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7.9.15 금 01:43

[394호] 탈식민주의와 구연(Oral Performance) 문학

이석호(카이스트) 대우교수l승인2016.10.10l수정2016.10.09 16:03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오늘날 유럽 중심의 세계문학을 비판적으로 되받아 쓰는 일과 관련해 가장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는 서사 행위는 단연 구연 문학의 재등장이다. 문자 중심의 유럽문학이 구가하던 헤게모니적 지배에 대항해 구술 중심의 비서구 문학이 저항을 시작한 것이다. 구술 중심의 비서구 문학 중 압권은 아프리카의 구연이다. 동시대 아프리카 지역의 '구연' 연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역인 남부 아프리카는 대체로 ‘남부 아프리카 개발공동체'라는 이름 아래 모인 남아공을 비롯해 짐바브웨, 잠비아, 레소토, 스와질란드, 말라위, 나미비아, 모잠비크, 앙골라, 보츠와나 등 총 14개국을 일컫는다. 과거 영국, 네덜란드, 독일 그리고 포르투갈 등 당대 소위 가장 ’잘 나가던‘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분할, 통치를 당한 나라들이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은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순환해내는 풍부한 구연문화를 자랑한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여느 지역과 비교해보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는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산(일명 부시맨)을 비롯해 코이-코이인들(일명 호텐토트) 그리고 기원 후 약 3세기 경 중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철기를 들고 남하한 반투인들과 17세기 중엽 이후 본격적으로 이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하는 다양한 국적의 백인들이 문화적으로 상호 교차하면서 드러내는 영향 관계의 다양성 때문이다.

본디 구연이란 조상신의 음덕을 기리거나 추장이나 왕 같은 권력자의 치적을 칭송하는 것은 물론 성년식이나 장례식 혹은 결혼식, 아이가 태어날 때, 사냥을 나갈 때, 일을 할 때 등등 일상생활과 긴밀하게 연관된 일을 수행할 때 일종의 음유시인인 ‘임봉기'나 ’그리오' 등이 읊조리는 시 또는 노래와 춤 등을 가미한 연극 등 일체의 공연 양식을 의미한다. 이는 철저하게 ‘문자’나 ‘기록’이 아닌 ‘말’이나 ‘기억’에 의존하는 연희 혹은 공연 양식으로서 남부 아프리카 전역 나아가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의 인류에게 공히 향유된 보편적인 문화 양식이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 활자의 발명 이후 근대 유럽은 자신들의 역사 체계를 정립해가는 과정에서 ‘문자’가 아닌 ‘말’에 기초한 문화를 타자화, 주변부화, 엽기화하기에 이른다. 아프리카처럼 약 3, 4백여 년에 걸쳐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지역의 경우, ‘문자’ 문화에 의한 ‘말’ 문화의 억압 및 왜곡의 정도는 그 강도가 훨씬 심화된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속속 밝혀지고 있듯이, ‘문자’가 ‘말’보다 가치론적으로 우수하다는 판단은 편견에 가깝다. 이는 굳이 스위스의 언어학자인 소쉬르와 러시아의 민담분석가인 프로프 및 야콥슨 그리고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말’에 기초한 구연 문화의 가치를 존재론적으로 복권시키지 않는 한, 좁게는 비서구 문화의 원형질은 물론이고 넓게는 유럽 문화 자체를 포함한 인류 문화의 한 원형을 의미 있게 적출해낼 수가 없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아프리카만큼 구연 문화가 다양한 지역은 드물다. 특히, 고고학과 인류학의 역사를 날마다 새롭게 써야할 만큼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는 그래서 더욱 각별하다.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앙골라의 경우 오빔빈두, 음분두 그리고 아프리카인과 포르투갈인의 혼혈인 물라토 등이 창조한 구연 문화는 그 풍성함의 정도가 여느 민족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과거 베추아나란드로 불리다가 1966년 영국에서 독립한 보츠와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쎄츠와나어로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구술 시는 가히 압권이다. 또한 한 때 바수토란드로 불리다가 보츠와나와 같은 시기 영국에서 독립한 레소토도 쎄수투어를 쓰는 바수토인들이 만든 수많은 구연 문화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그 외에도 말라위의 통가인들, 모잠비크의 야오인들, 나미비아의 부시맨들, 스와질란드의 스와지들, 잠비아의 벰바인들, 짐바브웨의 쇼나인들 및 응데벨레인들 그리고 남아공의 줄루, 코사, 템바인들 등이 만든 구연 문화는 그 내용과 형식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오늘날 남부 아프리카인들이 목적의식적으로 복권시키고 있는 구연은 형태와 내용면에서도 매우 다양하다. 낭송시, 공연, 가요, 집회 등속과의 접목을 통해 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구연 형식의 대중화는 내용면에서도 과거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구술’의 형식으로 집요하게 ‘기억’해내는 것에서부터 백인의 출현이 갖는 의미, 식민주의 및 제국주의가 끼친 폐해 등 정치적인 주제 그리고 일상사의 반경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주제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매우 넓다. 이는 근대 이후 전 방위적으로 진행된 서구화에 대한 아프리카 식 응전이자 응구기의 표현대로 “총체적 탈식민화의 한 방식”이다.

