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11.13 수 21:47

[382호] "아버지가 하셨던 말이 이제야 차곡차곡 정리가 되고 이해가 돼”

우리학교 앞 ‘교원먹거리’ 가족에게 듣는 이산가족상봉 뒷이야기 하주현 기자l승인2015.11.02l수정2015.11.04 13:19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왼쪽부터 오장균 씨, 아내 이옥란 씨, 어머니 이순규 씨. 이순규 씨 가족은 65년 전 헤어졌던 오인세 씨를 만나고 돌아왔다.     사진/ 하주현 기자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그리고 24일부터 26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제20차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두 번으로 나뉘어 진행됐던 이번 일정은 1차는 북한의 가족이 남한을, 2차는 남한의 가족이 북한을 방문해 그곳의 가족을 만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우리학교 정문 근처에 위치한 2층집의 가족들 역시 이번에 북측의 가족을 만났다. 북측에 남편을 둔 이순규 씨와 아들 오장균 씨, 그의 아내 이옥란 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옥란 씨는 우리학교 정문의 식당 ‘교원먹거리’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순규 할머니 가족은 특히 언론의 집중을 받았는데 오장균 씨는 그 이유를 두고 “어머니가 65년간 수절을 지키셨고, 아들인 나를 혼자서 훌륭히 키우셨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 가족은 비표 번호로 70번을 받았는데 오장균 씨의 말에 따르면, 이는 광복 70주년인 올해 상징적인 숫자를 이 가족에게 특별히 부여했다는 뜻이다. 오장균 씨는 “상봉 장소에서 보도진들도 이 70이라는 숫자를 보고 우리가족에게 집중했다”고 말했다. “다녀와서도 지금껏 전화를 150통은 받은 거 같아”, 오장균 씨의 말을 증명하듯 이 날도 한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왔다.

1949년 결혼한 이순규 할머니와 오인세 할아버지는 신혼 생활 6개월이 지나 전쟁을 맞았고, 남편은 북한인민군에게 징집됐다. 남편이 여름 훈련을 받고 돌아오는 줄로만 알았던 스무 살의 새댁은 65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은 여든 다섯의 할머니가 됐고, 뱃속에 있던 아기는 아버지 없이 태어나 예순 다섯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남편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순규 할머니는 37년 동안 제사를 지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음력 8월 3일, 제사를 마쳤는데 이틀 뒤 흥덕구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제사의 주인공이었던 남편이 살아있다는 말이었다. 북측의 오인세 할아버지가 남한의 누님을 찾았는데 누님은 돌아가셨고, 대신 직계가족인 아내와 아들이 있다는 것이 확인 돼 연락이 닿은 것이다. 오장균 씨는 “3-4년 전 이산가족 등록을 해 놓고, 이게 될까 싶었는데 연락을 받고 또 상봉 대상자라는 말에 ‘아 이게 정말 되는 구나’했다”며 그때의 소감을 전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서로 다른 세상에 살다 어느 날 12시간이 주어졌다, 이순규 할머니는 스무 살 때 잠시 보았던 남편을, 아들 오장균 씨는 얼굴도 모르고 살던 아버지를, 며느리 이옥란 씨는 제사로만 모셨던 시아버지를 보게 됐다.
“보자마자 바로 알아 봤지. 아들이랑 닮았거든. 처음엔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어. 마음이 그저 편했어.”라며 할머니는 상봉 첫날 남편을 보았을 때의 마음을 전했다. 오인세 할아버지는 “니가 내 아들이가? 잘 컸네. 잘 컸다.”라며 생애 첫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다 전하지도 듣지도 못했다. 함께했던 그 3일은 단체상봉·환영만찬·개별상봉·공동중식·작별상봉이라는 이름으로 조각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평생에 처음 모인 가족이었지만 하룻밤 끌어안고 잘 수도 없었다. 그나마 마주했던 자리도 북측의 관리자가 계속 지켜보는 상황이었다. 아들과 아내를 앞에 두고 오인세 할아버지는 한숨만 내쉬었다.
“상봉 시간이 끝날 때마다 곧바로 옆에 있던 관리자들이 아버지 팔뚝을 움켜잡고 ‘가자우’···” “아버지 말은 서두만 있고 끝이 없어. 무슨 말을 하려다가도 다 못하고 흐지부지 되는 거야. 그땐 정신없어서 몰랐는데 이제 와 돌아보니 아버지가 눈치 보시던 게 생각나고” “그때는 몰랐는데 아버지가 하려했던 말씀이 뭐였는지 이제야 차곡차곡 정리가 돼”
상봉 후 심란한 마음을 술로 달래보려 한 듯 오장균 씨는 얼굴이 발갰다. “상봉 자리에선 ‘고생 안 했다’, ‘잘 지냈다’ 하셨지만 아버지 손만 만져 봐도 알아. 손바닥이 돌덩이야” “상봉하기까지 나라의 신임 얻으려고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아내 이옥란 씨도 덧붙여 말했다. “다녀와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물건을 낭비하지 말고 알뜰하게 써야겠다’는 거야. 거기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초췌해. 우리같이 멀건 사람이 없어. 시계. 신발, 옷도 색깔만 다르게 다 맞춰 입고 온 것 같았어. 아마 국가에서 줬나봐” “고생했냐 어떻게 살았냐 이런 얘기를 못했어. 물어볼라 하면 그냥 잘 살고 있다. 그런 말만 반복하니까”
한편 인터뷰 내내 평온한 모습이던 이순규 할머니는 기자를 배웅하며 마지막 충고를 해주셨다. “사는 거 별거 없어. 노력하면 그대로 남고 그저 놀면 아무것도 안남어. 그리고 무엇보다 착하게, 마음을 착하게 먹어야 해. 사는 덴 그것뿐이 없어”

통일부의 자료에 따르면, 9월 31일까지 남한의 이산가족 등록자는 약 13만 명이고 이중 70세 이상의 고령비율은 82%를 차지한다. 한 날 한 시가 아까운 상황, 가족임에도 한 번 만나기까지 그 규칙과 절차는 까다롭고 어렵기만 하다. 혈육의 정을 이용해 정치 놀음을 하는 자들을 위에 둔 채 갈라진 가족들의 시간은 이렇게 흐르고만 있다.


하주현 기자  knuepress@aver.com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주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이전홈페이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태성탑연로 250  |  대표전화: 043) 230-3340  |  Mail to: press@knue.ac.kr
발행인: 류희찬  |  주간: 손정주  |  편집국장: 박설희  |  편집실장: 김동건/전은진/정윤수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설희
Copyright © 2019 한국교원대신문. All rights reserved.