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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호] 쪽방촌 주민, 그 삶의 주소

박은송, 이민아 기자l승인2016.05.23l수정2016.06.2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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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 2012.6.8.][법률 제10784호, 2011.6.7 제정]
제1장 총칙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노숙인 등”이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 중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가.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나. 노숙인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다.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 등’이라는 단어로 함축하기에 노숙인과 쪽방생활인들의 삶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이번 기획에서는 돌아갈 가정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묵 묵히 돕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시하고 있는 노숙인에 관한 정의 중 ‘다. 상당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 하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대전역 주변의 쪽방촌이다. 대전 쪽방촌에서 가장 먼저 만난 분은 ‘대전 쪽방상담소’의 조부활 소장님이다.
쪽방촌 주민, 그 삶의 주소
1. ‘쪽방’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전통적으로 쪽방의 개념은 무허가 임대업으 로 운영되는, 한두평 남짓의 화장실, 부엌, 샤워 실 등 부대시설이 없는 주거공간이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주거로 적절하지 않은 곳, 즉 비정형 주거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다중이용업소인 피 시방, 기원, 만화방, 찜질방 등이 포함된다. 정부 는 주택법에 1인 최소주거기준으로 46제곱미터 를 제시해 두었으며 유도기준으로 33제곱미터 까지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 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공간의 크기만으로 쪽방 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사회심리적 쪽방생활’이 라고 이 공간 보다 넓은 곳에 살고 있어도 쪽방 생활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또 거리에 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쪽방에서 생활하는 사람 들의 경계도 모호한데 과거 통계에 따르면 쪽방 생활인의 40%는 늘 거리와 쪽방을 오간다고 한 다. 이 때문에 쪽방생활인을 경계노숙인이라고 칭하기도 하며 그들의 삶을 ‘뚜껑이 있는 노숙’, ‘ 지붕 있는 노숙’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과거 쪽방이라고 하는 곳이 처음 발견되었던 것은 97년 IMF 때였다. 대규모 실업사태 이후 실직자들을 대상으로 초기 상담을 진행하다 보 니 그들이 자신들의 거주지를 ‘쪽방’으로 칭한다 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쪽방촌은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중심으로 경 부선 지역의 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이곳 이외의 장소에 쪽방상담소가 위치한 곳은 인천 이 유일하지만 이 외에도 수많은 곳에 아직까지 쪽방이 숨겨져 있다.
2. 대전쪽방촌은 어떤 곳인가? 쪽방은 주거밀집지역이라면 어떤 곳이든 숨 겨져 있고 그 대표적인 예가 서울과 대전이다. 여기 대전역 인근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텍사 스촌이라고 해서 성매매가 성행했던 곳이다. 아 직까지 생계형 성매매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 전보다는 많이 줄어 과거에 사용되었던 반들이 쪽방화된 것이 지금의 대전쪽방촌이다. 쪽방의 정의에 따라 엄밀히 구분하자면 500가구, 저희 가 사례관리하고 있는 곳을 다 합치면 총 600가 구 정도가 이곳에 살고 있다.
3. 대전쪽방촌의 거주민은 어떤 사람들인가? 대부분 4,50대의 남성이다. 여성 노숙인이나 쪽방생활인은 굉장히 적은데 그 이유는 우리나 라의 문화 자체가 남자보다는 여성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 숨겨지고 그들 스스로도 숨으 려고 하기 때문이다. 간혹 가다 보면 30대의 청 년들도 있지만 서울보다 그 수는 훨씬 적은 편 이다. 지역마다 쪽방촌 내에 기초생활수급자가 차 지하는 비율은 다른데 대구는 50%인데 반해 대 전은 70%이상 80%가까이가 근로능력이 없다 고 판정된 사람들로 꽤 많은 편이다. 많지 않지 만 일을 하는 분들도 계신데 이마저도 폐지나 고 물을 수거해서 파는 일에 종사한다. 기초생활수 급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근로활동으로 소 득이 생기면 생계비를 받지 못하거나 액수가 깎 이기 때문에 공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은 기사 중에 도심의 고물상들을 비위생적이며 범죄의 온상으로 취
급하여 도시외곽지역으로 옮기게 한다는 내용 이 있었는데 이들에게서 그 일마저 빼앗아버리 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생각한다.
