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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청람문학상 소설 당선작 - 이상현, '부초의 꿈'

한국교원대신문l승인2016.02.22l수정2016.02.2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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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초의 꿈

이상현(국어교육·10)

 

병실에 누워 있는 누나는 웅크린 고양이 같았다. 열려 있는 창문에서는 꽤 찬바람이 들어치고 있었는데도 누나는 눈썹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누나가 살아있다는 증거는 목 언저리에 뛰고 있는 대동맥의 맥박 뿐이었다.

어쩌면 춥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창문을 닫았다. 병원에서는 누나가 식물인간이라고 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황당했고,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병원에 뛰어들어와 누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사람이 멈춰있는, 모든게 멈춰있는 그 모습에 숨이 막혔다. 정물화로 찍어놓은 양 멈춰있는 누나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는데도 누나는 그 모습으로 각인되어졌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일종의 강제였다.

 

민낯을 드러낸 누나의 얼굴엔 나이를 셈한 것보다 조금 많은 결이 새겨져 있었다. 젊었을 땐 참 예뻤는데, 누나는 점점 매력없는 여자가 되어갔다. 나이가 들어서라기에는 누나는 아직 젊었었다. 표정이 죽어서 생기가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누나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그리고 신은 왜 누나의 선택을 용서하지 않은 것일까. 그러니까 누나는 왜. 죽기로 결심한 것일까.

 

복도에서 병원식 수레를 운반하는 소리가 들렸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누나의 병실에는 점심이 배달되지 않았다. 식물인간인 누나는 음식을 씹어 삼킬 수가 없기 때문에 혈관 여러 군데에 호스를 꽂아 영양을 공급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누나는 언제나 밥을 먹고 있었고, 또 언제나 밥을 안 먹고 있기도 했다. 나는 침대 옆의 조그만 냉장고에서 밥과 몇가지 밑반찬을 꺼내 간이 식탁에 올려놓고 식사를 시작했다.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었다.

그 때 누군가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였다.

 

 

1. 아버지의 경우

 

"누나는 잘 있냐?"

아버지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잘 있냐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러니까 아버지는 식물인간이 된 상태에서 누나가 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전제를 너무 쉽게 그리고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머리 속에서 누나는 이미 완전히 식물인간이었다. 누나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전제를 누구보다 빨리 받아들인 사람. 그 사람이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가 환멸스러웠다. 아버지의 손에는 병원 앞 반찬가게에서 사온 명란 젓갈이 들려 있었다. 누나가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누나는 먹지도 못할 그 음식을 대체 무엇 때문에 사온 것인지. 나는 식욕이 돌지 않았다.

 

아버지는 받아들인 전제가 많았던 만큼 누나와 내게 강요한 전제도 많았다. 누나는 그 전제에 별 말을 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누나가 남자인 나보다 아버지를 더 닮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나는 누나와는 달랐다. 나는 내가 전제하지 않은 사실은 모두 우연한 사건, 이상 기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결국 아버지는 내게 네 누나만큼만 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심지어 나이 먹고 잡지사의 전문기자로 그럭저럭 돈도 벌고 있는 내게 아버지는 대체 언제까지 백수 생활을 계속할 거냐며 다그친 적도 있었다.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침울해 있던 날에 언젠가 누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내게 말했었다.

"너무 풀 죽어 있지 마, 나는 가끔은 네가 부럽기도 해. 그래도 나는 그럴 용기를 내는 것보다 그냥 사는 게 더 편하더라."

 

"밥 안먹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아버지의 말이었다.

그 말에 나는 명란젓을 집어 밥 위에 얹어놓고 수저를 들었다. 명란 젓의 부드러운 짠내가 혀 끝으로 느껴졌다. 그때였다.

"그렇게 병원 생활을 하고 싶어 하더니, 평생 병원에서 살게 되었구나. 니 누나는."

나는 순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기억 안나냐? 니 누나 학생 때 그렇게 의사가 되겠다고 고집을 피웠었잖아." 아버지가 덧붙였다.

그 말에 어렴풋이 누나의 고교시절을 떠올려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막지 않고 계속 듣기로 했다.

"니 누나가 한 번도 내 말을 거스른 적이 없었는데, 그 때는 그럴 거면 아예 대학을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어. 제 점수가 안나와서 의과 대학을 못가게 되었는데 그 애가 재수를 한다고 했었거든. 그런데 그 때 우리집 사정이 애 재수시켜줄 만큼은 안되었지 않느냐. 나는 그때 외려 네 누나가 의과대학을 못 가게 된 게 다행이라고까지 생각이 들었었어. 그 돈 도저히 낼 엄두가 안 났거든 뭐 막상 그 대학에 니 누나가 덜컥 합격을 했으면 어쩔지 또 모르지만.."

 

"누나가 의사가 되고 싶어했었나? "의아해진 나는 아버지의 말이 끝나고 물었다.

"응." 아버지의 힘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누나 교사 하고싶어서 한 거 아니었어?"내가 덧붙였다.

"처음에는 아니었지, 설득한거야. 여자한텐 교사도 좋은 직업이잖느냐. 처음 그 말을 했을 때는 아까 말했듯이, 니 누나가 재수해서 의과대학 가는 거 아니면 아예 대학을 안 가겠다고 쏘아붙이더구나."

