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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호] 헬조선

한건호 기자l승인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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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이런 친구들이 있다. ‘난 정치 같은 거 관심 없어서 잘 몰라’. 한마디로 무관심하다는 얘기인데, 충분히 이해한다. 요즘엔 정치 말고도 관심 가질만한 재밌는 것들이 넘치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라스웰과 캐플런은 이를 무(無)정치적이라 정의했다.

하지만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한 순간에 의욕을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인가 바꿀 수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라스웰과 캐플런은 이들을 탈(脫)정치적이라 했다. ‘무정치’야 당초에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지만, 희망을 가지던 사람이 ‘탈정치’한다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몇 년 전 탄생한 ‘헬조선’이라는 단어야말로 ‘탈정치’한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지 싶다. 지옥과 같은 조선이란 말로 정부에 대한 깊은 실망감을 토해낸다. ‘헬한국’도 아닌 ‘헬조선’이라니 'hell'에서 흘러나오는 지옥에 대한 이미지와 더불어 ‘조선’이라는 전근대 국가의 뉘앙스도 ‘헬조선’에 담긴다.

실제로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헬조선’(hellkorea.com) 홈페이지에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흙수저’, ‘금수저’ 얘기부터 이민을 장려하는 이야기들까지 부조리한 현실 사회에 지친 사람들이 끝끝내 모이는 최후의 보루 같은 장소랄까? 이 단어가 슬픈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그들에겐 어떠한 문제의식도 ‘헬조선이잖아’라는 이유로 설명된다.

다시 말해 헬조선이란 단어에는 ‘빚, 실업, 비정규직, 재벌, 학벌주의’ 등의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종합적으로 담겨있는 셈이다. 스스로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강조하며 노력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국가와는 달리 현실에는 너무나 많은 장벽들이 존재했다. 노력하는 개인들은 수많은 ‘금수저’들에게, ‘재벌’들에게, ‘비정규직’ 제도에 의해 가로막힌 채 ‘헬조선’이란 말로 자신들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의 기득권층은 이들의 절규를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한 푸념이나 열등의식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정작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국가를 탓하고 비방한다며 비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비판은 자신들의 성공역시 순전한 자신들의 노력에서 기인했다는 착각에서 근거한다. 성공의 배경, 구조에 대한 성찰은 배제한 채 단순히 개인의 능력으로 문제를 환원시킬 뿐이다. 본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의 기회의 공평함, 정의로움이 있음을 증명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자료들은 명확하다. 높은 자살률과 높은 이민률, 그리고 청년들의 실업률이라는 오래되고 꿈쩍 않고 버티고 있는 자료들이다. 수 년 전부터 제시되던 진부한 자료들이지만 여전히 사용된다. 이제는 이런 수치스러운 수치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일 정도이다. 이 자료들이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부정적 타이틀이 오랜 기간 변하지 않는다는 점은 잘못된 사회 구조가 고착화 됐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정치적 무관심의 세 번째 형태는 반(反)정치적 무관심이라 했다. 아나키스트나 극단적으로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과 같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국가와 정반대될 때 야기되는 무관심인 것이다. 헬조선에서의 탈출, 이민을 바라고 장려하는 이른 바 ‘탈조선’이란 말도 생긴 요즘, 헬조선, 탈조선을 외치는 사람들이 이제는 반정치적이 된 것은 아닐까? 사람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단어들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가진다. 아직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지금, 헬조선은 하루빨리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외치는 경고가 아닐까.


한건호 기자  borish319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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