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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호] #어디에나_성폭력

하주현 기자l승인201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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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문단_내_성폭력’라는 해시태그로 SNS에서 시인과 소설가들의 만행이 폭로되고 있다. 존경하던 시인에게 시를 배우려 했던 한 습작생은 그로부터 “여자는 남자 맛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시인이 자신을 만나서 스킨십을 하길 원한다는 뜻을 줄곧 내비쳤음을 밝혔다. 다른 이의 추가 고발에 따르면 그는 “침대에서 시를 가르쳐 주겠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떤 유명 소설가는 취미 삼아 여고생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차를 세워두고 몇 시간이고 여고생의 교복과 허벅지를 관찰하며 감탄한단다. 회식 자리에선 자기 소설이 영화화된 작품의 여자 주연에게 “성관계 경험이 있냐”는 질문을 했다며 자랑(?)을 하기도 했다.
문인은 인간의 기쁨, 슬픔, 애통함, 애틋함, 권태, 역겨움, 증오스러움 등 사람의 다양한 감정을 그려낸다. 단조로운 현실에선 포착하지 못했던 가지각색의, 극과 극의 인간을 그려내 세상과 나를 배우게 하는, 일종의 선생이다. 그런 그들이 자신의 미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인간을 재단하고 인격을 살해했다. 매력적인 문체로 자신을 사랑하게 한 뒤 안 보이는 곳에선 인간을 대상화하고 실컷 희롱한 것이다. 비단 문단뿐일까. 문화계, 운동권, 대학, 직장, 가정 등 여성이 존재하는 모든 영역에선 언제나 일어나고 묻어져왔던 일이다.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여성들은 일상적인 성희롱과 성추행, 가벼운 스토킹 그리고 시선강간을 당하며 살아왔다. 여성들은 알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과 언론의 시선이 몇몇 소설가와 시인에게 집중돼있는 지금도 곳곳에선 수많은 여성 인격이 짓밟히고 살해당하고 있음을.
한편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에 용기를 얻은 곳곳의 피해자들은 ‘영화계, 방송계, 교회, 대학, 가족, 스포츠_내_성폭력’ 등으로 해시태그의 이름을 바꾸어 자신의 피해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피해자, 어쩌면 생존자인 이들은 10년 전의 일까지도 자세히 기억해 고발한다. 이미 지난 일이며 한국 사회에선 지극히 만연한 폭력이기에 가해자에게 처벌이 가해질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기어코 기억을 끄집어내 낱낱이 표현해내고야 만다. 그만큼 억울하다는 의미다 이 땅 구석구석에서 행해져온 여성에 대한 폭력과 희롱, 인격 모독을 목격하면서도 적당히 눈감아온 모두는 이 폭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렵게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외침을 정독해야 할 이유다. 그리고 이는 무너진 정의를 다시 쌓아올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람의 존엄은 타인을 짓밟아 얻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껏 누군가는 타인을 울리고 강간하여 얻어진 명예를 누렸고 이제야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려 하고 있다. 앞으론 더 많은 여성들이 행장을 챙겨 서글픈 폭로전에 뛰어들 테다.
지금쯤 자신의 만행도 탄로날까 마음 졸이고 있을 범죄자들이 많겠다. 그러나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평범한 악마가 바로 나고 당신이다. 이젠 부디 일상에서 내뱉는 성차별적, 여성혐오적 발언과 시선을 거두자.


하주현 기자  disney0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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