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안그러던 애가 그러니 더 화가 나서 니 누나를 한 대 후려쳤었다. 그때 너처럼 욕도 하고 못살겠다 하며 뛰쳐나가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 애는 지가 맞았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멀뚱멀뚱 큰 눈으로 땅만 꺼질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너무 미안해져서. 그냥 부엌에서 먼저 나가버렸다. 나중에 니 엄마한테 애한테 잘 말하라고 하고 그냥 넘겨버렸는데, 얘 이렇게 되고 나서 그게 제일 미안하더구나."

아버지는 젓가락에 명란 젓을 든채로 대답했다.

"다 내 잘못이지. 그래도 그 때 니 누나가 생물 교육인지 뭔지 나중에 하겠다고 했을 때는 얘가 제 나름대로 제 삶을 받아들였구나 싶었지."

"아버지도 참, 누나가 지금 몇 살인 데 고등학생 때 일을 가지고 그러세요. " 연세에 맞지 않게 울먹거리며 말하려는 아버지를 두고 나는 황망해져서 어르듯이 대답했다.

"그래도 때린 건 좀 그렇네. 아버지 손이 그 때 얼마나 매웠는데." 나는 덧붙였다.

"그러게 말이다. 그게 참 미안해. 니 누나 혹시라도 깨어나게 되면 니가 좀 전해주어라. 뭐 걱정했느니 뭐니 덧붙이지 말고, 그냥 내가 잘못했다고, 미안했다고 전해 주어. 나는 말 못하겠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명란을 씹었다. 이게 아버지 방식이었다. 전제를 강요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개는 폭력으로 점철되는 조치를 취하고, 그리고는 명란 젓을 사다주는 옛날 식이었다. 하지만어쩌면 누나는 아버지가 사다주는 명란 젓을 먹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는 뛰쳐나가는 사람이었으니까. 만약 그렇다면? 어쩌면 겉으로 기록된 우리 가족의 역사와는 달리 누나가 나보다 아버지를 더 미워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워한 만큼 아버지를 사랑했고, 나중에는 사랑만이 남고 미움은 잊혀졌다. 그러나 누나는 나보다 덜 미워했을 아버지를 동시에 덜 사랑했을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누나에게 남은 아버지는 어떤 모습일까? 아버지는 어쩌면 어렴풋이 그걸 미안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잘 할거라고 믿는 신뢰만큼, 맏이의 공간에 사랑을 밀어넣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맏이에게 의례 범하게 되는 부모의 실수였다. 누나는 조용한 사람이었지만 조용한 사람이 으레 그렇듯이 착해보이지가 않았다. 누나는 오히려 우울해보였다.

신뢰는 나이들고 받아야 덕목이 된다. 참는 법을 배우기 전에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진짜로 참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누나에게 그 신뢰는 부담이었을까?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었던 족쇄처럼 느껴진 것일까? 그렇지만 원래 삶이라는 게 모두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평하게 나눠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삶은 어떤 것은 많이 주고 어떤 것은 부족하게 준다. 그러면 그걸 사람들은 사고 판다. 그래서 삶은 거래다. 거래라는 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부족하게 살 수밖에 없다. 그게 운명의 실체다.

다시 질문이 떠오른다. 누나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2. 남편의 경우, 그리고 엄마의 경우

 

"당신이 어디라고 여기를 와!"나는 소리질렀다.

"얘, 왜그래. 그래도 사위 덕분에 여기서 이렇게 니 누나 편히 있는거야. 그만 해." 엄마는 화들짝 놀라더니 일어서서 병실 앞에 서 있는 나를 끌고는 문 밖으로 나가며 내게 조곤조곤 말했다.

조곤조곤 말한다고는 했지만, 사위 마음 상하게 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들어 주기를 바라는 애매한 목소리였다.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혼나러 가는 어린아이처럼 끌려나갔다. 엄마는 나를 병원 밖 등나무 벤치까지 끌고 갔다. 초겨울이라서인지 바람이 찼다. 나는 담배를 꺼내 피웠다. 그리고는 쏘아붙이듯 엄마에게 말했다.

 

"그자식 오지 말라 그래."

"형부한테 그자식이 뭐야 이것아." 엄마가 혀를 끌끌차며 대답했다.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요." 나는 중학생처럼 빈정대고는 담배를 길게 내뿜었다.

"너야말로 뭘 안다고 그러냐."엄마가 대답했다. 차갑고 엄한 목소리였다.

"그 인간 바람폈어요. 그거 때문에 누나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엄마가 알아? 누나 이렇게 되기 한달 전만 해도 나한테 전화해서 너는 나중에 그러지 말라면서 울었는데, 나는 누나 지금 이렇게 된 것도 하나같이 다 그 인간 때문인 것만 같아서..." 나는 말을 하다 말고 등나무 아래에 구르는 마른 낙엽을 발로 부스러뜨렸다. 엄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여튼 그 자식 오지 말라 그래." 나는 휴지통에 담배를 퉁겨 버리면서 엄마에게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그걸 모르고 이러는 것 같니?" 엄마의 말이었다.

