으로 교직되면서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숨겨진 사연들을 입체화한다. 응구기는 이 작품에서 콘래드가 즐겨 사용한 복수시점이라는 장치를 아프리카 식으로 전유한다. 다시 말해 “유럽의 모더니즘을 아프리카의 확장된 리얼리즘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핏빛 꽃잎』이라는 작품에서도 계속된다. 이 작품은 응구기의 소설 중 최초로 독립 이후의 케냐를 다룬 것으로 신식민지 케냐에서 벌어지는 부패한 정권 및 자본과 기층 민중들의 싸움을 그린 것이다. 응구기는 이 작품을 통해 “케냐의 민중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이루어낸 독립”이 이후 부패한 엘리트들의 손아귀에 매몰되면서 “진정한 독립이 아닌 깃발만 펄럭이는 독립”이 되었다고 애석해한다.

 

영어를 버리고 기쿠유어로 글을 쓰기 시작하다.

응구기는 『핏빛 꽃잎』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영어로 창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다소 이념적인 이유로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매개’라기보다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집단이 모국어를 잃는 것은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잃는 것이 아니라 그 집단의 ‘존재론적 토대’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보다 방법론적인 이유로 그의 탈식민주의적인 글쓰기와 실천적으로 맞닿아 있다. 응구기는 그를 소위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한 톨의 밀알』이나 『핏빛 꽃잎』 같은 소설들이 진정 그런 상찬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를 반문한다. 실천적인 차원에서 이 소설들이 실존적 한계를 내포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소설들이 영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응구기는 위의 소설들이 영어로 집필되어 많은 수의 서구 독자들을 사로잡긴 했지만, 정작 그가 소설쓰기를 통해 헌정의 대상으로 삼았던 케냐의 기층 민중들은 언어적인 장벽 때문에 그 소설을 감상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이를 계기로 그는 영어라는 매개어를 통해 유입된 서구적 근대의 부정적 유산을 발본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서구의 근대란 과연 무조건적 수용의 대상인지를 진중하게 심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영어라는 제국어를 매개로 이식된 서구의 근대가 기술적 타협내지는 조건부 조율의 대상은 될지언정 무조건적 몰입의 대상은 아님을 분명하게 인식한다. 다시 말해, 영어는 기쿠유어로 쓴 자신의 작품을 대외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을 때 번역이라는 훌륭한 매개를 통해 기능적으로 사용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 생각은 응구기 뿐만 아니라 이후에 출현하는 많은 아프리카 작가들에게 서구의 근대 혹은 근대성에 대해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준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응구기는 과감하게 영어로 창작하는 관행을 버리고 자신의 토착어인 기쿠유어로 복귀하게 된다. 『십자가 위의 악마』와 『마티가리』라는 소설을 비롯해 『결혼하고 싶을 때 결혼할 래요』와 『어머니, 저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세요』등의 희곡이 영어가 아닌 기쿠유어로 쓴 대표적인 저작들이다. 기쿠유어로 쓴 최초의 소설 『십자가 위의 악마』는 응구기가 필화사건으로 인해 수형 생활을 하면서 간수의 눈을 피해 화장지에 기록한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신식민지 케냐의 부패상을 다룬 것으로 알레고리 기법을 쓰고 있다. 응구기는 이 작품에서 ‘악마의 잔치’에 참가해 최고의 도적을 가리는 자리에 일곱 명의 도적들을 우의적으로 등장시켜 케냐 독립 정부의 고위 공무원을 비롯한 정치인, 은행가, 사업가 등이 얼마나 교묘한 방법으로 민중들을 사취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이 작품은 한국문학과 관련해서도 주목을 요한다. 그 이유는 응구기가 이 작품을 집필할 때 김지하의 『오적』과 「비어」를 그 바탕글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는 응구기가 『정신의 탈식민화』라는 책에서 고백한 바이기도 하다.

 

응구기가 남긴 과제

근래에 이루어지고 있는 기쿠유어 소설과 희곡 쓰기를 통해서 응구기가 실천하고 있는 ‘모국어로 창작하기’라는 신념은 표면적으로는 영어라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아프리카 문학내지는 문화운동이 현실적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라는 실험정신의 표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아프리카 문학 혹은 문화판에서 전일한 권력으로 삼투되어 있는 유럽의 근대(성) 혹은 근대정신에 대한 강력한 심문내지는 도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응구기의 성공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비서구 내에서 서구 근대(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와 관련해 발전적인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이석호(카이스트) 대우교수  knuepre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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