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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호] 더 큰 목소리로 말하라

편집장l승인2016.05.23l수정2016.05.2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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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부근 공동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당했다. 범인은 칼을 품은 채 1시간동안 화장실 칸에 숨어 죽일 대상을 기다렸고, 화장실에 들어 온 여섯 명의 남자를 그냥 보낸 뒤 표적이 된 여성이 나타나자 어깨와 가슴을 찔러 죽였다.
피의자는 ‘여성이 자신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이후 강남역엔 ‘여자라서 죽었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며 범행 대상에서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느낀 여성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이들은 공포를 느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지금껏 겪었던 여성혐오(misogyny)의 경험을 풀어냈다. 이어 “남은 세상을 우리가 바꾸겠다”고 피해 여성에게 약속하는 동시에 그 변화에 남성의 동참이 필수적임을 알리고 연대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이 마냥 순탄하진 않다. 피의자가 밝혔듯 이미 ‘여성혐오’가 범행의 이유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22일 경찰은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닌 '정신질환 묻지마 범죄”라 명하며,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문제제기하는 목소리를 개인적인 문제 안에 가두려 하고 있다. 언론 역시 범행 직후 “여자가 무시, 목사 꿈꾸던 신학생 묻지마 범행”라는 제목으로 살인마의 꿈을 들먹이며 그의 변호를 자처한 바 있다. 이어 여성혐오의 경험을 말하는 것을 두고 ‘사회구조로 인한 피해를 남성의 탓으로 돌리는 짓’이며 ‘남녀 갈등을 조장하고 여성만의 정의를 휘두르는 일’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상항에서 피해자들은, 즉 여성들은 다시 한 번 겁을 먹게 된다. 피해경험을 용기내어 고백해도 공감 대신 욕을 먹는다니. 구조적 가해자인 남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그들의 요구대로,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온건한 태도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관해야 할까?
지난겨울 만난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유가족 한 분이 원망에 찬 눈빛으로 하신 말씀이 있다. “배를 안 올리고 있잖아요. 근데 왜 아무 말도 안 하세요?” “‘결국 정부는 인양 안할 거야, 숨길거야’ 하지 말고 힘을 보태주세요” 세월호 희생자를 친구로 둔 고등학생도 말했다. “어찌되었건 살아남은 당신들이, 우리를 이해한다는 당신들이 원망스러워요”

왜 돕지 않느냐고 탓하는, 당신들을 원망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피해자는 그 순간부터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그에게 가해지던 억압과 폭력이 일순간 사라진다는 게 아니라, 드디어 자신의 분노를 감추지 않고 온전한 ‘피해자’로서 설 수 있다는 의미다.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할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피해자 주제에 ‘뻔뻔하게’ 자신을 나쁘다 했다며 “돕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이에겐 미련을 두지 말자. 피해자의 태도를 감시하며 ‘불순’해졌을 땐 이때다 하고 등을 돌려버리는, 애초에 도울 마음조차 없는 위선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상의 여성들이여 내 편이 적어진다는 걱정 말고 더욱 크게 목소리를 내자. 약자가 큰 소리를 쳐도 들어주는 이가 있는 세상이 옳은 세상이다.

여성, 남성,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모두가 피해자인 이곳에서, 개개인은 자신의 피해 경험에 몰입돼 타인의 넋두리를 곱게 듣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또 다른 나인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해결을 시작하려는 태도가 절실하다. 한국의 여성과 여성운동은 살인자의 칼끝 앞에서 지금 당신의 연대를 요청하고 있다.


편집장  knue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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