"결혼도 안해본 게 부부에 대해서 뭘 안다고 나서니. 너 혹여라도 그런 생각 다신 하지 마라. 네 아빠는 안 그랬을 것 같아? 다들 그런 일 한두어번 씩 있는거야. 그게 무어 큰 일이라고. 너도 결혼하면 네가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 못한다."

"아빠도 그런 적이 있다고? 내가 대뜸 묻자 엄마는 한숨을 푹 쉬더니 얘기했다.

"그래 한 번인 것도 아니다. 그건 됐고, 너 다신 그런 생각 하지 말거라. 둘 사이에 애도 없고, 그러면 남자가 그런 실수 할 수도 있는거야."

애도 없고, 라는 말에 나는 확 화가 치밀어올랐다.

"애 안생기는게 누나 잘못이야? 누나가 그놈 애 낳아줄려고 결혼한거야? 그리고 그 놈이 모자란 건지 또 뭘 어떻게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해. 엄마는 누나가 불쌍하지도 않아?"

엄마는 나를 한번 쓰윽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누나 잘못 맞다. 하도 애가 안생겨서 나 자궁 혹 수술할 때 네 누나도 같이 진단 받았는데 불임이라고 의사 선생이 그랬어. 나중에 지가 다른 산부인과에서도 검진 받았는데 다른 데서도 다 똑같은 말이라고 저번에 니 누나가 말해주었고. 대체 너야말로 아는 게 뭐가 있다고 그렇게 나서는거냐."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어쨌든 그게 누나 잘못은 아닌거지. 엄마는 누나한테 왜 그래."

"니 누나 마음을 아니까 이러는거지. 애를 못 낳는다는게 여자로서, 아니 아내로서 얼마나 죄스럽게 느껴지는지 네가 어떻게 알 수 있겠냐.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여잔 여자야. 그건 지 스스로 죄로 느껴져. 억울한데도 제 죄로 밖에는 못 느끼는게 불임이야. 게다가 니 누나 맞선으로 결혼했지 않니."

 

그랬다. 누나는 선을 보고 결혼했다. 나는 누나가 꼭 연애를 하고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나는 좀처럼 연애를 하지 않았다. 그냥 꾸역꾸역 공부를 하다가 교사가 되었고 어느날 부모님이 놔준 맞선 자리에서 만난 의사와 결혼을 했다. 나는 애초에 연애한 번 안해본 누나가 결혼을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왠지 나중에 호되게 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맞선이 뭐 무슨 상관이 있는데, 결혼했으면 둘이 잘 살면 되지."

"속 없는 녀석아." 엄마는 다시, 차갑고 엄하게 대답했다.

"맞선으로 결혼했다는 건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하는 일이야. 애 낳고, 애 키우고, 돈 벌고 살려고 말이야. 별 문제 없이 살려고 당사자들 뒤에서 그렇게 따지고 하는게 맞선이다. 당사자들도 그걸 모르지는 않는다. 모르는 척 하는게 서로 나으니까 그냥 그런 자질구레한 일은 없은 체 하고 만나는거지." 엄마는 한숨을 푹 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니 누나가 막상 결혼하고 나서 불임이니 뭔가 조건이 안 맞는 거지 않니? 게다가 의사인 남편이 그게 누구 잘못인지도 모를 만큼 멍청하겠어? 그래도 네 형부가 네 누나한테 불임이라고 뭐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사람은 그 정도만 했으면 도리는 다한 거야. 애도 없이 늙을 거 생각해 보거라. 그렇다고 네 형부랑 누나가 어디서 애를 업어올 위인도 아니고..." 엄마는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이거 니 누나가 한 말 그대로 너한테 얘기하는 거야. 나도 니 누나 불임이라는 얘기 듣고 한참을 울었다. 네 누나가 불쌍해서. 그래도 니 누나는 남편이 불임 얘기 안 꺼내고 저랑 계속 맨살 맞대고 산다며 사위가 몰래 자기를 이해해준다고 그랬었어. 엄마는 그 얘기 듣고 참 미안했다. 엄마가 좀 더 신경을 썼다면, 애초에 네 누나가 불임인 걸 알았으면 오히려 애 딸린 남자를 붙여줄 수도 있었을 일인데. 나는 니 누나가 연애도 안하고 또 나도 별 문제 없이 너희를 낳았으니 네 누나도 괜찮을 줄 알았지." 엄마는 슬픈 표정으로 얘기했다.

 

"아 자꾸 불임불임하지 말아요. 어쨋든 바람핀 건 그 인간이잖아. 불임이 죄야? 외도가 죄지. 엄마는 무슨 일이든 다 우리쪽 잘못으로 만들어 놔." 나는 신경질을 부렸다.

 

그랬다 이게 엄마의 방식이었다. 천주교 성당에서 미사를 시작할 때 가슴을 세 번 치며 외치는 그 문장.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이 모든 게 다 내 탓입니다." 엄마는 차라리 모든 것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과연 엄마에게 불임을 고해성사한 누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나 탓이라고 생각했을까? 신이 장난스럽게 저주한 그 형벌을 제 운명으로, 제 업으로 누나는 받아들였을까? 과연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그 순간에도 누나는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게 누나 잘못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누나는 엄마에게 남편이 그래도 도리는 다 했다는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제 속에 끓어오르는 지옥을 식혀야 하지 않았을까? 별로 시원하지도 않은 공기를 가쁜 숨으로 들이마쉬면서 말이다.