따라서 남부 아프리카를 비롯한 비서구 지역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보다 농밀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 원주민들의 역사의식이 질펀하게 각인되어 있는 구연문화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왜곡과 굴절로 점철된 각 지역의 고대사는 물론이고 근, 현대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백인 식민주의자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억압한 원주민들의 구연문화를 거치지 않고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백인들이 식민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글 문화의 우수성을 노골적으로 상찬하면서 원주민들의 ‘말과 입’을, 스피박 식으로 말하자면, “직, 간접적으로 대변 및 재현”하던 20세기에 이르면 원주민 문화에 대한 왜곡은 극심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에 원주민들은 백인들의 지배적인 문화양식인 시와 연극 등을 합법적으로 차용해 그 속에 불법적인 구연 내용들을 채워 넣음으로써 전통적인 백인들의 글 문화를 전복한다. 남부 아프리카의 경우 이 시기 구연 양식의 전개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원주민들의 구연이 연극과 시, 대중가요 혹은 노동요, 심지어는 소설로까지 접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구연에 대한 탄압이 가장 극심하던 시기에 역설적이게도 구연의 총체적 생활세계화가 진행된 것이다.

이것은 백인들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원주민들의 문화적 저항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시기 시를 접목한 가장 대표적인 구연 형식으로는 짐바브웨의 ‘맘보북’이 있다. 이 책은 백인들의 시 형식을 빌려 쓴 것인데, 시작하는 첫 40여 쪽을 응데벨레인과 쇼나인들의 전통적인 구연인 노동요, 자장가, 사냥가, 연가 그리고 동요 등을 가지고 어떻게 민중들을 의식화시킬 것인가를 소개하고 있다. 앙골라와 모잠비크의 대표적인 구연 시인인 네투, 작신투, 쑤싸 그리고 꾸뚜 등도 서구의 시 형식을 활용해 저항의 내용을 전한다. ‘드럼지’를 중심으로 저항적인 구연시를 썼던 오스왈드 음찰리와 시포 세팜라 같은 남아공의 시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연극을 접목한 가장 대중적인 구연 형식으로는 브레히트의 ‘서사극’ 형태를 모방해 “민중교육”을 표제화한 로버트 맥라렌의 ‘짐바브웨 교육극단’이 유명하다. 이 극단은 아리스토텔레스 류의 서양연극문법을 거부하면서 아프리카 특유의 구연에 기초한 연극을 선보인다. ‘개발연극’이라는 아프리카 특유의 주제를 제창하면서 1970년에 창단한 잠비아의 ‘차크와케’ 극단도 주목을 요한다. 이 극단은 대사 위주의 서양연극을 배제하고 ‘프웸바 춤’이라는 선동적인 춤에 국외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쇼나어로 구연을 하는 극단이다. 스티브 비코의 ‘흑인의식운동’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남아공의 ‘빈민촌 연극’과 ‘흑인 연극’도 구연을 지배적으로 활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로토프스키의 ‘가난한 연극’과 피터 부룩의 ‘빈 공간’ 그리고 아구스또 보알의 ‘피억압자의 연극론’을 노골적으로 아프리카화한 남아공의 이들 원주민 극단들은 대서양 헌장의 의미를 유린한 스멋과 말란 정권을 비판하는 ‘자유헌장’을 극 중에 선언하는가하면, 동시에 당시 관계가 소원하던 ‘아프리카 민족회의’와 ‘범아프리카 회의’의 단결을 촉구하는 공연을 벌이기도 하는 등 극의 정치화 나아가 대중화를 꾀한다.

이처럼 남부 아프리카의 구연문화는 그 형태와 내용면에서 매우 다종다기하다. 더욱이 공들여 발굴을 해야만 되살아나는 화석화된 전통이 아니라 일상사의 구석구석에 편재해 있어 언제든지 “상용이 가능한 과거”이다. 레이몬드 윌리암스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살아남은 과거”인 셈이다. 이처럼 “언제든지 상용이 가능한” 남부 아프리카의 “과거”와 그것을 가장 원형적인 형식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 지역의 구연문화가 이 지역의 생활사 및 문화사 나아가 역사 일반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배제되어 왔던 이유는 좁게는 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식민지 본국의 유럽중심주의적인 사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그런 유럽중심주의 사관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보다 보편적인 정서, 즉 서구의 근대성이 지닌 원천적인 모순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의 근대성과 끊임없이 길항하면서 자신의 역사를 내면화한 이 지역 원주민들의 구연에 관심을 쏟는 일은 현행 아프리카를 비롯한 주변부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역사 다시 쓰기’ 운동을 집행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이석호(카이스트) 대우교수  knuepress@daum.net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석호(카이스트) 대우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이전홈페이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탑연로 250  |  대표전화: 043) 230-3340  |  Mail to: knuepress@daum.net
발행인: 류희찬  |  주간: 박현선  |  편집국장: 최원호  |  편집실장: 하주현/정규나  |  청소년보호책임자: 최원호
Copyright © 2017 한국교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