4. 대전쪽방상담소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가? 쪽방촌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진행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노숙예방’, ‘주거상향’이 쪽방상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것 같다. ‘노숙 예방’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최 소한의 주거라도 유지할 수 있게 힘을 보태는 것 인데 몸이 안좋거나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월세를 지불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게끔 해 야 한다. 아직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선시하는 일이다. ‘주거상향’은 쪽방상담소의 가장 큰 업 무들 중 하나이다. LH, 국토교통부 그리고 보건 복지부가 함께 만든 주거상향 프로그램은 주거 취약계층에게 제공하는 주택지원사업이다. 1인 가구의 경우 원룸을 시중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 는 가격으로 공급하고 보증금을 절감해주는 등 주거환경을 다른 곳으로 옮겨 쪽방생활인들의 생활을 개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쪽방생활인들의 대부분은 혼자 생활하며 아 주 작은 방이 따닥따닥 붙어있음에도 서로에 대 한 친밀감이 형성되지 않은 채 생활한다. 그들이 다른 사람과 관계 맺거나 의사소통하는 데에 어 려움을 겪는 데에는 그들의 사회화 과정, 사회에 서 쪽방까지 오게 된 과정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삭막한 생활을 조금이라고 개선 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문화프로그램도 진행하 고 있다. 이번에는 여주로 다함께 여행을 다녀오 기도 했고 음악치료, 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프로 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신청제 로 진행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참여율이 매우 저조하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쪽방사람 들끼리 소통하고 마음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데 실제로 그러기가 쉽지 않아 안타깝다. 이외에도 주간에는 매일 대전역 앞에서 이곳,
쪽방상담소에서 직접 조리를 한 음식을 무료급 식하고 있다. 또 초·중·고등학교의 급식소에서 는 매 끼니마다 120%에 해당하는 음식을 만드 는데 학생들이 급식을 하고 남은 음식을 받아 나 눠드리기도 한다. 영양이나 위생상 여러 문제가 우려되기도 하지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는 음식은 기본사항이다 보니 부족 함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진행하고 있다.
5. 특별히 기억에 남는 대전쪽방촌의 주민이 있 는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다. 안타까운 경우 로는 돌아가셨는데도 혼자 생활하시던 탓에 오 랫동안 발견하지 못한 분도 있고, 병원에서 쫓겨 나 응급실 옆에서 돌아가신 분도 있다. 환자라면 돈의 유무는 제쳐두고 먼저 치료하고 생명을 구 해야하는 것이 맞지만 병원은 하나의 거대한 기 업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들의 수익을 우선시하 다보니 이런 비극이 일어났던 것 같다. 기뻤던 일로는 자활시설에서 생활하시던 한 분이 아내 와 자식의 도움으로 그 곳을 나와 가정통합을 이 루었던 것이 있다. 한 사람이 사회복귀하기 위해 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 가장 기쁘고 힘이 되는 것 같다.
6. 쪽방상담소에서 소장으로 활동하시면서 아 쉬웠던 점이나 개선시켜야 할 점이 있다면 무 엇인가? 현재 대전쪽방상담소에는 총 69가구가 주거 상향을 해서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주거상향 이 된 주민은 쪽방상담소의 관리 대상에서 지 워진다는 것이 아쉽다. 물리적인 의미의 쪽방에 서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쪽방생활 인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주거 환경이 변해 도 그들이 쪽방에서 생활하던 생활양식은 변하 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전체를 다 관리하고 있는데 공공기관의 처리가 개입될 때 에는 이들은 혜택받기가 어렵다. 관련법이 시행 된 지 올해가 4년째이다. 하지만 개정해야할 부 분도 많고 누락되거나 잘못된 내용도 많다. 지 금 국회의원과 함께하는 정책토론회도 준비하 고 있지만 당장 법이 허술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노인, 아동, 장애인 등은 생물학 적인 이유로 사회적소외계층에 속한다. 하지만 노숙인과 쪽방생활인은 다른 문제다. 부익부 빈 익빈 현상이 노숙인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다.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노숙인은 양산하고 있 다. 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가난을 탈피했다 고 생각했다. 50년대 전쟁 이후 80년대 3대호황 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꾸준히, 많이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 오히려 과거보다 빈곤률이 높다. 국 가 전체의 부가 늘어난다고 해서 빈곤의 문제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의 독점으로 심 화되기 마련이다. 독점된 부를 나눠줘야 하고 구 매력을 나눠줘야 한다. 청년수당처럼 모든 국민 들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 을 정도의 기본소득제도를 제공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과거부터 그랬듯,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실천 적인 정책이나 법으로 사회를 이끌어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복지국
가라고 하는 북유럽의 나라들에도 노숙인은 여 전히 존재한다. 가난의 문제는 정부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것 보다 사 회의 분위기가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생각한다. 경쟁이 중심에 서있는 지금 우리 사회 전체는 신 뢰, 배려, 도움이 결핍되어있다. 정치인, 언론인 들은 언제나 혹한기, 혹서기에 우리를 찾아온다. 그 때면 인터뷰하는 것이 일상이 될 정도다. 평 소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함께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 도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이들이 가난에서 탈 피하지 못하는 이유가 노력의 부족에 있다고 보 는 시선은 한 사람을 문제로 삼기 위한 도구로밖 에 보이지 않는다. 한 집단 이 있으면 꼭 그 중 더 부지런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법 이다. 이런 식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더 중요한 건 사람들마다의 편차가 있지만 모두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끔 하는 사회보장체제, 안전 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7.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 는가? 상담소 밖에서 만나는 쪽방생활인들은 정말 동네아저씨와 다름없이 느껴진다. 이들도 사람 들이 그들에 대한 편향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 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런 사회적 낙인을 당연 히 싫어한다. 치료적 관점에서 사람들을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사회에서 계속 실패하다보면 열패감에 빠지게 되고, 열패감에 빠지면 마음에 상처가 들고, 상처가 깊어지면 병이된다. 평소 에 이들에게 관심가지고 감싸줄 수 있었으면 좋 겠다.