 

그 때였다. 형부가 병원 현관을 걸어 내려왔다.

"저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처남은 나랑 얘기 좀 하다가 들어가세."그가 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나는 낙엽을 발로 부스러뜨리다가 마지못해 그를 따라나섰다. 병원 옆으로 나 있는 둘레 길을 우리는 남자 둘이서 멋적게 걸었다. 나는 그 남자가 무슨 말을 할까, 무슨 말을 하면 뭐라고 대답할 까 조마조마하면서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둘이 아무 말도 없이 걷는 것이 민망해질 즈음, 그가 말했다.

"걱정 마. 나 끝까지 자네 누나랑 살 거니까. 이게 같이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나 책임지고 네 누나 편한 곳 갈 때까지 지켜줄거야. 그리고 자네가 뭘 알고 나한테 그렇게 하는 지는 모르겠네만, 자네가 생각하는 건 내 실수였고 내 잘못이 맞아. 그렇지만 아내 이렇게 되기 전에 진심으로 사과했었고 이후 우리는 나름 잘 지냈어."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나도 아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도저히 모르겠네. 여하간 자네에게도 미안하네. 내가 의사인데도 해줄 수 있는 게 별 것 없어서 나도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 그래도 나름대로,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러니 자네도 잘 좀 이해해주길 바라네."

"앞으로도 버텨야 할 일이 많아. 나와 아내가. 그리고 아내의 가족인 자네와 우리가 말이야. 부탁하겠네." 그는 걸음을 멈추어 서더니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마지못해 그 손을 잡긴 했지만 왠지 그와 계약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찜찜했다. 그러나 손을 잡은 순간 그의 손이 땀에 젖어있다는 걸 느꼈고, 그에 놀라 올려다 본 그의 눈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의무이지만 누나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그 공표를 하기 위해서 그는 얼마나 많은 강을 건너야 했을까. 나는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형, 우리 누나 버리지 말아요. 제발 부탁할게요. 더이상 누나가 불쌍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나가 그걸 알든 모르든 말이에요."

힘없이 잡은 내 손을 그가 땀에 젖은 손으로 세게 쥐었다. 땀이 손가락 사이로 삐질삐질 흘러나왔다. 그의 턱은 부들부들 떨렸다. 억세게 잡은 손처럼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꽉, 말이다.

 

 

3. 친구의 경우, 누나의 경우.

 

"혹시 네 누나 어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지 알 수 있을까?"처음에 그 문자를 받고 나는 그 문자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내게 반말을 쓰는 걸 보면 나도 알고 있을 사람임이 분명했다. 나는 누나의 휴대폰에 전원 충전 잭을 연결하고 누나의 휴대폰을 켰다. 그리고 주소록에 내 휴대폰으로 온 문자의 번호를 찍었다. 번호를 하나 하나 누를 때마다 수백명의 이름이 수십명의 이름으로, 수십명의 이름이 수 명의 이름으로, 그리고 종내에는 한 명의 이름으로 종결지어졌다. 그 문자를 보낸 이는 과거-직장-학교-2학년-교사 순으로 카테고리화 되어 있는 모 여성이었다. 아마 그녀는 누나의 대학 동기일 테고, 언젠가 나와도 안면이 있을 사이일 것이었다.

 

나는 순간 고민에 빠졌다. 누나의 지인들에게 누나가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일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이 일을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누나가 이렇게 되고 나서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알 사람은 알아야 했건만, 그러나 알 사람이 누구인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부고를 발송하듯 카테고리에 전원을 체크하고 딱딱한 메시지를 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누나의 중학교,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대강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과 직장의 지인들은 좀체 떠올릴 수가 없었다. 누나는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3년차에 접어든 주부였다. 나는 누나가 죽음 없는 부고를 사람들에게 전송되기를 바랄지, 아니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고 바람에 떠다니는 흙 부스러기처럼 없어지기를 바랄지 판단할 수 없었다. 나는 일단 누나의 소재를 묻는 그 교사를 만나보기로 했다. 어쩌면 그 사람이 결정하게 될 일일지도 몰랐다. 그 사람은 누나의 사회적 대리인이 되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나가 이렇게 된 지 3개월, 이렇게 누나가 애써 써 온 인생의 페이지들을 더이상 무시하고 지나칠 순 없었다. 그러나 나는 옆 자리에 스러져 있는 누나의 몰골을 보고 과연, 누나를 저 깊은 잠에서, 음침한 수렁에서 집어 꺼내 하이라이트를 비춰도 되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전화를 걸고나니, 수화기 저편에서 여보세요, 하고 몇 년 전에 들었던 잊혀진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쪽도 내 이름을 부를 상황을 애써 피해가며 말하는 걸 대강은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현대인의 정상적인 상태인지도 모른다. 형제의 친구, 동료의 이름은 만나도 잊어버리기 일쑤고 헷갈리기 일쑤다. 나는 어떻게든 그녀와 약속을 잡고 병원 인근의 어느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카페에서 먼저 만나기로 한 일은 아주 잘 한 일이었다. 만나보니 누나를 옆에 두고서는 할 수 없는 얘기들이 많았다. 카페로 걸어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은 누나의 대학 시절, 한 때 나와도 몇 번인가 술자리를 같이 했던 누나의 친구였다. 그 사람은 날 보자마자 대뜸 말을 걸었다.

