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7.12.7 목 16:59

[392호] 비극을 비추어내는 사람들

편집장l승인2016.09.12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방학이었다. 많은 일이 일어났다. 1930년 항일 운동가들이 머무르고 박완서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역사의 현장, 옥바라지 골목이 재개발이라는 차가운 자본의 논리에 맥없이 부서져 내렸다. 삶의 현장을 잃기 전 그곳 상인들은 악을 쓰며 포클레인과 용역을 막았지만 돌아온 것은 주먹질이었다. 돈 앞에 짓뭉개지는 인간의 모습이 낯익어 1년 전 한 매체에서 다룬 동자동 쪽방촌 기사를 다시 읽었다. 쪽방촌의 한 칸짜리 계단에서 넘어져 절명한 61세 노인. 15년 동안 행방을 몰랐던 아버지를 그때서야 찾게 된 딸들은 오열했고, 쪽방촌 옆방 노인들은 울어주는 딸이 있어 다행이라 했다. 취업을 위해 홀로 상경한 28살 대학생은 집에서 홀로 죽어 한 달 뒤 집주인의 신고로 발견됐다. 비용이 부담돼 누군가를 마음 편히 만나지도, 먹고 싶은 걸 편히 먹지도 못했을 그는 그렇게 몇 달을 홀로 버텼지만 죽음으로부턴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비극은 이 순간에도 자꾸만 그 횟수를 갱신하고 있다. 애써 모른 척 해왔던 사람들의 생활상과 죽음이 이따금 뉴스로, 기사로 눈앞에 나타날 땐 뜨끔하다. 속 편하게 살고 싶어 그렇게 아픈 일은 세상에 없다며, 있어도 아주 예외적인 경우일 거라며 억지로 걸었던 주문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비극이 그나마 비극으로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아픔을 비춰내고 공감받기 위한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정비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질곡이 서린 골목을 무너뜨리는 것, 가난한 노인과 청년은 홀로 방에서 죽어가는 것이 정상이 아님을 인식하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누군가 굶어죽고, 맞아죽는 것이 적어도 당연한 일이 아닌 세상을 살 수 있다.

자신이 겪는 비극을 비극으로 인정받기 위한 사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80여 년 동안 자기의 신념을 얘기해왔다. 7년을 감옥에 가둬두어도, 살인적인 구타로 사망하는 동지가 있어도 멈추지 않았다. 국회 앞에서 이라크 파병을 규탄하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존중하며 대체복무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는 모습. 그러다 결국 관경에 끌려 내려가는 모습. 과거 그들 투쟁의 기록을 글로, 사진으로 접하니 울컥했다. 한구석에서 평화를 그려냈던 당신들 덕에 우리사회는 강제 병역의 폭력성을 돌아볼 수 있었고, 이제는 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라는 판결을 내고 있다. 여성혐오를 철폐하기 위해 지금 악을 지르는 이들 역시 같은 마음이다. 남성의 시선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채우고, 일평생 여성성에 부합하기 위해 충실한 딸, 아내, 엄마가 되곤 했던 여성의 서사가 비극이었음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울고 화내고 싸워준 덕에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받은 우리다. 당장에 큰 변화가 나타나진 않겠지만 각자가 서있는 자리에서 바른 말을 한 마디 하는 것만으로도 잘못된 세계엔 균열이 시작된다. 계속 싸워나간다면 몇 십 년 뒤엔 가난한 노인과 청년, 이웃의 여성들, 소수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보다 나은 세상에 살 것이다. 당신들과 함께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가고 싶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우리는 이 이지러진 세계를 바꾸어낼 수 있다.


편집장  knuepress@daum.net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장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이전홈페이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탑연로 250  |  대표전화: 043) 230-3340  |  Mail to: knuepress@daum.net
발행인: 류희찬  |  주간: 박현선  |  편집국장: 최원호  |  편집실장: 하주현/정규나  |  청소년보호책임자: 최원호
Copyright © 2017 한국교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