취재가 끝나고 보건복지부에 전화를 걸어 쪽 방생활인이나 노숙자를 위해 어떤 복지제도가 있는지 여쭤봤다. 하지만 따로 마련되어 있는 지 원책은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노인, 여성, 장애인보다 많은 주목과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 했지만 이들은 분명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 중 하 나이다. ‘빈곤’이라는 문제와 가장 밀접히 관련 된 그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그의 인생을 들어보았다 거주자 임강옥 씨 인터뷰
나는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셔서 나름 부유 한 환경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중앙대학 교 경제학과를 졸업 하고 미국 부역회사에 들어 갔다. 회사 내에서 학벌로 파벌이 나뉘어져 일명 SKY로 불리는 대학과 차별을 받았다. 업무내용 에 대해 트집을 잡고 인격적으로 교모하게 모독 을 주고 괴롭혀 많이 힘들었다. 이에 사표를 내 고 토목공사 전문업체인 삼보토건에 입사하게 됐다. 하지만 삶은 녹록치 않았다. 산업 현장에 서 적자를 보게 되면서 팀장과 과장 모두 대기 발령을 받게 되면서 나도 대기발령을 받게 됐다. 3개월 안에 원내 복귀가 되지 않으면 퇴직금을 70%밖에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대기발령을 받았다는 말을 차마 집에 하지 못해서 아들과 아 내 몰래 가지고 있던 삼보토건의 주식을 조금씩 팔아 월급으로 줬었다. 결국 회사에서 나오게 됐 고, 재취업이 빨리 될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마저 안돼서 힘들었다. 매달 거짓말을 하면서 남대문 지하 시장을 전전하며 혼자 끙끙 앓았다. 그러다 시간이 좀 흘러 호남 정유에 들어가 대천영업소 장으로 지냈다. 자부심이 많은 동네 텃새로 지역 주민과 갈등이 생겨 그만두고 1년을 쉬었다. 그 이후에는 철근을 배워서 사업을 했다. 내가 불안 하다보니 아내는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 다. 책을 보면서 처음부터 배워 서울에 가서 공 사를 땄다. 그 이후에 청주, 원주, 삼청동 공사도 따면서 판이 커지게 됐다. 점점 욕심이 나기 시 작했던 것이지. 후에 제주도 공사를 맡게 됐는데 직원들 관리가 되지 않았다. 출장비는 계속 나가 고 직원들은 제주도에 들어가 다시 돌아오지 않 는 경우도 있어  결국 공사를 포기했었다. 대충
계산해보니 2000만 원 정도를 손해 봤었다. 그 래도 차곡차곡 돈을 모아 제재소를 사고 사업이 잘 풀렸다. 그러다 1997년 IMF가 터지면서 돈이 수금이 안 되고 적자가 나면서 결국 부도가 났 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그때 당시 저녁마다 잠도 못 자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결국 97년 5 월, 1심에서 징역 실형 8개월을 선고받았다. 당 자수표를 발행하면 사기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 기 때문에 2심에서 판사가 “피고인은 사기가 없 기 때문에 법정 구속을 하지 않는다. 3개월 이내 에 3000만 원의 빚잔치를 해라”고 말했다. 빚잔 치는 부도나 파산 따위로 빚을 갚을 능력이 없 을 때, 돈을 받을 사람에게 남아 있는 재산을 빚 돈 대신 내놓고 빚을 청산하는 일이다. 그때 당 시 아내는 가지고 있던 집마저 뺏길 까봐 반대 를 했다. 아내를 설득했지만 계속 아내는 불안해 했다. 결국 아내가 나한테 이혼 소송을 제기했 다. 아내가 나에게 말도 안 되는 사기·폭행 혐의 로 소송을 제기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심 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빚을 1억 이하로 떨어뜨 리면 실형을 받지 않고 집행유예로 풀려나지만 아내도 협조 하지 않으면서 결국 교도소에 241 일 정도 들어갔다 나왔다. 출소하는 날 아침, 아 내를 수소문해 찾아갔었는데 아내가 많이 놀라
고 겁을 먹었다. 아내가 미안하다고 얘기를 하는 데 나는 아내에게 이상한 절도죄·사기·상습 도 박 등 7가지를 죄 없는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아니라는 말만 하고 헤어졌다. 그 후 강원 도 공사를 따내 진행했지만 인부 중 한 명이 떨 어져 죽으면서 그것마저 그만두게 됐다. 그 이후
에는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었다. 그 이후에는 여 관방을 전전하며 자꾸 과거 생각이 나고 힘들어 술에 취해 살았다. 하지만 술을 끊고 아는 분과 노숙인 지원센터를 만들고 이곳에 정착해 살고 있다. 허상과 쓸데없는 망상에 사로잡혀 하루하 루를 보내지 않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박은송, 이민아 기자  parkeun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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