"잘 지냈니? 많이 변했구나." 그녀의 첫 마디였다.

 

서로 앞에 놓인 커피를 반 쯤 들이키고, 그녀는 말을 시작했다. 얘기를 하다보니 이이가 누군지 점차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나와 같은 대학을 나와서 같은 시절에 교사가 되었다고 했다. 달랐던 점은, 그녀는 결혼을 안 하고 교사로 직장에 몸을 담고 나이들어갔다는 것이었다.

"누나는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된 거니?" 대략적인 소개가 끝나고 난 그녀의 첫 물음이었다.

첫 질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물음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형부의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가 보니 누나는 그렇게 되어 있었다. 의사와 함께 경찰이 있었는데, 대충 들어보니 수면제를 너무 많이 먹어서 뇌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했었다. 경찰은 빨리 자살 미수로 인한 사고 사례로 누나를 규정짓고 자리를 뜨고 싶어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경위는 이게 다였다. 내 일이 아니라면 전형적이고 식상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몇 문장 안되는 사고경위였다. 내가 묵묵히 다 식은 커피 손잡이만 잡고 꼼지락거리자 그녀가 제 질문에 답을 달았다.

 

"사고는 아닌 모양이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사고가 났다고 해."

"네" 나는 짧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누나는 대학 시절부터 부초처럼 흔들리는 구석이 있었어. 사대생들은 대개 교사가 되겠다는 확신에 찬 1학년을 보내고 교사가 될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4학년을 끝으로 대학 생활을 마치지. 원체 임고가 쉬운 일이 아니잖니. 그런데 네 누나는 거꾸로였어." 그녀의 말이었다.

 

나는 그녀가 왜 갑자기 대학 시절의 일을 얘기하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순간, 머리 속에 다시 처음의 생각이 떠올랐다. '누나는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이유를 고민한다는 것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뜻과 다를게 없었다. 만약 내가 누나를 안다면, 이유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명료한 문장으로 진술된 이해가 아닐 지라도 말이다. 누나의 포기에 대해서, 희뿌연 실마리도 나는 잡을 수가 없었었다. 나는 이유가 없는 슬픔을 느꼈어야만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대체 누나가 왜 그랬는지. 아마 누나가 자살 시도에도 불구하고 살아났으면, 아니 '멀쩡하게' 살아났으면 우리는 누구도 그런 고민에 마음을 쏟기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누나를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도대체 일이 폭탄처럼 터지고 와르르 무너져 버리지 않으면 폭탄처럼 터질만한 일과 무너져버릴게 분명한 일들에 대해 일말의 슬픔도 느끼지 않는다. 그 냉혹한 법칙을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에 살아갈 자들은 애써 버티고, 죽은 자들은 슬프고, 경계에 선 자들은 자신을 잊어버리려고 한다. 누나는? 아마 버티다가, 잊혀졌고, 슬픔에 빠졌을 것이다.

 

"네 누나, 왠지 한 번은 그런 일을 벌일 것도 같았어. 원래 교사를 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애인데, 사대에 들인 시간이 아까워서 계속 무모한 임고를 치렀었잖아. 결국 대출 받고 부모님께 부탁해서 학교 발전기금 내고 겨우 사립고 정교사 자리를 얻었었지."그녀의 말이었다.

나는 그녀가 누나를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나빠졌다. 그런 내 감정이 표정에 내비쳤는지 그녀는 얼른 말을 덧붙였다.

"나도 마찬가지로 기금 내고 들어갔어. 기금 내고 학교 다니는 교사는 시험 합격해서 당당하게 주인처럼 교사 생활 하는 사람들하고는 처지가 좀 달라. 그래서 네 누나랑 나. 졸업하고서도 서로 전화하면서 엉엉 울기도 했다."

"그래, 우린 비슷했었지."그녀의 말이었다.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네 누나랑 나랑 다른 점은 하나였어. 나는 교사가 되고 싶어서 교사가 된 거였고, 네 누난 아니었지. 학생 때 술자리에서 나한테 자기는 교사 말고 자기한테 뭐가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 그래서 그땐 내가 그런 마음으로 교사 할 거면 때려치우라고 화를 냈었어. 임고는 잘 안됬지만, 학점은 좋았던 네 누나가 그러는게 아니꼬왔었나봐." 나는 아버지에게 들었던, 의사가 되고싶어했었다던 누나를 떠올렸다.

"별 생각없이 한 말이었지만, 그때 차라리 내 말에 상처라도 입었으면 네 누나가 다른 길을 찾아보기도 했을 텐데. 이제와서 생각하니 답답하네. 네 누나는 그 때 내 말에 그냥 배시시 웃고 말더라고."그녀가 덧붙였다.

 

나는 누나가 교사가 된 후에도 교사로서의 누나를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좋은 일자리를 잡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에 학생들의 놀림을 받고 울며 뛰쳐나간 초임 여교사의 모습으로 누나를 그려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모를 테지만 이 나이에는 그럴 거라고 짐작할 수 있는 능글맞은 몇몇 남선생들의 추태까지 받아내고 있는 가녀린 정신의 교사로 누나를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한마디로, 나는 누나를 교육직 공무원이라고 여겼다. 누나에 대한 규정은 한마디였다.

 

"그런데 네 누나는 막상 교사가 되고 나서도 특히 적응을 잘 못했었어. 한번 학생한테 쉽게 보여서 성희롱 비슷한 걸 당한게 애들한테 퍼지고 퍼졌었거든. 너도 알겠지만 그 나이 대 애들은 한번 소문난 일은 모두 당연한 일, 해도 되는 일로 받아들이잖아. 조막만한 것들이 휴대폰으로 치마 속도 찍으려고 했다고 하더라고."

"그런 일이 있었어요?" 누나는 왜 가만히 그걸 참고 있었지?"나는 순간 황당해져서 대답했다.

"조금이라도 잘못 반응하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었대. 그렇게 1년 지나고 나면 괜찮아지고, 새 학년 애들 올라오면 새로 시작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때 인터넷 미니 홈페이지 막 유행하기 시작했던 거 기억하니? 거기에 어떤 철없는 녀석이 네 누나 치마 속 사진을 찍어올렸는데 그게 대를 이어 내려가가지고." 그녀는 말을 끊었다. 더이상은 얘기하기가 민망한 모양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인터넷 가십 기사에서 댓글로나 비웃을 사건이누나에게 일어났었다니.

"그걸 우리한테는 왜 한 마디도 안하고선." 나는 덧붙였다.

"그걸 어떻게 말하겠어. 나이도 20대 중반이 넘었었고, 이런건 친구 아니면 못 말할 일이지 않겠어?"그녀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종종 그런 일 당하는 여교사들이 있어. 대개는 어떻게든 헤쳐나가거나, 새 교사들이 들어오고 애들 관심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그냥 저냥 교사 생활을 하게 되는데, 네 누나의 경우에는 미니 홈페이지 덕분에 시간이 좀 길어졌고 한계에 달했을 때 거짓말처럼 결혼 기회가 온 거야. 아마 그래서 그만뒀을거야. 교사에 미련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건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커피잔 속의 커피는 이미 다 말라서 끈적한 얇은 막으로 피딱지처럼 잔의 표면에 붙어 있었다. 나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앞장을 서서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병원으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학교에서 교사로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전화로나마 들었던 그녀였지만, 가장 젊고 예뻤던 시절의 모습으로 누나를 기억하는 것도 그녀일 것이었다. 병실 앞에서 그녀는 큰 호흡으로 숨을 들이키더니, 단숨에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녀는 문지방 앞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질 못했다. 한참을 서 있다가 주르륵 하고 눈물을 흘리더니 휘청, 하고 흔들렸다. 그러더니 벽에 붙어있는 옷걸이를 잡고 한 참을 가쁘게 숨을 쉬었다.

 

나는 묵묵히 창가로 가서 바깥에 남아 있는 초겨울의 나목들을 보았다. 마지막 잎새처럼 하나의 파란 나뭇잎이라도 남아 있으면 좋으련만, 나무들은 모두 비쩍 발라 있었다. 추위도 느끼지 못한 채 가만히 서서 말라가는 걸 기다리는 모습이 마치 누나를 보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어느새 그녀는 누나의 이름을 부르며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나는 목 안쪽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뜨거운 눈물을 저 깊은 곳으로 밀어넣고 또 밀어넣었다. 여기서 나까지 울면 안 된다. 그리고 눈물을 집어삼키다 말고 다시 그 생각을 했다.

'누나는 왜 그랬을까.' 그리고 하나의 생각을 덧붙였다.

'나는 왜 몰랐을까.'

 

그 때 그녀가 흐느끼며 나직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해. 나도 힘이 들었어. 네가 힘든 걸 알고 있기는 했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어느정도 있다는 것도 알았는데. 그래도 할 수가 없었어. 어쩌면 하기 싫었는지도 몰라. 힘들어서 말야."

 

하기 싫었다. 그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왜 무관심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리고 그 질문에 여러 토를 없애버리고 냉정하게 대답한다면 관심 갖는다는게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답하는게 가장 정확한 대답일것이다. 대답은 누구나 같기 때문에 대답은 중요하지 않다. 그 대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문제다. 피곤한 일이라는 것은 안한 일의 범주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못한 일의 범주에 있는 것일까. 사랑이 많은 사람은 안한 일로, 사랑이 없는 사람은 못한 일로 집어넣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그 질문이 무의미했다. 나는 누나의 동생이었으니까.

 

그러나 운명이라는 게 소용돌이 모양을 하고 있다면, 그 소용돌이에 손을 뻗는다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우연히 내가 반대로 도는 소용돌이가 아니라면, 그 폭풍에 휩쓸려 버릴 테니 말이다. 또 슬픔을 나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내가 그 슬픔을 느껴야 될 이유는 사랑 말고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사랑은 범람하는 단어이지만, 실재를 찾기 어려운 존재다. 그래서 결국 삶의 모든 고난은 종국에는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종류의 일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해내지 못한 자들은 폭풍이 되어버리던가. 사라져 버려야만 하는게 인간의 운명이다. 그렇게 믿고 싶지 않지만, 그게 진실이라고 삶은 우리에게 소리치고 있다.그래서 우리는 삶 앞에서 분노할 수도 수도 없고, 화를 낼 수도 없다. 우리가 삶을 앞에두고 할 수 있는 일은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숙연해지는 것 뿐이다.

다시, 질문이 떠오른다. 누나는 왜그랬을까.

그리고 나는 왜. 몰랐을까. 혹은, 왜.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4. 나의 경우.

 

"엄마. 누나 더는 힘들까요?" 가족들이 모두 모인 병실에서 내가 꺼낸 말이었다. 가족들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한 숨을 쉬면서 나를 쏘아봤다. 그러더니 눈가에 힘이 빠지면서 다들 누나를 쳐다봤다. 누나는 그것을 듣는지 듣지 않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만약 누나가 살아있었다면 내 말에 상처를 받았을까? 언젠가 사람들에게서 들은 누나의 삶을 노트에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본 적이 있었다.

꿈을 이루지 못한 누나, 대학 시절에서도 낭만을 얻지 못한 누나. 교사 생활에서 상처를 받은 누나. 결혼으로 도피한 누나. 불임에 절망한 누나. 남편의 외도를 참아내야 했던 누나. 그리고 수면제를 먹은 누나. 솔직히 처음 든 생각은 인과 관계가 성립한다는 냉정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의문은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왜? 어째서?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끊이질 않았다.

 

만약 누나에게 일어난 기쁜 일들, 슬픈 일만큼 몰랐을 기쁜 일들을 시간순서대로 적어본다면 나는 누나의 자살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누나를 시기할지도 모른다. 머리를 더 쥐어짜내서 기쁜 일과 슬픈일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고, 그것을 인과 순서까지도 규명해 적는다 하더라도 누나의 선택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결국 누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사실에 대한 논문은 아무리 써도 끝이 없는 종교에 대한 논문처럼 되버릴 일이었다. 문제는 나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였다. 왜 3개월 전에, 1년 전에, 10년 전에 누나를 보지 못했을까. 생물학적인 눈으로만 누나를 보고, 마음으로는 왜 누나를 보지 않았을까.

그러나 누나를 연민하고, 동정하고, 세상에 분노하는 마음 속에서도 누나는 왜 버티지 않았나. 왜 좀 더 살아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머리속에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이것은 이기주의일까? 피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나도 누나에 대해서 이정도밖에 생각할 수 없는건가 하는 생각에 인간에 대한 환멸을, 특별히 나라는 인간에 대한 환멸을 끔찍하게도 느꼈다.

 

나는 가발의 머리칼같은 누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누나가 '멀쩡하게'살아있을 때는 민망하다는 이유로 단 한번도 의도하고 만져본 적이 없는 머리칼이었다. 나는 이제 대체 뭘 해야 할까. 여러 사람에게서 들은 누나의 고통에 대해서 가족들에게 얘기를 꺼낼 수도 없었다. "누나는 이래서 죽으려고 했다! 우리가 잘못한 건 이 지점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무의미했다. 그것은 누나를 두번 죽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이제 그저, 누나의 소멸을 비통한 마음으로 기다릴 뿐이었다. 식물인간이 된 누나는 살아있는 것일까? 의사들은 사람의 생명에 대해서 몇 가지 수차로 나타낸 지표들을 보여주며 누나가 얼마나 죽어가고 있는지 공을 들여 설명했다. 누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모두 깨달았다. 언젠가 우리는 이 침묵을 그만둘 것이고, 결국에는 누나의 침묵도 없어질 것이라는 걸. 누나의 침묵이 사라진다는 건, 누나가 없어질 것이라는 걸. 어릴 적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울고 싶었는데 울지를 못했었다. 죽음이라는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기에 울지 못했던 것이었던 것 같다. 과연 누나가 죽는다면 나는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누나의 육체를 염하는 염장이의 손길을 보면서 과연 나는 누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누나를 조금은 알겠다면서 미안하다면서 누나에게 외칠 수 있게 될 것인가. 그러면 정말로, 누나는 우리에게서부터 떠나게 될 것인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한 사람에 대해서, 그것도 내 피가 도는 혈육의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이렇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녀를 영원이 이 생명의 세계에서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 슬펐다. 아니 그 사실이 싫고 미웠다. 이 젊은 여인이 이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선언 앞에서, 나는 악마에게 혼을 팔아서라도 사람을 살리는 연극 속의 주인공들이 반쯤 미쳐서 울부짖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억울함 때문이었다. 대체 누나가 왜. 왜 누나가 없어져야 해.라는 억울함.

 

모두가 침묵 속에서 누나와 말하고 있는 가운데, 시간은 흐르고, 누나의 생명은 점차 꺼져갔다. 언젠가는 촛불의 촛농이 다 녹아내리고, 투명한 생의 흔적만이 남을 것이다. 끈적이고, 질척이는 모양으로. 도저히 미화될 수 없는 그 순간으로 말이다.

 

 

 

5. 부초의 꿈.

 

(--뚜..-- 뚜..--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의 이름아래 우리는 오늘 이 영혼이 이 세상에서 주님의 세상으로 가는 길을 예비합니다. --뚜..--뚜.. 의사선생님. 어떻게 안 될까요? 아직 얘 동생도 도착안했는데요.)

 

원망하진 않는다. 서럽지도 않다. 꿈 때문도, 고통 때문도, 일상 때문도 아니다. 운명 때문은 더더욱이 아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를 않았다. 내가 선택해서 했다고 믿었던 일조차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면 어떤 조건 때문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었던 것 같다. 절망적이었던 점은 그게 나만의 인생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주위를 돌아보면 나와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뚜..--뚜..-- 일단은 몰핀을 좀 더 처방하겠습니다. 시간을 좀 더 벌 수는 있을겁니다. --뚜..--뚜..뚜뚜뚜 제세동기 준비해! 쓰리. 투. 원. 삐------- 쓰리. 투. 원. 삐-------)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이게 내가 가진 의문의 전부였다. 나는 별로 질문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삶에 대한 단하나의 질문에조차 답을 달지 못했다. 결국 나는 내 부족을 탓할 수밖엔 없었다. 모두가 다들 똑같이 살고 있는데, 나만 못 견디겠다면 그건 내 방법이 잘못된 탓이 아니라 내가 약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에서도 약한 것은 죽게 마련이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아이구 내 딸아. 니가 정말 이렇게 가는거냐. 대체 왜 일어나지를 못하는거야! 새파랗게 젊은 애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가버릴 수가 있느냐! 뚜--. 뚜--. )

 

나는 지금 깊은 잠을 자고 있다. 내 생이 이 생인지 저 생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떠오르는 것은 내가 이렇게 명료한 언어로 생각을 해 왔었는가 하는 의아함이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행한 결과대로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이미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주님, 오늘 이 영혼의 선택을 죄로 여기지 마시고, 실수로 여기고 긍휼을 허락해주옵소서. 여기 죄인이 있지 아니하고 연약한 자가 있나이다. 아멘. 뚜--. 뚜--. 목사님 안됩니다. 벌써 그런 말 하시면 안되지 않습니까. 제 아내가 왜 죽습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뚜--. 뚜--. 힘드시겠지만, 지금이 기도하실수 있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힘을 내십시오. 보고 있는 저도 괴롭습니다. 뚜-- 뚜--. 비켜! 내가 할거야. 제세동기 준비 해! 나도 의사야! 쓰리. 투. 원. 삐---------- 여보! 제발 힘을 좀 내 봐! 삐----------)

 

내 앞에 지금 당장 펼쳐져 있는 검은 세계 에는 작은 꽃 한 무더기가 피어 있다. 강한 바람과 뿌연 안개 아래의 흐릿한 검은 세상에서 그 꽃은 대체 어떻게 피어있을 수 있는걸까. 겨울처럼 차가운 바람에 맥이 없으면서도 그 꽃은 살아있었다. 작고, 볼품없게 찢어진 작은 꽃잎일지라도, 내세울 건 그거 하나라면서도 그 꽃은 그 척박한 땅에 제 키만큼의 뿌리는 내리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꽃을 보고 있다가 더 큰 바람에 밀려가는 작은 바람의 운명처럼 어딘가의 강으로 휩쓸려갔다.

 

(덜컥! 삐---. 누나! --뚜뚜..-- 한번 더! 쓰리. 투. 원. 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누나 갑자기 왜이래! 형부! 누나 좀 어떻게 해 봐요! 뚜--. 뚜--. 딸아. 아직은 안된다! 뚜--.뚜--. 빨리 기도해라. 니 누나 이제 갈지도 모르겠다.뚜--. 뚜--. 어머님, 그런 말씀 마십쇼. 아직 아닙니다. 뚜--. 뚜--.)

 

떠난 순간, 뒤가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미약하지만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았는데, 그게 나를 부르는 것 같았는데, 내 이름인지 확실하지가 않았다. 부르는 소리는 명확했지만, 내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겠어서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안간힘을 써서 큰 바람으로부터 나와 흐르지 않는 강의 줄기를 붙들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작은 소리로 들려왔지만, 먼 곳에서 한 곳에 모여 부르짖고 있는 듯한 음색이었다.

 

(--뚜.--뚜. 쓰리. 투. 원. 삐----몰핀! 딸아!.. --뚜.--뚜. 쓰리. 투. 원. 삐------ 몰핀! 여보!. --뚜. --뚜. 쓰리. 투. 원. 삐--------- 누나!)

 

나를 딸이라 부르고, 여보라고 부르고, 마지막에는 누나. 라고 불렀다. 나는 처음으로 억울함 없이 후회할 수 있었다. 삶이 내 앞에서 사라져갔다. 깨어진 조각같이 명확하지 않은 삶의 궤적이 머리속을 지나갔다. 가장 흐릿한 마지막 장면이 지나고나니, 나는 강가 앞의 작은 꽃이었다.

 

아쉽게도 깨달음은, 항상 필요한 순간이 지나가고서야 찾아온다.

꽃으로 살 수 있었다는 걸, 좀더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안녕.

 

(쓰리. 투. 원.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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